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불편러들만 가득한 현대사회
이 세상엔 부자들이 많다. 현대인은 그런 부자가 되기 위해 혹은 그들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기 위해 오늘도 직장인, 공무원, 자영업 등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한다.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부업을 하고, 재테크를 하고.
대개 한 개인이 가진 고유한 가치관은 태어나서 10살 이내 약 10년 안에 모두 확립된다고 한다. 이 나이대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 부모의 영향이 가장 크다. 좋은 곳에서 좋은 음식을 먹이고 아낌없이 사랑을 주면서 가정교육에 그토록 부모들이 집중하는 이유도 결국 아이가 바른 인성을 갖고 이 나이 때까지 곧은 가치관을 확립하도록 돕기 위함이다.
자, 그럼 10세부터 20세 그다음 10년은 어떨까?
그전까지 본인의 고유한 인성이나 가치관이 정해졌다면 이 10년에는 대개 본인 인생의 전체 그릇이 정해진다. 그릇이 넓고 비상한 이들은 그 무게를 견디며 더 뻗어나가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그 그릇 안에서 본인의 꿈이나 목표를 세워나간다. 피나는 노력 끝에 인생의 운명이 뒤바뀌는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평균’을 말하자면 그렇다.
이 그릇은 앞서 말한 후천적인 것 즉,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있지만 노력으로 성공한다한들 힘든 고통이뒤따른다. 즉, 역시나 유전적 요소가 가장 크게 발현되는 영역이란 거다.
예를 들어, 어릴 때부터 수학에 비상한 역량을 가진 애가 올림피아드 대상도 타고, 전국 대회도 나가 중간에 귀인을 한 명 만나 더 크게 성공하는 게 빠를까 아니면 수학에 재능이 1도 없는 애가 학원만 뺑뺑이 시키고 고액과외시킨다고 시험을 잘 봐 성공할 확률이 크겠나. 당연히 전자다. 결국, 한 사람이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누구나 말하는 ‘성공’을 위해서는 본인의 그릇전체를 넓히려는 노력보다 그 그릇 안에서 본인이 조금 더 잘할 수 부분을 찾는 것이 더 빠르다는 얘기다. 그릇의 크기는 어차피 태어나 20년 안에 다 정해져 있으니까.
사람은 인생에서 기회가 무조건 온다. 그 기회라는 게 누군가에게는 한번 올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여러 번 올 수도 있다. 하나 확실한 건 이 기회라는 게 무조건 최소 한번 이상은 언제 어디서든 꼭 온다는 것이다. 근데 이 기회는 대개 미래의 장래성, 포텐셜보다 현재 그 기회를 즉시 잡을 수 있는 역량을 ‘이미’ 갖춘 사람에게더 활용하기 쉽도록 짜여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그릇이 크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애초에 기회를 잘 잡아 이 자본주의에서 보통 사람들이 만질 수 없는 돈을 만지면서 사는 것이다. 애초에 그릇이 큰데 노력까지 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그냥저냥 그 그릇에 맞게 안분지족 하며 사는 보통의 사람들, 그리고 큰 그릇과 역량으로 아주 많은 돈을 벌면서 사는 사람들. 양극단의 이 두 집단은 각자 이 인생에서 나름의 행복을 만들어간다. 이 중에서 계층 간의 이동을 원하는 이들의 답은 하나뿐이다. 바로 현재를 부정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가는 ‘피나는 노력’. 각자가 정한 분야에 포기하지 않고 세상에 당당히 검증할 수 있는 법밖에 없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도 아무것도 없는 밑바닥에서 위로 올라간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반대로 계층 간의 이동을 아예 원하지 않는 후자의 사람들은 더 낮은 계층으로 이동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 나름대로 또 역량을 개발해 나간다. 더 많은 걸 얻고자 함이 아니고 가진 걸 더 잃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자본주의는 굴러간다.
근데 가난에 찌들고 능력도 없어 계층의 끝자락에 있는 이들이 오해하고 있는 게 있다. 돈도 잘 벌고 능력도있는 계층의 사람들이 전부 행복할 거라는 착각이다. 돈 많고 능력 있으면 물론 좋다. 근데 자, 예를 들어 내가 능력이 있어 월 1억을 번다고 가정해 보자. 월 1억만벌고 그다음 달은 다 그만두고 그 1억을 흥청망청 여행하면서 탕진할 것 같은가? 그러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근데 99%의 능력자들은 아니다. 내가 월 1억을 버는 역량이 있는데 당연히 다음 달도 1억 벌고 싶고, 그다음 달도 1억 벌고 싶겠지. 계속 노동을 투입해 월 1억씩 벌어나간다. 자, 그럼 어떤 문제가 발생하냐.
그럼 월 1억을 버는 법에 대해 주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것이고, 본인에게 모르는 사람이 몰린다. 연락 끊겼던 과거의 벌레 같은 사람들까지 다 모인다. 돈에는 장사 없기 때문에. 그중에는 나쁜 마음을 먹고 사기 치려는 사람도 있고, 진지하게 배우고 싶어 본인을 따라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빼낼 거 없는지 본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본인이 조금이라도 방심한 틈을 타 내 전재산을 훔칠 계획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너무 배알이 꼴려 미치겠거든. 부모나, 가족들, 친척들은 본인에게
핏줄이라는 '당연한' 논리로 자연스레 더 많은 기대치를 갖게 되고, 만약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금방 불효자로 전락한다. 아무리 과거에 잘해줬다한들필요없다. 버는 돈에 비해 본인에게 못해줬다 이거다. 똑같이 만원이라도 본인은 이 만원을 천 원의 가치처럼 대하는 줄 착각하고 다른 세상의 사람인 양 사람을 평가하고 재단해 버린다. 아주 작고 미세했던 본인의 열등감은 불편함으로 치환되어 당사자를 아주 위협적으로 투영시킨다.
최근 논란인 곽튜브나 노홍철만 봐도 똑같다. 대부분의 대중들이 아는 내용이라 내용자체는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지금 현재에도 1분 단위로 곽튜브의 유튜브에는 악플이 달리고 있고, 본인의 잣대가 '정답'인 양, 유명인은 무조건 이를 견뎌내야 한다는 명목아래 사람들은 훈계나 조언의 탈을 쓴 폭언을 일삼고 있다.
왜 매사에 불편한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걸까. 왜 이들에게 조금 성공했다고 지나치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들이대고 내로남불 심보로 나락 보내기에 안달 난 걸까. 이들은 먼저 가장 먼저 본인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은다. 불편함을 서로 공유하고 조금 받아준다 싶으면 뜻을 한대로 모아 다수의 집단이 되어 세상에 떠들어댄다. 소수보단 다수가 당연히 힘이 세기 때문에 먹힐 거라는 논리다. 마치 드래곤볼에 원기옥을 모으는 것처럼 이 세상 모두 퍼져있는 숨겨진 이들을 모으고 모아 잘못된 생각을 선동하고 그 부자를 향해 손가락질 해댄다. 이는 단순히 앞서 설명한 타인의 불행을 기쁨으로 느끼는 '샤덴프로이데'외에도 열등감이 가장 근본이 된다.
청년 실업자 100만 명 시대에 본인은 일자리도 없고, 내세울 것이 없어 동창회도 못 나가고, 결혼도 못하고, 연애도 못하는 와중에 잘 나가는 사람들이 아니꼬운 거다. 돈 좀 번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결국 본인보다그들이 잘났기 때문에 어떻게든 끌어내리려고 한다. 그 부자를 끌어내려야 본인이 그 자리를 꿰찰 수 있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근데 이것도 아주 소수다. 대개 이들은 능력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또 올라가려는 의지조차 없다. 의지가 없으면 앞서 말한 기회가 나중에 주어진다 해도 능력이 없으니 잡지를 못한다. 계속 그 자리에 평생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 그러면 그들이 올라갈 수 없으면 방법이 뭐가 있나.잘 나가는 놈들을 다 끌어내리는 것이다. 그것도 크게 힘 안 들이고 방구석에서 아주 비겁한 방법으로. 키보드 몇 번 치면 된다. 그래야 마음의 안정이 온다. 이런 현대인이 한국엔 유독 너무 많다. 냄비근성이라 감싸기엔 그 냄비가 너무 거대하다. 시기와 질투로 뭉친 민족이다.
월 1억을 버는 가상의 이 인물은 이 모든 걸 안아야 한다. 남들이 목숨을 걸고 본인을 끌어내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걸 뿌리치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한다. 근데 이게 참 어려운 게, 한둘이 아니고, 마치 바퀴벌레처럼 이 장애물들은 떼를 지어 움직인다는 게 문제다. 이 바퀴벌레는 심지어 모르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본인의 친척이나 가족도 해당될 수 있다. 단지 능력이 있고 돈을 잘 번다는 이유로, 게다가 핏줄이네? 바로 그냥 빨대 꽂는거다.
결국 월 1억을 번다고 해서 인생이 절대 행복하지만은 않다. 돈만 많아서 행복했다면 왜 부자들이 자살하겠나. 과거에 라디오스타 방송에 나왔던 말처럼, 결국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몰라야 한다. 본인을 제외한 아무도 본인이 그만한 재산을 가졌다는걸 몰라야 한다. 능력이 많아서 매월 버는 돈이 많아도 그 수입은 철저히 숨겨야 한다. 그게 자본주의에서 그나마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원리다.
즉, 남들에게 우리는 ‘적당히’,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만큼 잘 나가야 한다.
내가 월 1억을 벌 때, 진짜 월 1억을 버는 자체에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주변에 과연 몇이나 있을 것 같은가. 내가 망했을 때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사실 널리고 널렸다. 어렵지 않다. 마음에 없다 한들, 그냥 힘내라며 곁에 있어주면 된다. 그래봤자 당사자에게 티도 안 나고 상관없다. 속으로는 좋아하든, 진짜 슬퍼하든 사실 당사자에는 구분이 쉽지 않을뿐더러 본인이 현재 힘든 위치이기 때문에 크게 구분할 여력도 없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잘 나가고, 부자일 때 주변에서 불편해하지 않을 사람 선별할 능력을 우리는 가져야 한다. 그게 어떻게 보면 부자의 가장 완성단계고인생을 진짜 잘 산 것이다.
내가 잘 나갔을 때 그 무수한 불편함 속에 편함을 느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가. 앞만 바라보고 달려 돈 많이 벌고 연봉올리고 목표를 이루어 나가는 것도 좋지만 옆을 한 번쯤은 보고 가야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