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단어들
12월은 평소에 가지지 않았던 출발과 시작 같은 희망찬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본래 헬스장이 사람들로 붐비고, 편의점의 담배 소비량이 급감하는 것처럼 이런 진부적인 계획은 주로 1월에 세우는 것이 정상적이나, 내겐 12월이 유독 더 그렇다. 안 하던 짓을 하게 한다.
한해를 되돌아보는 이 회상이 자연스레 새시작으로 연결고리를 만들기에 더 그렇다. 올해의 흘러가는 시간을 30일이라도 더 움켜쥘 수 있는 틈이 있다는 건 덤이다. 한해의 나는 후회로 가득할지언정, 남은 이 한 달 속 색다른 시야와 생각들은 마치 내 일년의 부족함을 상쇄시켜 주는 것만 같다.
비단, 12월, 1월만 이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유독 한 해가 간다는 반복적이고 상투적인 세월의 흐름에 늘 거창한 의미부여를 한다. 어쩌면 인생은 늘 새로운 걸 하도록 강요받고, 그 사이에서 좀 더 나은 선택들을 하며 스스로를 적응해 가야 하는 게 숙명일지 모른다. 돌아보면 늘 그랬고, 현재도 그렇게 하고 있으며, 단 한순간의 의심도 없이 미래도 그렇게 그려질 것이다.
당장 오늘 아침 샌드위치를 먹을까, 그냥 커피만 마실까 했던 그런 고민, 직장에서 오전 업무를 끝내고 국밥을 먹을까, 쌀국수를 먹을까 동료들과 이야기 나누는 일상의 작은 선택뿐만 아니라 현재 내 모습을 만든 이 모든 건 돌아보니 인생의 결정들이 모여 이뤄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반대로, 당시는 작아 보였던 아무렇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그 후폭풍이 꽤나 거세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적도 있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나날들에 황홀하고 감격스럽다가도 한편으로는 세상이 나를 억까(억지로 까내린다)한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이렇게 회상하면서 한 줌의 좁쌀만큼이라도 더 나아지고자 하는 나만의 원론적이고 형식적인 의식을 12월 첫날 한번 가져본다.
대학 원서 마감기한을 착각했다. 2시간이 지나 전화로 무릎을 꿇다시피 사정해 간신히 학교에서 받아줘 재수를 면하고 집 앞 대학교에 갔다. 그 덕에 혼자였던 엄마곁을 더 보듬어줄 수 있었고, 배우고 싶었던 걸 마음껏 배웠다.
군대에서는 선임한테 맞아 입술이 터져 다음날 아침식사를 못한 적이 있다. 얼굴이 만신창이가 된 나를 보고 중대장은 일을 크게 벌이는 것이 두려워 나를 대대장이 못 보도록 숨기곤 했다. 그 와중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스무 살이 겪기엔 너무나 벅찬 아픔이 한순간에 닥쳤다. 내가 자살이라도 할까 봐 화장실을 가는 데에도 늘 누군가와 동행해야 했고, 내가 유일하게 혼자 할 수 있었던 건 생각과 책 읽기뿐이었다. 그때 참많은 생각을 했다. 불침번을 서도 야밤에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건 책과 생각들이었고, 그게 지금 나의 단단한 신념을 만들어준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
전역 후 책에 빠져있던 시절, 우연히 친구한테 빌린 스페인 여행책 한 권으로 스페인어에 미친다. 닥치는 대로 써봤던 교환학생에 덜컥 붙어 멕시코에서 한참 지냈고, 그 기회를 발판 삼아 미국에서 일도 했다. 3년이 넘는 이 대학시절의 해외생활은 가치관이 어느 정도 잡힌 상태에서 내게 더 큰 시야와 꿈을 안겨다 줬다. 덕분에 운이 좋게도 여행도 많이 다녔다.
이 일련의 작은 우연적 선택들은 30대가 되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지게 한다. 그 덕에 일자리에서 만난 와이프와 결혼도 하고 어쩌면 당시 아주 작은 선택들이 기적처럼 쇠사슬처럼 엮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결국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원했던 일을 하면서 행복해할 수 있는 건 애초에 내가 군대에서 뼈아픈 시련이 없었다면까지 거슬러 올라가 기적 같은 나날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너는 어느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만약 돌아간다고 해도 전제조건이 하나 붙는다. 지금의 사람, 지금의 내가 가진 모든 것과 함께 갈 수 있다면 간다. 하지만 리셋이라면 절대 가지 않는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못 만났을 것이고,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지금 같은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지 미지수니까. 나중에 자녀를 낳거나, 내가 평생토록 아끼는 것들이 더 많으면 많아질수록 이 생각은 더 강하게 굳혀질 것이다.
그래서 결국 지금 행복하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 아니냐고? 괴롭고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순간도 이런 순간과 정비례할 만큼 많았다. 갑작스러운 부친의 죽음, 해외에서 원치 않았던 사고, 경제적 어려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갑작스러운 인사발령 등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삶이 흘러간 적도 있었다. 반대로 내가 가진 걸 다 포기하고 용기 내어 새로운 영역에 뛰어든 적도 있다. 그러다 또 망하고. 내가 원인을 자초했거나 혹은 외부의 압력이 있었든 간에 이런 좋지 않았던 순간들에도 인생의 끈을 늘 곧게 가져갈 수 있는 건 딱 한 가지 생각이었다.
바로 '돌아가도 그게 최선이었다는 것'. 다시 돌아가도 불의의 사고를 예측할 순 없겠지만 내게 선택지가 있었다한들 난 그 순간의 최선 택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 한편이 편해진다. 실제로 그렇다. 그때의 내겐 그게 가장 현명한 해결책이었으며 최선이었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어떻게 부처도 아니고 이런 생각을 계속 가질 수 있냐고 누군가 묻는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긍정적으로 그렇게 살아간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거든. 이 말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나만의 생각 하나가 있는데 뭐 특별할 것도 없다.
그냥 하늘의 뜻이겠거니 한다. 어디론가 더 나은 길을 열어줄 하늘의 뜻이겠거니.
선택이라는 건 누구나 두렵다. 기회비용과 후회라는 불안이 늘 자리하기 때문이다. 잘 되면 좋지만 한번 저지르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도 많아 그래서 선택에 대한 의견은 늘 분분하다. 근데 아무래도 이런 건 인생의 경험이 풍부하고 혜안을 가진 사람의 말에 힘이 더 실린다. 또 사회적 성공과 부를 가진 사람이 말하는 게 더 신뢰가 가는 법이다.
이들은 대체로 이렇게 말한다. 더 불편한 선택을 하라고. 그 선택을 함으로써 본인의 환경이 아예 바뀌어버린다. 근데 더 험난하고 모험적인 선택들이 지나고 나서 보니 본인에게 더 큰 보상을 안겨줬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크게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의 변수는 끝없이 늘어나고, 모험적인 정도는 사람마다 상대적이며때로는 안정이 도전보다 더 나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걸 직접 보고 겪었기 때문이다. 매 순간 인생의 선택에 정답이란 건 없다.
미래는 결과론적 관점에서나 쓰이는 말이다. 결국 성공해서 뒤를 돌아보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실패한 사람이 더 불편한 선택을 해서 실패해서 거지꼴을 하고 있으면 그런 격언을 누가 들어나줄까?
답도 없고 예측도 안 된다. 그 순간 사리분별하는 능력과 내 감정 그리고 잠깐 뇌리를 스치는 내 판단에 맡길 뿐이다. 단, 그것이 기회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은 꼭 필요하다. 이 분별력이 없다면 하늘이 주신 기회조차 못 알아보고 버릴 확률이 높으니까. 그건 진짜 아까운 것이다.
대개 삶은 세 가지로 결정된다고 믿는다. 하늘의 뜻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인지, 그리고 타이밍. 이 셋 중 하나라도 결핍이 있다면, 본인이 원하는 미래는 오지 못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내가 잘하고, 타이밍도 좋은데 하늘이 내게 운을 안 주면 끝이다. 운도 주고 타이밍도 기가 막혔는데 내가 능력이 없으면 그럼 또 끝이다. 운도 좋았고, 잘하는데 타이밍이 안 맞아서 자리가 없어. 사랑하는 사람이 못 기다리겠대. 떠나. 그럼 또 끝.
유일하게 이 셋 중에서 본인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은 뭘까. 당연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인지를 보는 것이다. 더 노력하면 그 범위는 넓어질 것이고, 불확실성을 가진 부분들을 조금씩 줄여나갈 수 있다.
누구나 미래는 두렵다. 아직 오지 않아 정답도 없고, 늘불확실성만 상존하기 때문이다. 2024년이 한 달 남은 지금, 그리고 새로운 해를 맞이할 준비는 이런 게 아닐까. 그동안 망설이거나, 해볼까 말까 했던 고민했던 영역들을 익숙하게 만드는 일. 안 잘해도 된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으니까. 글 하나 쓸 거 두 개 써보고, 취미 넓혀가고, 새로운 거 배워보고, 꾸준히 하고. 안되면또 하면 된다. 올해 안 된 건 결국 하늘의 뜻이다. 얼마나 마음 편해. 하늘이 안 맞다고 하지 말라는데. 나는 그 와중에 내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새로운 걸 계속해보면 된다. 그럼 운과 타이밍은 언젠가 또 오는 법이다. 그게 우리 모두에게 내년 2025년이길 바란다.
이런 대담한 일상 속 도전의 조각들이 결국 험난한 대한민국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덕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