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그리고 발 빠른 변화의 소고
초등학생 때 맨날 달리기를 꼴등을 했다. 그래서 체육대회나, 교과목 중 체육시간이 가장 두려웠다. 어떻게든 달리기는 시킬 것이고, 나는 늘 꼴등을 할 것이기에.이를 극복하고자 축구교실도 다니고, 쉬는 시간마다 어떻게든 나가봤지만 애초에 달리기가 느려 늘 주전에서 밀리기 십상이었다. 당연히 인정을 못 받으면 재미를 잃게 된다. 모두가 하교를 한 텅 빈 운동장. 어떻게든 이 악물고 몇 바퀴씩을 달려보기도 했고, 목에 피맛이 나도록 내 한계를 시험해보기도 했다. 노력하면 안 되는 건 없다고 했던가. 물론 그전보다는 지구력이 훨씬 좋아졌다. 근데 개뿔. 늘 우리 반 달리기 1등은 반이 바뀌어도, 다른 학교에 가도 늘 1등을 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친구는 웃으며 즐기면서, 그렇게 나를 앞서갔다. '달리기'라는 행위자체가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아주 미세한 부분이고 육상선수가 꿈이 아니고서야 자본주의에서는 큰 영향력도 없는 건데 왜 이게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한 걸까. 충격이긴 충격이었나 보다. 그때부터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고 느낀 것이.
이후에도 나는 달리기의 악몽이 되살아날 만한 일들을숱하게 겪었다. 중학생 때는 어땠나. 글쓰기 교실에서 도저히 읽어도 하나의 완성된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주제를 만났을 때. 소질이 있는 친구는 그 나이에 걸맞지 않은 수려한 문장들로 우리 모두를 매료시켰다. 그는 내가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신문 사설을 읽는다. 심심하면 시를 쓴다. 그렇다고 이 친구가 주말에 책만 읽는 책벌레도 아니다. 책도 읽지 않고, 그냥 친구들이랑 잘 놀러 다닌다. 참 궁금했다. 나는 매일 책 읽고, 일기 쓰고 아직도 맞춤법 검사받고 이러고 있는데 왜 나는 쟤처럼 될 수 없는 걸까.
고3으로 넘어간다. 언어와 외국어만큼은 자신 있었다.그 당시는 외국에 나가보지도 못했으니 해외파처럼 원어민에 가까운 실력을 가지진 못했지만, 성실히 학교에서 단어외우고, 없는 돈 끌어모아 부모님이 학원을 보내준 덕에 교육과정에 충실했던 나는 자신이 있었던거다. 수능점수가 어떻든, 원하는 점수가 나왔든 안 나왔든, 나와의 싸움에서 이겼다 졌다를 떠나 평생 머릿속을 떠나가지 않는 한 가지 장면이 있다. 현재 경찰간부를 하고 있는 당시 내 짝꿍이다.
그는 하루에 거의 20시간을 잤다. 성실하지도 않았으며, 학원도 다니지 않았다. 근데 언어영역 시험을 칠 때펜을 잡지 않는다. 그리고 그냥 눈으로 읽고 답안만 펜을 들어 체크를 한다. 그리고는 넘긴다. 읽으면서 줄도 안친다. 눈으로만 읽고 문제를 푼다.
영어도 똑같다. 오로지 손을 움직이는 순간은 페이지를 넘길 때, 그리고 펜으로 답안을 체크할 때뿐이다. 그리고 그 두 영역에서 그는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늘 받는다.
멕시코에서 스페인어, 미국에서 영어에 미쳐있을 때도늘 죽어라 하나만 파는 나보다 더 비상한 이들이 곁에 있었다. 그 어떤 창의적인 방식으로 노력해도 결과는 늘 같아 상념에 잠기곤 했다. 최고가 되고 싶어 했던 꿈을 허망하게 만드는 존재들. 아니, 내겐 그냥 동경의 대상이었다.
재능의 영역에 말해보려 한다. 이 세상 모든 분야, 사실안 이런 게 뭐가 있겠나. 지금 쓰는 이 글이라는 것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작가처럼, 그 외 무수한 유명작가처럼 타고난 사람이 있다. 모두는 각자의 재능을 타고난다. 재능이 아닐지라도, 우리 각자는 평균에 비해 미세하게나마 우월한 부분이 있다. 그걸 결국 못 찾고 죽는 확률이 높을 뿐이지, 굳이 성공하려 하지 않아도 그 분야만 찾았다는 확신이 든다면 사실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손흥민에게 신체능력에 있어기본적으로 재능이 없었다면 그는 노력만으로 지금 자리에 갈 수 없었을지 모르듯, 재능이 결국 행복과, 자본주의에서 자산의 증식을 돕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 오늘 주식 좀 올랐다고 나는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됐다고 할 수 있을까. 어제보다 멋있는 옷을 입고, 다이어트를 해 지난달 대비 5kg를 뺐다고, 성형수술을했다고 나는 지금 그때의 본인보다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아니다. 주식은 언젠가 내리기 마련이고, 살은 다시 찌기 마련이고, 멋있다 생각한 옷은 유행이 지나기 마련. 결국 변하지 않는 것은 내가 가진 재능이다. 이 재능은 단순히 이 삶을 더 잘 살 수 있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이제 '생존'의 키워드로 변화한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이제 이 지구상에 있는 80억 모든 인구는 가짜는 걷어내고 본질로만 승부를 하며, 본질만이 세상을 움직이고 본인을 지키는 무기가 된다.
근데 이 재능이란 건 각자의 기준에 있어 늘 부족하다. 앞서 소개했던 경험처럼 늘 노력해도 부족한 것만 같다. 타인이랑 비교하면서 '나는 무능력한 사람이야' 라며 늘 자책하고, 좌절한다. 그러면 설령 재능이 있다한들 발전이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제 각자 스스로 보급형이라는 걸 받아들이며 인정해야 한다. 본인이 잘하는 영역을 찾았다 하더라도 거만 떨지 말고, 분명 본인보다 잘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기에 본인이 보급형 임을 스스로 정의해야 한다. 최고가 된다는 생각보다 늘 더 나은 보급형 즉, 대안책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다. 이제 얼마나 여태껏 본인이 잘 달려왔는지 뒤를 돌아보며 감성적 위로를 건네기보다, 본인보다 더 나은 더 대단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쫓아야 한다. 그러면 나중에 저절로 정상에 있는 본인을 보게 된다 믿는다.
예를 들어보자. 1억, 2억 있는 사람이 10억 있는 사람에게 자산 증식에 대해 설명한다면 어떻게 보일까. 중소기업 사장이 건물주, 성공한 사업가에게 사회에서 성공하는 법에 대해 알려준다 생각해 봐라. 웃음이 난다. 사회는 그런 식이다. 조용한 강자들이 재능으로 세상을 독식한다. 주위에 가변성을 띄는 모든 것에 집착을 내려놓고, 이제는 진짜 내 '재능'하나만 믿고 그렇게밀어붙여야 할 때다. 개인, 조직, 국가, 지구촌이 그렇게 변하고 있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미국대통령에 당선됐다는 기사가 연일 뉴스 1면을 채우고 있다. 화려한 컴백이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 우선주의의 가장 최전선에 있는 비범한 사람이다. 미국의 이익이 아니고서는 쳐다보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세계의 경찰이라는 가면을 쓰고 더럽혀진 국제정세를 미국 이익을 목적으로 쥐락펴락 다 바꾸겠다는 것이다.
한국은 그 어떤 반항도 없이, 오늘부터 짧지 않은 미래에 방위비를 몇 배 더 낼 것이며, 수출 품목엔 관세가 부과될 것이며, 내수경제는 더 침체될 것이며, 원화가치와 코스피는 떡락할 것이며, 국민 모두가 앓는 소리를 할 것이다. 우리보다 더 힘이 없는 국가는 더 심할 테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를 앞서 설명한 개인에 빗대볼까?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재능'을 가진 국가이기에, 그 국가의 대통령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거기서 막강한 힘이 나오는 것. 약육강식의 간극은 시간에 비례해 더 벌어져 우리를 혼돈에 빠트린다. 나는 그걸 100% 예견한다. 각자의 진짜 재능을 찾을 때다.
트럼프가 당선될 것을 예견한 사람은 많다. 근데 인간은 늘 결과가 닥치고 나서야 이를 수습하고 대응책을 고심한다. 세상만사는 마치 자연재해 같아 대비는 가능하나 발생자체를 막을 순 없다.
가장 온당한 결론은 우리가 자립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 미국에 기대는 게 아니라 외적변수가 바뀌어도,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우리가 잘 먹고 잘사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걸 개인에 비유하자면 재능을 찾는 것.
그 값진 발견은 노력을 이긴다는 원론적인 말보다 노력 자체를 할 필요없게 한다. 매일 달리기 연습을 안 해도, 영어단어를 죽어라 안 외워도, 매일밤 일기를 안 써도, 언어영역에 줄을 어떻게 쳐가며 읽는지 고민 안 해도 된다. 왜냐고? 어차피 재능아 있어 잘하니까. 절대적으로 시간을 아낀다.
내 미래의 기반, 사활을 결정하는 건 안주하지 말고 어떻게 내 재능을 더 견고하고 확장시킬 것인가. 그거뿐이다. 남이 절대 따라 하지 못하도록. 이는 변화의 속도가 빠른 현대사회에 어떻게든 능동적으로 대응가능하다.
우린 대체 어디서 각자의 재능을 낭비 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