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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Aug 23. 2024

나는 어떤 안경을 쓰고 있나?

영화 <딸에 대하여> 리뷰

비정규직, 비혼, 고령화, 백수. 듣기만 해도 적적한 현대사회를 아우르는 불편한 수식어들. 이 끝나지 않는 싸움 속 서로의 불편함을 침묵만으로 담아낸 값진 영화다. 내 주변 아니, 결국 내 딸이 동성애자임을 받아들이기 힘든 엄마와 세상과의 싸움에서 홀로 버티는 딸. 엄마는 끝내 치매 노인을 돌보며 서로의 입장을 서서히 알아간다. 피 하나 안 섞인 남남이 만드는 ‘논픽션스러운’ 가족영화다.


딸은 경제적 이유로 동성 애인과 함께 집으로 들어온다. 딸이 평범한 가정을 일구길 바라는 엄마의 가슴은 답답하고 불안하다. 그냥 모든 게 불안하다. 본인의 미래, 동성애자라고 부당해고당한 딸의 미래, 원하는게 있어보이는 딸 애인의 행동 모두. 여태껏 본인의 희생이 모두 부질없어진 느낌이다.

혐오와 갈등, 무한경쟁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대학, 병원, 요양원, 주택가에서 펼쳐지는 각자의 시퀀스는 ‘결국 이 현실에서의 공동체는 무엇을 원했냐’는 질문을 우리에게 남기며 잔잔한 파동을 준다. 소수자를 온정과 이해 없이 깎아내리고 무시하며 변태적 희열을 얻는 우리는 무엇에 결국 홀려있는가. 이 정답을 제시하기엔 영화가 끝나는 크레딧 순간에도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다. 깊은 침잠 속에 오랜 생각을 갖게 한다.


이 사회는 규범이 갖춰진 정해진 정답을 늘 요구한다. 누가 만든지도 모르는 그 정답이라고 부르는 것들. 가령, 동성애자는 무조건 용납이 안 되는 것이고, 혼자 쓸쓸히 늙지 않기 위해 결혼은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며, 결혼을 하면 자녀를 꼭 낳아야 한다. 엄마의 대사에서 이 정답이 그대로 나온다.

“남들이 다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야”


딸의 부당해고를 가슴아파하지 않으려면 회사는 잘리지 않기 위해 정규직으로 입사해야만 한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에 요양원에서 치매 걸려 외롭게 죽지 않으려면 젊을 때 본인의 능력으로 사회적 성취를 이루어 놓아야 한다. 평범한 한 사람이 겪는 모든 매사에 이런 암묵적인 룰이 있다. 영화는 낯설지 않고 우리 곁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 문제들을 인위적인 연민의 감정 없이 자연스레 내비친다. 마치 어른들이 쓸데없는 규칙 백개, 천 개를 만들어 잘 지키고 있는지 감시하는 현시대를 풍자하는 듯하다.


‘다 같이 똑같이 잘 살자’ 마치 공산주의를 연상케 하는 이 폭력적인 언어보다 잘 사는 마음가짐을 서로에게 이어주는 것. 다음 사람과 그다음 사람에게 계속 선한 영향력을 연결하는 것. 희생과 이해라는 감정으로 우리 모두를 연결하는 공동체의 결실을 감독은 얘기하고있을지 모른다. 피 하나 안 섞인 노인을 품는 엄마처럼,다시 피하나 안 섞인 딸의 연인을 품는 감정처럼 ‘나와 다른 세계를 사랑할 용기’가 어쩌면 진짜 내 세계를 더 넓히는 길이 아닐까. 그런 세상이 우리가 얘기해 왔던 정량화된 ‘정답’보다 더 소중한 정답이 아닐까.


우리 각자가 서로를 100%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의 엄마처럼 직접 겪어야만 한다. 그게 가장 이 문제를 정면돌파할 수 있는 법이다.  상식을 운운해도 반감이 나오는 현시대에 내가 생각하는 게 애초에 정답이 아니라는 사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는 상대를 겪어야만 이는 온전히 정의롭고 공정한 공동체에 이바지할 수 있다. 사회적 강자와 약자의 차이는 단순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처럼 시간이 지나 충분히 다시 바뀔 수 있는 한 장 차이의 운명일 뿐이다. 높고 낮고,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모두 다른 것 뿐이다. 가변적인 측정값들.


노인과 함께 걸어가는 엄마가 또다른 건너편 동성애자와 서로 횡단보도에서 스쳐가는 마지막 시퀀스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한창차이의 가변적 운명을 결국 누가 누구에게 ‘먼저’ 손 내밀고 품을 수 있나. 아닌 척, 나는 괜찮은 척, 나 몰라라 알빠노식의 삶이 아닌 누가 먼저 결국 관계의 포용을 시작할 것인지, 그게 얼마나 이 현대사회에서 중요한지를 환기한다.


아무리 추악한 결론에 지금 도달했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정답을 말해야 한다. 누군가는 총대를 매야한다. 그래야 세상이 바뀐다. 감독은 얘기하고 싶은 명징한 메시지가 있다. 온갖 이념과 정해진 정답 속에서 뇌사상태에 빠져버린 현대인의 관계. 그 관계에 대해 ‘서로의 세계를 사랑할 용기’가 왜 이토록 소중하고 중요한지 조용한 일침을 남기는 영화다.


영화는 9월 4일 개봉합니다. 꼭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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