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처우개선에 대하여
‘누칼협’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는 말’이다. 본인이 선택한 것에는 본인이 책임을 지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예를 들어 떨어지는 주식을 산 누군가가 괴로워하고 있으면 “누가 사라고 누칼협?”
운동 안 하고 살찐 누군가에게 “누가 운동하지 말고 많이 먹으라고 누칼협?” 이런 식이다. 단, 마음먹고 악용하면 모든 문제를 앞뒤 상황 다 자르고 개인 선택의 책임으로만 치부해 버리는 아주 위험한 말이다. 이 단어가 요즘 가장 많이 쓰이는 주제라고 한다면 단연 공무원이다. 공무원의 처우에 불만이 쏟아지자, 사람들은 모든 위선과 부조리함은 덮어버린 채 ‘누가 공무원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나?’며 조롱하기 바쁘다.
실제로 인터넷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젊은 세대가 현재 공직을 떠나고 있다. 내 주변에서도 벌써 의원면직이나 휴직을 한 사람이 세명이나 된다. 무엇이 이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았을까. 누칼협 같은 조롱만이 이들을 이렇게 만든 게 아니다. 본인도, 공무원 조직도 바라지 않는 지금 같은 결과는 우리에게 어떤 더 나은 답을 내려줄 수 있을까. 먼저 나를 포함한 내 친인척은 공무원과 1도 상관없는 사람임을 밝힌다.
공무원이 하는 일은 일단 나라를 위한 일이다. 당연히 애초에 스타트업처럼 자유로운 분위기가 될 수 없는 수직적 조직이다. 공무원을 준비하는 모두가 이를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월급을 매년 파격적으로 인상할 수도 없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다 세금이거든. 국회의원들도 월급 줄여라, 줄여라하는데 9급, 8급 말단공무원 임금 인상해 주면 주변에서 가만있겠나.
공기업 자기소개서를 보면 사기업 자기소개서와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사기업은 도전, 성과창출, 능력이 가장중시되는 단어라면 공기업은 청렴, 정직, 기여와 같이 단어가 뜻하는 주체 자체가 다르다. 사기업은 개인에 조금 더 치중한다면 공기업은 우리, 그리고 국가다. 공무원도 이와 같다. 나 하나로 하여금 우리나라가 정상적으로 잘 돌아가도록 사명감을 가지고 봉사하고 헌신해야 하는 직업인 것이다. 하지만 그 헌신에는 괄호로 많은 단어가 축약되어 있다.
(임금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악성민원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받아 죽을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복지는 거의 없다시피 해도 불구하고), (연금이 반토막 남에도 불구하고), (조직이 수직적이고 비효율적임에도 불구하고) 헌신해라. 이 말이다.
물론 요즘은 충주시 김선태주무관을 비롯해 공기업 코레일 기관사, 양산시 등 MZ세대를 타깃으로 하여 신박하고 참신한 홍보로 공무원채널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건 고무적이나, 온전히 국민들에게 보이는 단면적인모습을 나타낸 것들이고, 실제 조직은 아직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 왜 공무원의 처우가 개선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그것이 논쟁의 여지도 없이 당연한 건지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먼저, 임금이다. 얼마 전 2025년 타결된 최저시급 임금을 보자. 결국 만원이 넘어 10,030원이다. 현재 2024년은 2023년 대비 2.5% 인상되어 9,860원을 받는다. 월 기준 206만 원 정도다. 근데 9급 공무원 1호봉 월급은 얼말까. 직종별, 연차별 모두 개인차가 있겠지만 많아봤자 190~200만 원선이다. 최저임금이랑 크게 다를 바 없다. 직급보조비며, 급식비며, 대민활동비,시간 외 기본으로 깔아주는 수당 더해서 세전 금액은 250~260만 원 정도 되겠지. 근데 세금 공제되는 걸 보자. 소득세, 기여금, 보험료, 다 떼가고 나면 실제로는 많아야 200 남짓이다. 이러니까 중소기업이랑 비교당하는 거다. 요즘 밖에서 밥 한 끼 먹으면 최소 만원인데힘들게 공부해서 공무원 됐더니 이 돈으로 어떻게 결혼하고, 집 사고, 정상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연금? 지금 40대, 50대들 얘기다. 국민연금과 통합하니 뭐니 지금 연금 반토막도 2030은 기대 안 하고 있다. 더 웃긴 건 그 돈으로 살다가 최소 만 60세 넘어야 받는다는 것. 많이 받는다는 것도 어불성설인 게 퇴직금도 없는 데다 그만큼 일반 사기업직원보다 애초에 많이 내니까 많이 받는 거다.
다음은 업무 스트레스. 스트레스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민원이다. 공무원에서 가장 기피하는 직무. 이 민원업무를 하면 한 달도 안돼서 인류애를 잃어버린다. 세상에 미친놈들이 얼마나 많은지 바로 알 수 있다. 악성민원을 넣는 사람들은 본인이 공무원의 대응에 불편함을 느꼈다거나, 정상적인 일처리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민원을 넣는 것이 아니다. 그냥 넣고 보는거다. 그냥 무조건 해야 하는 당연한 권리라는 듯이 습관처럼 그냥 넣는다.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직이 내 생각에 모든 직업 중 스트레스가 제일 극에 달할 것이라고 단언컨대 말할 수 있다. 그냥 회사 스트레스로 단순히 치부할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생활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뉴스에 공무원 자살하고, 의원면직 많이 하고 당연히 공무원 아닌 사람들은 ‘왜 저렇게까지 하지? 엄살떨고 있네’라고 생각하겠지, 본인 일이 아니니까. 욕먹고 싸대기 맞고, 발로 까여도 민사 소송 못한다. 왜냐면 공무원은 언제나 (국민을 위한) ‘을’이거든. 괜히 본인 권리 주장한답시고 소송 걸어봤자 윗사람들이 가만 놔두겠나? 괜히 귀찮은 일 하나 더 생기고 본인만 피곤해지는데. 팀장은 밑에 직원 관리 못했다고 욕먹고 인사 불이익받는다. 회사나 공무원이나 모든 조직은 잘하는 건 둘째 문제고, 가만히 그냥 문제 안 일으키는 게 제일 우선이거든. 자, 힘들게 싸대기 맞으면서 민원 대응했다고 하자. 신고도 안 했다. 근데 본인은근무평가 민원 많이 들어왔다고 최하점 받는다. 어떻게 이런데 공무원에 대한 회의감이 안 들 수 있겠나? 힘들게 대학 졸업하고 노량진행을 선택한 그때의 본인을 얼마나 후회하겠나. 7급 위부터는 전부 2년 단위로 민원업무 돌아가면서 시켜야 한다. 결재 승인 몇 개 누르고 월 500~600 벌어가는 팀장들도 직접 상대해 보고 말단직원들의 고충을 알아야 해결될 문제다. 이미 썩어버린 윗직급 들은 어떻게든 하기 싫은 업무, 실적 안 나오는 업무 8급, 9급한테 다 미룬다. 그들은 업무과중으로 스트레스받고 악순환이 매년 그렇게 반복된다.
심지어 공무원세계는 부조리도 극에 달한다. 과장님, 국장님 모시는 악습도 있다. 일 몰아서 받고 월 200 받는 9급, 8급 직원들이 매주 돌아가면서 과장님 밥 사주는 날이란다. 일명 밥당번. 왜? 본인 인사권자거든. 잘 보여야 되거든. ‘모시는 날’ 아니 무슨, 임금님이세요?이젠 월 200받고 의전까지 하란다. 기가 찬다.
다음은 인수인계다. 이 조직이라는 데는 몇십 년 동안 어떻게 굴러갔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무슨 중소기업도 아니고 대한민국 공무원이라는 집단이 제대로 된 인수인계 매뉴얼도 없다.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본인이직접 경험하면서 배워야 한다. 전임자라도 있으면 다행이지, 인사이동 철이면 전임자도 가버리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떤 새로운 걸 배우는 데에는 집중해야 하고, 긴장해야 하기 때문에 늘 스트레스가 상존하기 마련이다. 그냥 한마디로 굉장히 수고스럽고귀찮은 거다. 근데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다 생각해 봐라. 진짜 돌아버린다.
마지막으로 이직문제. 아, 공무원 하다가 대기업으로 이직한 내 친구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로 심지어 2년 이내 경력에 한정이다. 게다가 3년 이상 공무원으로 근속하면 다른 데 가기 어렵다고 보면 된다. 써먹을 데가 없잖아. 다른 사기업은 실력 있으면 연봉 점프할 기회라도 있지 여긴 뭐 답도 없다. 연금과 안정성을 무기 삼아 조직은 더 남으라 선동하고, 공무원은 지금 당장 충족되는 게 없어 미치려고 한다. 동상이몽이다.
안정성? 철밥통이라고? 응, 맞아. 근데 철밥통에 밥이 없어. 여자한테 다니기 좋은 직장이라고? 육아휴직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요즘 사기업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눈치안 준다. 공무원은 심지어 육아휴직에 굉장히 자유롭다고 말하는데 갔다 오면 승진누락되는 거 똑같다. 자, 이러면 또 심경이 매우 불편하신 40대, 50대 아재들이 뭐라 할 것 뻔하다.
힘들면 그만둬, 너 그만둬도 할 사람 많아. 누가 하랬어?”
하겠지. 아저씨 아주머니. 제발 현생을 사세요. 안타깝습니다.
공기업은 특히 인천국제공항공사나, 탑티어 기업들 금융공기업 A매치, B매치하는 곳은 돈이라도 많이 준다.연금은 안 나올지언정 사기업에 그렇게까지 뒤지지 않는 연봉으로 네임벨류에 걸맞은 임금이나 혜택을 누린다. 국가를 위한 사명감도 다 돈에서 나오는 거다.
우리는 여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공무원이 월급 개선된다 해서 내 월급이 줄어드는 게 아니다. 존경스러워야 하는 직업이 가장 낮은 자존심을 가진 직업으로 전락했다. 전 세계 전무한 공무원의 가장 빠르다는 서비스는 당연하고 처우개선에는 왜 급발진하는가. 내로남불도 정도가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공무원을 만만하게 봤나. 내 아들, 딸이 공무원이라도 이럴 것인가. 무조건적인 반감과 비난을 지양하고, 이젠 우리가 놓인 진짜 현실에 눈을 떠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