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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Jul 16. 2024

혼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

고독은 어떻게 삶을 이롭게 하는가

여수에 오니 체감이 된다. 장범준은 그야말로 여수시 전체를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장 표창이라도 주던가, 이순신 동상처럼 동상하나 세워줘야 할 판이다. 술집, 카페 모든 간판이 여수밤바다고, 노래도 여수밤바다가 흘러나온다. 복사+붙여 넣기 한 것 같다. 아무쪼록 여수에 관광객이 몰리고 소비가 살아나는 것은 고무적이다.


이 바다를 보고 있을 때면 늘 느끼는 것이 바다는 사람을 외롭게 한다. 감성적이고 을씨년스럽게 한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외롭고 고독하다. 이 여수밤바다를 앞에 두고 있지 않더라도 인생은 원래 어차피 외롭다. 장담컨대 누군가 결혼을 하든, 자녀가 생기든 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결혼했는데 외롭다 떠들어대서 괜히 가정에 분란을 만들고 싶지도않다. 이 외로움은 다른 차원의 결과론적인 감정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계절처럼, 날씨처럼 오는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면 생각에 잠기곤 하는데 이 상태는 '고독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유독 30대가 되니, 이 감정이 더 자주 솟구친다. 고독은 긍정과 부정을동시에 동반한다. 긍정적일 때에는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받거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다. 반면 관계의 단절에 따른 상실을 불러일으켜 지나친 고독이 생기기도 한다. 고독은 이처럼 양면적이다. 관계에서의 단절을 인생의 시간 순으로 예를 들어보겠다.


1) 학교에서 자주 놀던 무리가 어느샌가 나를 빼고 논다. 다른 무리는 원래 놀던 무리가 애초에 아니었기 때문에 끼어서 함께 놀 수도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부모님께 학교에 가기 싫다고 얘기한다.


2) 30대가 되니, MBTI가 E인 말 그대로 매우 외향적인 사람들도 I로 바뀌는 사람을 종종 본다. 결국 관계라는 것은 본인이 행복하려고 맺는 건데, 더 이상 새로운 관계가 본인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외향적이었던 성격이 점점 더 내성적으로 바뀌며 친한 무리는 더 좁혀져 간다. 혼자 있는 시간을 더 만든다.  마음 놓고 말할 수 있는 상대가 3명 아니, 1명만 있어도 인생을 잘 살아왔다고 느낀다.


3) 수많은 무리 속에 섞여서 그들에게 대접받는 대기업부장이 있다고 하자. 점심식사 같이 하자하고, 후배가 커피도 대령하고, 모두에게 대접받는다. 그러다 한직으로 물러나면 하나둘 떠나간다. 퇴직하는 순간 곁에 남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고독함이 밀려온다.


4) 60대의 부모들은 아들, 딸, 전화 한 통 없냐고 잔소리를 하신다. 막상 전화해서 집에 찾아가겠다고 하면 오지마라고 손사래를 치시지만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오면 그렇게 좋아하신다.


외로움과 고독은 이처럼 시간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유독 사람들이 고독과 외로움에 대해 혼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저 위의 4가지 예시 중에 외로움은 무엇이고 고독은 무엇일까? 정답은 2번이 고독이고 나머지는 전부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결과적으로 벌어진 감정이다. 사회적 단절이나, 정서의 불안, 혹은 그냥사람으로서 느끼는 본연적인 외로움. 태어날 때부터 엄마의 품에 안겨 밥을 먹을 때나, 잘 때나 늘 부모 곁에서 보호를 받던 사람은 늘 주변에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혼자 남겨질 때 깊은 공허를 느낀다. 그게 결국 외로운 감정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 혼자가 아닌 친구를 사귀고, 누군가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이다.

고독은 결과론적 관점이 아닌 선택적 관점이다. 2번처럼 내가 선택해서 자의적으로 고독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대개 본인이 주변의 상황과 분리시키는 것이 첫 번째다. 고독은 자의식이다. 고독이 과하면 자의식 과잉이 된다. 나에게 집중하느라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것. 오로지 내 눈으로만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 하늘이 하늘색이 아니라 빨간색이라고 내가 생각하면 그냥 빨간색인 거다. 무엇이든 이렇게 극단적으로 치우치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나, 실은 고독은 현대사회에서 꼭 필요한 감정이다.

인생이 내 맘대로 풀리지 않을 때 사람은 의지할 누군가를 찾는다. 내 마음과 상태를 알아줄 나아가서는 그걸 해결해 줄 타인을 찾는다. 혹은 반대로 내가 잘못을 뒤집어썼을 때 책임을 돌릴 그럴싸한 대상을 찾는다.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서.  근데 결국 나를 알아줄 사람도, 책임을 돌릴 누군가도 없을 때에는 큰 좌절감에 빠지게 된다. 이때 나 혼자 만큼은 늘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고독이다. 눈 뜨고 코베이는 현대사회에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고독은 나에게 집중하는 것. 바로 단독자가 되는 것이다. 더 독립적인 사람이 된다. 타인의 평가, 시선에서 자유로워진다. 현대사회에서 대체로 청년들이 겪는 많은 문제들도 사실 이 고독이라는 감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늘 혼자 무언가 하길 두려워하며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했다. 혼밥, 혼자 여행하는 게 일반화된것도 사실 5년이 채 되지 않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늘 본능적으로 무리 속에 있어야만이 안정을 느낀다. 하지만 이는 관계 형성에 국한된 말이며, 혼자 보내는 시간과 균형이 있을 때에만 이 사회적인 모습 자체를 더 잘 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 균형이우리가 불편해하는 '고독'이라는 단어였던 것이다.

고독이 있어야 나 자신과 대면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진짜 내가 지금 객관적으로 어떤 상태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타인에게 맞춰서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았는지. 진짜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나도 그랬다. 21살 때 부친을 잃고, 큰 좌절과 슬픔에 빠져 못 헤어 나올 때가 있었다. 정상적인 삶을 살기가 어려웠다. 군대라는 조직에 속해있지 않았다면 나를 잡아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 오히려 규칙적인 삶이 있는 군대가 지나고 나서 보니 참 고맙다.

조물주는 죽지 않을 만큼의 아픔을 준다. 근데 그때의 아픔은 당시 21살의 내게 견디지 버거운 아픔이었긴 하지만 뭐 그렇다. 그때부터 난 우울함을 감추기 위해 더 밝은 척을 했다. 타인을 의식하면서 더 밝은 모습을 억지로 보였다. 십몇 년이 한참 지난 지금도 주변의 사람들은 나를 떠올릴 때 밝은 사람으로 떠올린다. 진짜 내 모습은 내성적이고 혼자를 즐기는 사람인데.

고독한 시간을 혼자 보내면서 나와 대화하며 문득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것이다. 심지어 그저께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고 집에 가는 길, 무리 속에 섞여있다 다시 혼자가 되는 그 감정이 적응이 안 되더라. 결국이 고독이라는 것은 애초에 타인이 해결해 줄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늘 고독 속에 있는데 가족이나 친구는 그걸 일시적으로 잊게 해 주는 매개체일 뿐이다. 그들도 각자의 집에 가면서 그런 생각에 사로잡힐지 모른다.

그래서 니체를 포함한 위인들이나 부모님, 어른들이 하는 말씀이 늘, "혼자서 여행을 해봐라,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봐라"라고 하시는 것도 어쩌면 피해왔던 고독이라는 감정을 키워주기 위함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깊게 파고들게 한다. 이걸 즐겨야 한다. 이걸 즐길 수 있는 사람만이 진짜 꾸밈없는 내 얘기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요즘 사람들은 생각을 안 한다. 뉴스기사 하나 보더라도, 손웅정이 축구교실에서 아이들을 학대했다는 기사가 있으면 그냥 그 자체로 해석해 버린다. '아, 학대했구나, 저 사람 못된 사람이네'.

왜 학대라는 표현을 썼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는지, 객관적인 사실과 개인의 도덕적 신념에 기반해 판단하지 못하고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 뉴스 1면에현대차 노조가 6년간 파업 없이 합의안을 이끌어냈다는 보도가 나왔다. 500%의 성과급과 1800만 원을 추가로 받아서 신입사원은 연봉이 9천만 원이란다. 이 기사만 보고 그냥 생각 없이 '아, 저기 들어가기만 하면신입사원은 9천만 원을 받는구나'라고 단정 지어 버린다. 실제로 그게 어떻게 해서 9천만 원인지, 기본급은 얼마인지, 사측은 왜 그 안을 받아들였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생각 없이 단편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이다.


누구나 고독을 극복하고 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만이젠 직접 이 감정에 맞서는 것이 그게 몰입이고 성장이다. 어쨌든 나처럼 글을 쓰는 사람에겐 이 감정이 가끔 찾아오는 건 여러모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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