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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Sep 13. 2024

친절과 호의를 베풀면 호구된다

호의는 가족과 친구한테만

최근 관계에서 뇌리에 아주 깊게 박힌 일이 몇 개 있다.이 일들 사건 전말을 모두 밝히는 건 아팠던 기억을 소환해 하루를 망치고 싶지 않기에 하지 않는다. 다만 이 일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두 가지가 있는데 먼저 말하고 싶은 건 일로 틀어진 관계는 매우 돌리기 힘들다는 것. 비즈니스로 만났다는 건 다시 말해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기대치나 이익이 있기 때문에 그 만남이 이뤄진 것이다. 특히 사회에서는 한 개인이 타인의 비즈니스나 신상에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면 일을 넘어 감정싸움이 되어버린다. 일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싫어지는 것이다.

애초에 그 사람이 본인에게 어땠든, 얼마나 잘해줬든 상관없이 사회에서 만나 본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절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서로를 이해시킬 수도, 이 전 관계로 회복할 수도 없다. 노력을 아무리 해도 손뼉이 맞아야 박수가 나듯, 시간낭비일 뿐이다. 그래서 줄곧 친구끼리 사업을 하지 말고, 장사도 하지 말고, 돈도 빌려주지 마라고 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서로 이익을 취하는 관계로 가지 말라는 속뜻이 담겨있다. 한 가지 일에도 사람은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기에 수백만 가지 해석이 있다. 예를 들어, 실제로 A와 B가 동업해 A가 일을 더 많이 하고 돈을 더 많이 벌어줬어도 B는 본인이 그랬다고 생각하며각자의 상상을 펼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어떤 방식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즈니스에서는 각자가 바라는기대치 이상의 퍼포먼스를 내야 하기 때문에 잘 될 확률보다 틀어질 확률이 일단 훨씬 높다. 내 친구들 중 같이 장사를 하거나, 돈을 빌려줘서 관계가 더 좋아진 경우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손절을 한 경우가 99%다.


자, 그럼 방법은 하나뿐이다. 본인이 소중히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비즈니스 관계 자체를 만들지 않으면된다. 어떻게든 같이 일도 하지 말고, 애초에 건수 자체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회사에서 입사동기들끼리 왜 같은 팀에 안 보내고 각 팀별로 한 명씩 배치하는지 아는가? 관계의 틀어짐을 막는 용도도 있다. 관계가 안 좋으면 어쨌거나 조직자체의 성과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또 직장인들아. 잘 생각해 봐라, 위로 직급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외로워지는 경우를 많이 봤을 것이다. 처음에는 동기들과 밥도 매일 먹고, 여러 상사들과 친하게 지내고, 사적인 얘기도 하고 했는데 나중에 본인이 팀장이 됐다고 하자. 밥도 혼자 먹는다. 아니면 밑에 사람들이 (본인은 싫은데) 억지로 순번을 바꿔가며 나랑 먹어준다. 왜냐? 어떻게든 그 팀장밑에 있는 팀원들은 거리를 두려고 하기 때문이다. '팀장'이라는 직책에 대한 부담도 있겠지만, 비즈니스적으로 밀접하게 엮여있기 때문에 혹여나 팀장이 한마디하면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본인이 한 프로젝트에 대한 거센 비난을 할 수도 있고, 관리자이기에 서로 웃을 상황보다 서로 얼굴 붉힐 확률이 사실상 훨씬 높기 때문에 거리를 두는 것이다. 관리자 본인은 편하게 해 줄 수 있다한들, 그냥 존재 자체가 불편한 것이다. 당연히 본인을 제외한 팀원들의 단톡방도 따로 있을 것이고, 그 관리자는 밤마다 귀가 간지러울 것이다. 관리자 본인 입장에서도 일을 시켜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사적인 자리에서 마냥 그렇게 가까이 지낼 수도 없다. 그렇게 서로 거리를 두는 것이다.

꼭 이 이유 때문이 아니더라도 사회생활은 본인의 밥줄이 걸려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구조다. 사람이 참 단순한 게, 대개 본인이 욕먹지 않기 위해서 본인의 행동을 개선하거나 바꾸려 하지 않고 남을 억지로 까내리며 본인을 정당화한다.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여서 사회가 팍팍하게 변하고 있다. 내 가까이 있는 소중한 누군가라도 꼭 지키고 싶다면, 비즈니스적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엮이지 않는 것이 좋다. 그게 자영업이 됐든 회사가 됐든, 상급자와 하급자가 됐든 뭐든.


다음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본인이 친절과 호의를 베푼다 해서 상대방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것. 그걸 애초에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본인이 올바른 교육을 받았고, 좋은 학벌에 똑똑하고, 곧은 인성과 성품을 가지고 있다한들 타인은 친절과 호의를 오로지 100%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아주 높은 확률로 대부분이 '호구'로 여기거나, 이를 철저히 악용하려고 한다.본인이 권한이 있으면 늘 권한을 동등한 사람 혹은 하급자에게 잘 이용해야 하며, 권한을 이용하지 않고 선을 넘은 과한 호의나 친절은 약점으로 비쳐 타인에게 되려 무시당하기 일쑤다.


일천한 경험에 지식까지 전무한 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안 좋게 평가하고 욕해도, 정작 그 사람은 본인을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다. 특히 요즘 20대들 중에는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자의식과잉 속 그 작은 잣대와 세상 안에서 그들만의 얼토당토 한 논리를 펼쳐대는 이들이 자주 보이는데 결국 당하는 건 그 친절과 호의를 베푼 당사자다. '좋은 사람'으로 비쳐봤자, 그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는 사람은 극소수 아니, 극단적으로는 본인밖에 없을 수도 있다. 우린 지금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우습게 보이지 않는 것', '필요한 말만 하는 것'이 현시대에서 호구를 면할 수 있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 친절과 호의는 결국 필요 없다는 것. 왜냐? 말을 안 하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절대 무시 못한다.

진짜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라는 대사는 현존하는 모든 영화 중 시대를 가장 잘 관통하는 명대사라 자부한다.


자, 왜 사람들이 끼리끼리 논다고 하나. 왜 20대는 20대끼리 놀아야 맞고, 30대는 30대끼리 놀아야 맞고, 부자들은 부자끼리 놀아야 맞고, 거지들은 거지들끼리노는 게 맞냐. 왜 이 세상 모든 영포티들이 욕을 먹고 있나. 계급, 재산, 성별, 나이, 직업 모든 기준에 우열을매겨 우리는 수준이 비슷하고 어울리는 조직을 만들어편을 나눈다. 이 조직을 만드는 원초적인 이유는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라는 당연한 논리를 넘어 해석해 보겠다. 결국 수준이 맞는 모임에 들어가야만이 '본인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내가 부자라면 거지들밖에 없는 곳에서 인간관계나, 개인의 인간성 정상의 기준을 찾으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면 부자들에겐 그 모임은 다 비정상이거든. 결국 그래서 다들 각자의 수준을 높이려고 더 높은 곳을 보고, 더돈 많이 벌려고, 더 좋은 직업 가지려고 공부하면서 발버둥 치는 것이다. 그래서 '산이 높아야 골이 깊다'라는말처럼, 목표를 크게 가지라고 어릴 적부터 우리가 배우는 것이다.


사이코패스에, 소시오패스에 병신밖에 없어 덜 병신을찾는 것이 너무 익숙해진 이 현대사회에서, 저 두 가지태도는 권장되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필연적인 것이다. 이제 우린 결혼을 하든 일을 하든, 자녀를 학교에보내든 어떤 조직 속에 속하든 그 안에서 괜찮은 사람이라는 정상의 기준을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덜 비정상인 사람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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