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시작과 끝
내 십년지기 친구는 교행직 공무원이다. 교행직이라고하면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초중고 행정실이나 교육청 등에서 근무하는 직원을 말한다. 교사와 같은 공간에서 일하면서 차별대우나 사회적 인식면에서 꽤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그녀는 지금 같은 방학 때 빨리 마치고 본인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점에서 매우 만족해했다.
이 직렬의 공무원은 두 분류로 나뉜다. 친구처럼 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며 이른 퇴근과 반복적으로 예상가능한 평이한 업무를 할 수도 있고 반대로 교육청에서 근무하면 일반직이 많아서 근무환경이 좋으며 일은 좀더 난이도가 있다. 일반기업으로 치면 본사에서 근무하냐 지사(지점)에서 근무하냐 이 차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그녀가 얼마 전 휴직을 했다. 업무와 사람 스트레스로 다른 일을 알아본다고 한다. 다른 일을 해보고 다시 돌아가기 위해 휴직은 최소한의 보험장치나 마찬가지다. 동사무소에 다니는 또 다른 내 친구는 민원 때문에 의원면직도 고려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한다. 그렇게 공부해서 합격해서 그만두는 건 끈기부족이라고. 그거 하나 못 버티면 의원면직 후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 거냐고.
어떤 한 가지 일에 대한 파급력은 개인별로 상대적이기 마련이다. 고통의 정도나 참된 이치, 도덕적 신념, 직업 가치관 등 모든 건 상대적이기에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이를 만약 욕하는 사람이 있다면 퇴직자에게 매월 일정금액의생활비를 줄 거 아니면 욕할 자격 없다. 다 각자의 인생일 뿐.
오히려 그 윗사람이나 동기들은 왜 그만두는 구조가 만들어졌으며 어떤 부분이 개선되야 하는지를 반문해야 한다. 악성민원 하루에 수십 개, 수백 개 오는 걸 보면 알 수 있듯 공무원은 현시점 국민들에게 제일 만만한 직업으로 통한다. 모든 중소기업이 공무원과 비교되고, 잘못된 건 다 공무원에 갖다 붙이고 아주 못 잡아먹어 안달이다.
50대와 우연히 술자리를 한 적이 있다. 우연히 2030의 직업얘기를 하다 공무원 얘기가 나왔다. 공무원은 아무런 꿈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예전에는 반에서 꼴찌 하는 사람들이나 갔던데라고. 일말의 국가에 대한 사명감 따위는 없는 애들이라고.
아, 사명감이 없는 건 맞다. 주변 공무원 중 사명감 있는 사람 한 명 못 봤다. 왜냐. 사명감도 돈에서 나오니까. 근데 요즘 2030에게 감히,
‘아, 그냥 할 것도 없는데 공무원이나 해볼까?’
과 같은 생각을 한다는 소문은 얼마나 허황되고 날조된 것인지 모르는 이들은 없다. 사명감은 없을지언정 포기할 거 다 포기하고 피나는 노력으로 그 자리까지 간 사람들이다. 이 노력을 까내리는 사람들은 직접 겪지 않아도 알만하다. 직업의 귀천은 없어도 수준 낮은 사람들이 많은 직업의 부류는 늘 존재하는 법.
아, 어쩌면 실제 한국사회는 애초에 귀천이 존재하기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나온걸지도. 뭐가 됐든 멸시나 차별보단 존중과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직업인데공무원을 봉으로 아는 악성 민원인들은 이유 없는 당당함으로 그들을 괴롭힌다. 민원을 넣어도 최소한 그 민원의 악랄함의 정도가 그들을 그만두게 할 정도는 되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사실 내가 겪은 50대의 말처럼 청년들이 9급 공무원을 꿈꿀 수밖에 없는 루트를 말해주겠다. 현대사회 소위 청년들이 바라는 직업은 다양성이 결여돼 있다. 특히 서울이 아닌 지방은 더하다. 양질의 일자리는 한정돼 있고, 어느 세대나 그랬듯 먹고살려면 생계를 위해 일단 돈을 벌어야 한다. 청년대졸 백수 400만 시대에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가려는 이들이다. 예외는 물론 있으나 주변에서 직접 겪은 대다수의 공시생 입문과정예시를 들어보겠다.
1. 4년제 대학 졸업이 1년 남았다. 3학년쯤 취업을 위한 컴활자격증이나 토익공부를 한다. 공부를 손 놓고 있진 않았기에 최소한의 기본기는 있다. 학원을 다녀서 빡세게 한두 달 해보니, 토익점수가 800점 후반에서 900점 초반은 나온다.
2. 졸업을 앞두고 혹은 졸업 후 본격적으로 여기저기 입사지원서를 넣는다. 원했던 기업은 사실 크게 없다. 한두 시즌 해보니 죄다 떨어져 자괴감과 깊은 무력에 빠진다. 이 모든 이유가 학벌과 스펙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3. 학벌과 학점, 그리고 스펙에서 자유로운 공무원이 눈에 띈다. 주변 사람들이 제일 문제다. 성공사례만 여기저기 귀에 들려온다. 6개월 하고 붙었다더라, 공부머리 있으면 할 만하다더라 등등. 불공정한 현대사회에서 시험하나로 오직 노력으로만 승부를 볼 수 있는 공무원에 조금씩 관심이 간다. 연금이나 정년보장 모든 면에서 안정적인 삶을 가능하게 해 줄 것만 같다.
4. 평소 외우는 건 자신 있고 끈기도 있어서 단기간에
최대효율을 뽑을 수 있는 공무원에 도전한다.
5. 빡세게 해서 붙는 이들이 있고 누군가는 실력과 노력이 부족해 장수생이 된다.
이런 결심이 서기까지 내 친구는 과연 얼마나 큰 고민을 했을까. 인생을 결정짓는 큰 결정에 그녀는 뛰어든 것이고 그 노력에 걸맞게 목표한 바를 이뤄낸 것이다.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앞서 말한 말단공무원이 국가에대한 사명감이 있을 수 있겠냐만은 적어도 내 친구를 포함한 지금 노량진에 서 오늘도 젊음을 바치는 그들은 본인의 노력으로 본인을 증명하는 길을 그렇게 걷고 있다. 공무원이 쉽게 이룰 만큼의 성취였다면 일찌감치 애초에 의원면직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 친구가 시험칠 때 당시 경쟁률은 90대 1이었다.
미국에 가기 전 그녀는 노량진에서 패딩에 츄리닝차림으로 나를 만났다. 이제 막 공부를 하러 노량진에 올라온 노량진 새내기였다. 고시원, 학원비, 식비까지 하면 한 달에 아껴도 최소 백만 원이란다. 그리고는 삼천오백원짜리 컵밥을 함께 하나씩 시켜 먹었다. 참기름냄새가 고소히 올라왔고 삼천오백원 치곤 맛도 있었다. 일주일에 7번을 먹다 너무 지겨워서 한 달만 먹다가 한식뷔페나 햄버거, 김밥천국으로 갈아탔단다. 술담배도안 하니 일주일 중 하루는 먹고 싶은 치킨이나 엽떡 등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지금 한산한 노량진 컵밥은 그때 줄을 서야 할 정도로 그렇게나 큰 인기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과 함께 난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때 내 기억에 가장 인상 깊었던 노량진은 청춘의 애환이 공시생의 모습도 있었지만, 유흥의 메카이기도했다. 피시방이 한 시간에 800원하고, 한신포차 같은 술집에는 늘 청춘남녀로 붐볐다. 방심하면 그 누구보다 청춘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심지어 부모님은 떨어져 있고 공부하라고 돈도 주겠다 얼마든지 일탈이 가능했다.
하지만 친구는 하루 순공 열한 시간씩 공부에 집중했다. 놀랍게도 술은 일년 육개월 간 한 번도 마시지 않았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현강 맨 앞줄에 앉기 위해 매일아침 줄 서고 피 터지게 공부에만 전념했다. 일 년이 넘도록 화장도 거의 안 해서 사람들이 고등학생인 줄 착각했다고 한다.
일 년 반이 지나고 한국에 와서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당당하게 공무원증을 내밀었다.
이랬던 그녀에게 3년이 지난 지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90대 1 하던 경쟁률이 20대 1, 30대 1로 줄고 그녀는 다른 길을 알아보려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