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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Jul 15. 2024

우아한 루저와 불행한 위너

누구로 어떻게 살 것인가

현시점을 관통할 수 있는 단어다. ‘우아한 루저’와 ‘불행한 위너’. 누구를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위너와 루저라 재단할 수 있는가. 차마 이 명제에 이분법적으로 굳이 나눌 필요가 없을 만큼 이미 이 두 개의 삶은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어있다.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은 정해져 있다. 객관적인 지표(대부분 숫자)로 정량화할 수 있는 것. 직업, 학벌, 자산, 부모의 노후, 외모, 키, 몸매, 건강 등. 이 객관적인 지표는 삶을 살아가면서 미래의 인생계획을 세우는데 보탬이 될 수도, 혹은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상위 5%를 제외하고 본인이 이 정량적인 것들이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크게 많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는 남녀가 소개팅을 할 때에 맞춤법을 틀리는지, 부모는 한 달에 얼마의 생활비가 들어오는지 건강검진표를 서로 주고받으며 만날 판이다.


위너를 직역하면 승리자. 모든 정략적 스펙을 훌륭히 갖춘 사람이다. 전문직에 키는 180이 넘고, 준수한 외모와 성격까지. 루저는 직역하면 말 그대로 실패자.

정형화된 삶의 퀘스트와 기준을 아직 채우지 못한 사람이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아한 루저의 루저는 명목상의 이름표일 뿐이다. 이 세상은 한 루저를 특정 기준에 맞추어서만 루저라 부른다. 하지만 본인은 본인의 삶이 그 자체로 우아하고, 만족하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위너는 사회에서 높이 추켜세운다. 배울 만큼 배웠고, 벌만큼 벌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근데 삶이 불행한 사람이 주변에 있다. 심지어 루저집단보다 많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 매일 야근하고, 애보고, 하고 싶은 일은커녕 수면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삶을 되돌아볼 겨를도 없이 그냥 불행하다. 근데 이 불행한 사람들은 아주 놀랍게도 사회가 원하는 바를 어릴 때부터 착실히 한 사람들이다. 어릴 때 엄마가 학원 5~6개 보내면 삐뚤어지지 않고 숙제도 잘해가고, 대인관계도 원만하고, 성적은 늘 좋고, 자라면서 부모 속 썩이는 일 없이 모범적으로 커 온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대체로 전문직이나 고위공무원 같은 초엘리트 집단이나 그것이 아니라면 어떤 시험에 합격하거나 이름 있는 회사 사무직 정도는 다 하겠지. 위너는 삶의 정형화된 기준의 경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전보다 더 많은 것을 잃는다. 그건 시간이다. 시간은 갈수록 줄어들어 자유를 아예 속박당한다. 니체는 이런 말을 했다. 하루에 3분의 2를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하면 그것은 노예라고.


예를 들어보겠다. 난 가장 동경하는 연예인으로 노홍철을 늘 꼽는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거든. 친형은 카이스트 나와서 지금 일본에서 교수님을 하고 있다. 근데 본인은 형처럼 공부도 못했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려고 길거리에 뛰어들었다. 그 방송이 대박 나 공중파로 진출하고, 무한도전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대스타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하루가 다르게 외국을 돌아다니며 본인이 하고 싶은 걸 모두 이루면서 산다. 믈론 노홍철 형은 다행히 불행하지 않을지 모른다. 한 준거집단의 일부만 얘기한 것이니. 근데 비교군이 무색할 정도로 노홍철은 매우 행복한 삶을 산다.


결론은 명목상 이름표는 그 자체로 껍데기일 뿐이며, 내가 우아하고 행복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자, 그럼 우리 같은 일반인이 루저든 위너든 각자의 이름표를 달고 우아하게,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하라는 숙제 안 하고 중학교 중퇴해라? 대기업, 공기업, 전문직 다 하지 말고 당장 퇴사해 버리고 원하는 것 찾아라? 용기 있는 사람은 그럴 수 있다. 근데 99%는 그렇게 못한다. 오히려 이를 ‘무모함’이라 힐난한다. 일자리는 곧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그렇다. 생계를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학생은 공부를, 직장인과 자영업자는 일을 하지 마라는 소리가 아니다. 본인의 건강과 신념을 헤치면서까지 과하게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다. 방법을 소개하자면 먼저, 열정은 필요하나 잘해야 한다는 집착을 버린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무조건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린다.


“아, 이번 시험은 무조건 1등 해야 돼”,

“이번 인사고과는 꼭 잘 받아서 승진해야 해”

“재수를 하면 무조건 SKY대학교에 가야 해”


위와 같은 생각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상황만 조금 다를 뿐 전체적인 관념 자체는 동일하다. 그냥 내가 해야 할 것에 기본에만 충실한다. 그리고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아, 집값이 계속 오르는데 일 년 뒤에는...”,

“빨리 결혼을 나중에 해야 하는데 나는 언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미리 걱정해 봤자 지금 나만 불행할 뿐이다. 제일 바보 같은 짓이다. 그냥 인생은 어떻게든 흘러가게 돼있다. 그냥 그때 가서 닥치면 하면 된다. 그때가면 또 그때의 해결책이 있다. 이번 여름휴가 때 시간은 있는데 어딜 갈지 못 정했다면 아무 데나 지도 보고 그냥 가서 즐기면 된다. 미래의 나한테 맡기고 가면 된다.

‘아, 이다음에 뭐 해야지, 해야지’, 하지 마라. 계획은 버리는 순간 그게 진짜 여행이고 그 여행이 곧 인생이다.

나와 함께 쿠바 여행을 했던 내 친구는 쿠바 경찰관 모습을 보고 반해 경찰시험을 준비해서 지금 경찰을 하고 있다.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에 갔다가 맥주 맛에 반했던 내 친구는 현재 맥주회사에서 고속승진해 벌써 차장이다.

인생은 계획을 세운다 한들, 어떻게 바뀔지 모르고 그 아껴뒀던 휴가를 미래에 못쓰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 대부분에게,

“어떻게 당신은 성공할 수 있었나요?”

라고 물으면 장담컨대 80% 이상이 하는 말이

”그냥 하다 보니 운 좋게 얻어걸렸어요”

라고 대답한다. 진짜다. 그거 하나만 죽어라 파는 괴짜도 물론 있었겠지만 인생에는 그렇게 열심히만 한다고 긍정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스트레스는 오히려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기본에만 충실하고,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 말자.


다음으로 해야 할 것이 있다. 이게 제일 중요하다. 해야할 것의 기본에 충실해 그 남은 에너지로 내가 재밌는 걸 계속한다. 어떻게?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열심히 재미없게 하면 바로 앞서 말한 ’불행한 위너’가 된다. 재미없는 일을 하는데 시간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상을 기대하거든. 그건 금전적 보상일 수 있고 정신적인 보상일 수도 있다. 회사가 우리한테 돈을 왜 주나? 재미없는 일을 하루에 아침 9시부터 밤 6시까지 잔말 말고 자리에 앉아 얌전히 해주니 월급도주고 성과급도 주는 거다.

내가 재밌는 걸 조금씩 계속해 나간다. 그럼 ‘우아한 루저’가 될 수 있다. 이걸 꾸준히 계속하며 운까지 아주 조금 따라준다면 모든 걸 갖춘 ’우아한 위너‘가 된다.


현대사회에서 지금 청년의 삶은 이렇게 레벨업 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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