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노력은 어렵고 남은 쉽다
“엄마, 우리 집은 왜 가난해?”
“안 가난해, 남들도 다 이렇게 살아”
오늘 횡단보도를 기다리며 한 엄마와 엄마 손을 잡고 있는 아이의 대화였다. 옆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많았던지라 눈치가 보였는지 아이의 귀에 대고 조금 더 보충 설명을 하는듯했다. 곧 초록불로 바뀌면서 자세히 듣진 못했지만 내 추측에 그 귓속말은 ‘가난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그럴싸한 설명 혹은 ‘남들도 절대 부자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사실왜곡 이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해야지만 본인과 아이를 방어할 수 있는 든든한 방패막이 생기는 격이니까. 본인에겐 한없이 관대하나, 타인에겐 엄격한 한국인의 초상이다. 사실 돈 안 좋아하는 사람 어디 있으며, 내 아이 좋은 것 입히고, 좋은 환경에서 안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의무는 아니다. 그건 선택의 문제니까. 좀 부족해도 스스로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에도 행복은 물론 존재한다. 어쩌면 부자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다. 그냥 각자의 생각대로 소신껏 주어진 일을 하면서 그렇게 살면 그뿐이다.
자, 근데 문제는 뭐냐. 현대인은 남들이 노력해서 이룬 성공을 아주 쉽게 본다. 그 성공의 과정과 결과 자체를 마음대로 재단한다. 앞선 예시인 ‘남들도 절대 부자가 아니라는 것’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조금이라도 타인이 질투 나거나 부러우면 ‘쟤는 저기까지 일거야, 저 정도 일거야“ 라고 아무도 시키지 않은 주문을 외운다. 그 비교대상에 비해 본인 스스로가 초라하다고 느끼기때문. 이어서 상대가 값지게 노력해서 이룬 결과물을 매우 쉬운 것으로 단정 짓는다. 마치 본인은 그걸 도전한 경험을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지인이 9급 공무원에 붙었다고 해보자.
“야, 요즘 9급 공무원이 대수야? 돈도 안되고, 난 6개월이면 따겠던데?”
누군가가 대학로에서 연극이나 뮤지컬을 한다고 하면
“취업도 안 되고 할거 없으니까 그런 거 하는 거 아냐. 한두 달 바짝 하면 나도 하겠다”
이런 식이다. 심지어 어제 내 친구는 같이 아는 지인이 3개월 전부터 유튜브를 시작해서 구독자 천명이 넘자, “나도 한번 해볼까? 5천 명 도전”
이란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장담컨대 이런 사람들은 공무원 6개월 아니, 일 년이 지나도 못 붙고, 유튜브는 시작도 안 하고, 연극은 애초에 관심도 없다. 어떤 상황이 닥치든 정당화로 본인을 편안하게 한 뒤, 타인의 아주 작은 빈틈이라도 보이면 그저 물고 뜯어버리는 정글 같다. 이 작은 소국에서 누군가를 제쳐야만, 꼴찌를 피해야만 삶을 잘 살고 있다는 위험한 착각이다. 남들이 노력해서 이룬 건 쉽게 보고, 정작 본인은 1도 제대로 못하면서 인터넷의 익명을 악용해 댓글 싸지르는 사람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냥 평균적으로 간단히 주변 열명이 있으면 최소 5명 이상이 이렇다고 보면 된다. 보통 매일 열개정도의 댓글을 본다 치면 다섯 개 정도가이런 글이니.
정신과가 왜 정신건강의학과로 명칭이 바뀌었을까.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 일상적인 병이 돼 그들에게 큰 병이 아니라는 자기 위안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한국인이 사고하는 현실을 보면.
진짜 사실을 말해줄까? 팩트를 때려 박아주자면 앞선 횡단보도에서의 어머니는 그냥 어떤 이유로 실제 가난하고 아이의 비교대상은 부자일 확률이 매우 높다.
가난의 증거는 아이는 작은 빌라에 사는데 친구는 넓은 아파트에 산다거나. 아이가 갖고 싶은 장난감을 아이만 못 가지고 있다거나. 어떤 명백한 이유가 있으니 아이가 저런 말을 하는 거겠지.
또 유튜브 하는 사람들 돈도 안되는데 허세 부린다고? 회사 나가서 유튜브 하면 인생 망한다고? 안정적인 소득이 없어 잠깐 반짝하다 빌빌 댈 거라고? 이는 모두 상대의 노력을 평가절하하고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인 본인의 삶을 치켜세우려는 몹쓸 수작일 뿐이다. 유튜브 하면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출근도 안 해도 되고, 몇십 만 유튜버들은 유명세는 덤이며 심지어 직장인 일 년 연봉을 한 달에 번다. 그냥 방구석에서 방송만 켜도 조회수로만 돈 들어오는 사람 널리고 널렸다. 그저 어떻게든 본인 잘난 쪽으로만 뇌를 굴려대니까 본인과 똑같은 아이가 태어나서 왜 가난하냐는 저런 질문을 받는 것이다.
부자들은 본인 얘기 절대 안 한다. 왜? 돈 많다고 티 내면 똥파리들만 꼬이거든. 주변엔 늘 교양 있고 더 성장하려는 사람들뿐이다. 꼭 타인의 노력은 쉽게 보면서 말만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더 가난에 허덕인다. 온갖 가난에 허덕이면서 거짓된 삶을 남에게 보여주며 착각하며 산다. 인스타그램 같은 SNS는 진짜 부자가 아니라, ‘서민’의 앱일 뿐이다. 진짜 부자들은 그런데다올리지도 않는다. 왜냐면 그게 본인 일상이라 특별하지 않은 걸 굳이 올릴 이유가 없어서다. 인스타그램은 서민이 90%가 넘으니까 대박이 난 거다. 포르쉐가 올해 한국시장에서 차가 제일 많이 팔렸단다. 이 작은 소국에 이런 지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그 거짓된 삶을 포장하기 위해서는 있어 보이는 목표와 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게으르다. 아무리 단단한 돌이라도 센 물결이 오랫동안 치면 돌도 깎인다. 몇백 년이 지난 나무도 온갖 악천후에 시달리고 세월이 흐르면 언젠가 뿌리가 뽑힌다. 부지런하면 언젠가 뭐라도 되는데, 이 게으름은 평생 고쳐지지 않기에 본인이 말한 꿈을 이룰 수 있을지는 평생 미지수다. 남는 건 그냥 말뿐이다.
자본주의에서 돈에 대한 말이 참 많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번다더라, 누군 이렇게 재테크해서 대박 났다더라, 뭘 배웠다더라 하루에도 이런 소문은 심상치 않게 들리는데 믿든 안 믿든 그런 사람이 있으니 소문이 나는 것이다. 그중 성공을 이룬 이들은 온갖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누군가에겐 질투와 시기의 표적이 된다. 이건 전 세계 사람이 둘 이상인 그 어느 조직에 가도 공통이다. 바뀌지 않는 진리는 딱 하나뿐이다.
“아니꼬우면 너도 해”
본인도 하면 된다. 그게 아니꼽다면 본인도 그렇게 해서 벌면 된다. 당당하게. 그걸 못하고 안 하니까 남는 시간에 뇌에 필터를 안 거치고 남들 험담이나 하는 것이다. 현대사회 인간관계에서 가장 비겁하고 치졸한 행동이다.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남자부류가 뭐가 있을까? 내가 여자로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고민 없이 말할 수 있다. 외모, 자산, 직업, 몸매, 집안, 옷차림, 유머감각? 이건 부족해도 된다. ‘자격지심과 열등감이 동시에 있는 남자’가 제일 매력 없고 형편없다. 이건 그 파급력이 너무 커서 다른 게 우수해도 쉽사리 채워지지 않는다. 본인이 세상에서 가장 작고 형편없고 남들 질투나 하면서 본인 케어하나 못하는데 여자친구 지킬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과거도 아닌 현재도 아닌 미래를 봐야 한다. 답은 하나뿐이다. 왜 미래를 봐야 하냐고? 현재보다 나아질 수 있는 게 ‘미래’라서 그렇다. 남의 노력을 본인이 평가할 시간에, 그 값진 성과를 탐낼 시간에 내 미래에 집중해라. 그게 행동으로 비칠 때에만 진짜들이 내 주변에 몰린다. 이때까지 남을 까내리며 생각하고 행동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다면 삶에 인공호흡을 해서 다시 살아남을 수 있는 법은 결국 ‘자기 객관화’ 하나뿐이다. 대개 불특정다수의 3인칭들이 본인을 보는 시각이 맞다. ‘나는 다르고 특별하다. 그들보다 더 잘났다는마인드는 오만한 착각일 뿐’. 늦지 않게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