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에서 헤쳐 나오는 법
20대엔 문득 이런 생각에 자주 사로잡혔다.
지금은 이렇게 인간관계가 힘들어도, 취업준비가 힘들어도, 경제적으로 돈이 없어도, 좌절된 꿈에도, 연애가 힘들어도, 불안정한 이 모든 삶이 죽을 만큼 열받고 짜증 나도 저 멀리 보이는 빛 하나만 보고 그저 견디면 다해결될 거라고. 그리고 난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걸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기만 하면 이 모든 걱정과 근심이 동시에 해결될 찬란한 30대가 너무 기대됐거든.
소름 돋게도 내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30대가 들어서자 이 모든 게 한 번에 해결됐다. 내겐 더 좋은 사람들이 와 날 좋아해 줬고, 원했던 만큼 돈도 벌어보고,사랑하는 여자도 만나 안정적인 삶을 조금씩 하나둘 만들었다.
20대 때 기대했던 바람들 중 단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룬 나 자신이 한편으로는 대견했고, 자기 객관화가 결여되어 한때는 자아도취에 빠져 살기도 했다. 사실 자아도취도 아니다. 실제로 스스로 행복했거든.
근데 이 행복은 가면에 불과했다. 그 껍데기가 벗겨지고 진짜 본질을 파악하는 데에는 굳이 긴 시간이 필요 없었다. ‘재테크’로 예를 들어보자. 과거의 내가 더 많은 돈을 벌길 원했다면 그럼 미래에 더 많아지겠지 당연히. 왜? 내가 노력하고 그걸 목표로 삼았으니까.
이 세상엔 안 되는 건 없다. 20대 때 내가 원했던 것처럼, 목표를 실천에 옮긴다면 당연히 더 많아지겠지. 이직을 할 수도 있고 사업을 할 수도 있고. 근데 그다음은뭐? 목적어가 빠진 거다 목적어가. 미래에 당연히 돈은더 많아질 텐데 행복한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비단 회사 안에서의 직급이나 승진, 자영업에서의 매출향상, 사회적 명성 이런 게 아니라 그 돈으로 결국 뭘 해야 행복한데?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말문이 막혔다.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이런 거울 속 내 모습을 나는 사실 꽤 오랫동안 혐오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내게 더 좋은 사람들이 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매일 약속에 나가 술 마시고,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으며 의리를 다져나간다는 건 찰나의 즐거움뿐이다. 집 돌아가는 길 그 공허는 겪어본 사람만 안다. 아니, 내가 그토록 원했던 인간관계였는데 이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왜 안 행복하지? 이렇게 그냥 계속서로 늙는 거다. 큰 기대 없이.
매사가 그랬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새로 겪어보는 것들이 하나둘씩 줄어들고 신체 그리고 감정선이 조금씩 무뎌진다. 이제 더 많은 돈이나 더 좋은 관계가 곁에있어도 20대처럼 설렘이 그렇게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20대의 풋풋했던 사랑은 30대의 소개팅에서는 온데간데없고 정신 차려보면 어느덧 서로의 조건만 재고 있다.
기대는 그 기대에 상응하는 결과를 가져다주기보다 그반대, 실망만 안겨줬다. 큰 기대가 큰 보상으로 똑같이 돌아오는 경우는 훨씬 더 희박했다.
지인 중 소개팅에 매일 실패하는 여성분이 있다. 이 여성분은 실제 모습과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의 괴리감이심한데, 상대편에서 사진만 보고 갔다 실제로 만나 실망하고 잘 이어지지 못한다. 거의 그게 주된 이유다.
몇십 번째. 근데 안타깝게도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본인만 모르고 있다. 이참에 이 글을 읽는 미혼인 여자구독자분이 있다면 꼭 참고하길 바란다. 사실 99% 남자들은 인위적으로 티 나게 얼굴을 깎거나, 부자연스러운 보정사진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극도로 혐오한다. 나는 그녀가 안타까워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그 여자가 보정사진을 카카오톡 프로필사진으로 한 그 행동 자체는 남자에게큰 기대를 심어주기에 다분하다. 만약 사진을 보지 않고 갔더라면 소개팅에 성공했을지 모를 일이다.
이처럼 현대인은 기대에 매몰돼 있다. 30대엔 더 많은 돈을 만질 수 있겠지, 더 이쁘고 잘생긴 상대를 만날 수있겠지, 더 인생을 재밌게 살 수 있겠지라는 기대. 이런맹목적인 기대보다 더 나은 상황이 왔을 때 어떻게 그 결괏값을 활용해서 의미를 찾느냐. 목표했던 그 돈이 진짜 생겼을 때 할 수 있는 나만의 일과 가치관을 찾는 것. 내게 있을 공허를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본질을 찾는것에서부터 진짜 행복을 느끼는 길임을 깨닫게 된다. 과연 무엇을 하면서 내 공허를 제거할 수 있냐. 그걸 생각한다면 앞서 말한 애초에 기대도 사라지고, 인간관계, 돈, 건강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부터 집착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그 공허를 채울 수 있는 것이 세 개가 있다. 이건 아주 쉬운 대신 전제조건이 하나 있는데, 무조건 꾸준해야만 한다. 꼭 매일 하라는 게 결코 아니다.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바로,
읽고, 쓰고, 운동하는 것.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부터 싫증을 느끼고, 공허를 느끼는 순간이 올 때 이 세 개만 꾸준히 반복해도 쉽게 부정적인 감정은 제거된다고 믿는다. 너무 쉬운 거 아니냐고? 꾸준히 하는 건 꽤나힘들다. 중간에 다 떨어져나간다. 이 세 가지가 가장 리스크 적게,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인생에 우상향을 그릴 수 있는 길이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는 무조건 기회비용이 수반된다. 하나를 쟁취하면 또 다른 하나는 잃을 가능성이 있다. 혹은 포기하거나. 주식도 그렇다. 손실을 미리 고려하고 그 리스크를 안고 투자하지 않나. 근데 이건 리스크도 없다. 그냥 틈내서 계속하면 그만이다. 나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거나, 자기 전 일기를 쓰거나, 새벽에 일어나 혹은 퇴근 후 운동을 생활화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가끔 경이롭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도 글을 쓸 수 있다. 책을 읽을 수 있다. 대통령도 글을 쓸 수 있다. 사고현장에서 불을 끄는 소방관도,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그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글은 쉽게 어디서든 쓸 수 있다. 꼭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어야만,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소설가'라는 명함과 근사한 본인이쓴 저서 몇 권과 서재가 있는 사람들만 작가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그냥 쓰면 된다. 그럼 어느샌가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본인을 작가라고 불러준다.
20대 때 '아, 돈을 더 많이 벌면 행복하겠지', '사회적으로 성공을 하면 행복하겠지'라고 생각했던 일차원적인추측들은 늘 어떤 일정치 이상의 기대를 동반해 왔다. 근데 읽고, 쓰고, 운동하는 건 대단한 걸 이룬다는 기대로 시작한 것이 아닌데도 돌아보면 더 큰 무언가가 일구어져 있다. 더 건강해지고, 사고의 폭이 확장되고, 인생에 있어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이 왔을 때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정한 근사한 목적자체가 없다. 책을 출간하고자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다독왕이 되고자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헬스 트레이너를 하고자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돌아보면 많은 게 이미 이뤄져 있다. 앞서가고 있다. 결국은 이 세 개다.
30대에 이 세 가지를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삶을 대하는 시야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큰 리스크 하나를 헷지 할 수 있다. 바로 호기심을 잃지않는 것. 나이가 들면 들수록 새로운 것에 흥미가 없다 보니 익숙한 것만 찾게 된다. 여행도 체력이 없어 점점 더 미루게 된다.
조금 더 피부로 와닿게 설명해 보겠다. 부모님과 대화가 안 통한다고 투정 부리는 철없는 이들이 많다. 근데 부모님은 왜 그러시는 걸까. 사실은 진짜 슬픈 얘기다. 그동안 우리를 키우려고 온갖 노력과 체력을 소비했기때문에 새롭게 다른 걸 배우고, 적응해 가는 시간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본인만의 기존의 경험과 지식이 만든 세계로만 점점 더 굳어가는 것이다. 사실 진짜 슬프고 무서운 거다. 그래서 우리가 이젠 알려줘야 한다. 부모뿐만 아니라 나이가 드는 아저씨, 아줌마,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가 다 새로운 것에 무뎌지고 호기심을 잃어간다.
근데 뭐라고? 쓰고, 읽고, 운동하면 우리는 나이를 먹어도 호기심을 잃지 않는다. 이 지구라는 거대한 자연 속 하찮은 인간 한 명이 평생 생애동안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무조건 한정돼 있다. 넓게 보면 그냥 먼지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그 한 명의 인간은 결국 그 세계밖에 보지 못하고 죽는다. 얼마나 억울한가.
근데 호기심이 생기면 내게 원래 익숙했던 것에서 벗어나 계속 새로운 걸 할 수 있는 동기가 생기고, 그 행동을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삶에 유희가 따라온다. 이런 사람은 30대가 돼도, 40대가 돼도 남들과 달리 모든 게 무뎌지고, 허무하고, 재미없는 인생이 아니라 더 특별해진다.
자, 순간이 특별해진다는 건 무슨 뜻일까. 사소한 것도 소중해진다는 것이고, 행복이라는 감정자체를 더 자주느낄 수 있다는 뜻이고, 다시 말해 행복의 역치가 낮아진다는 말이다. 내가 시궁창 안에 있더라도 만약 행복을 자주 느낀다면? 결국 내가 위너다. 억만장자 부럽지않다. 돈? 돈 많아서 뭐 할 거고 어쩔 건데. 그 사람은 그 돈으로 행복을 못 느끼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걸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다시 말해 세 가지. 읽고, 쓰고, 운동하면 된다. 난 이걸 늦게 알아 한탄스럽다기보다 오히려 지금이라도 안 것에 위안이 된다.
읽고, 쓰고, 운동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