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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출간 미팅을 했습니다

나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

by 홍그리

두 번째 출간미팅을 했다. 이번엔 전자책을 한번 도전해보려 한다. 3시간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긴 미팅을 마치고 집 가는 길에 들었던 생각은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이 정말 대단한 용기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고, 얘기하고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늘 얘기하고 다니는 것이 나의 어쩌면 타고난 MBTI일수도 있지만 실제로 대한민국 사회에선 이런 성향 자체를 용인하지 않아 온 것이 사실이다. 자라오면서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쳐 준 적이 없었기에 익숙하지가 않다.

수많은 강연을 가도, 설명회를 들어도 끝에는 Q&A시간이나 청중들과의 대화시간을 가진다. 질문이 있냐고 관계자가 물으면 한 명도 손을 안 드는 것이 대한민국 국룰이다. 누군가 한 명이 손을 들고 발표를 한다면 그 사람에게 모든 시선이 쏠린다. 대단하다 혹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눈빛을 가진 채.

미국에 있을 때는 모든 것이 달랐다. 수업 중간에 본인이 모르는 부분이 있을 때에는 수업을 도중에 자르고 질문을 한다. 본인이 이해할 때까지 남 눈치를 보지 않고 해답을 듣는다. 그런 문화 자체를 하나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교수님 또한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적극적으로 질문 그 이상의 대답을 해주신다.

멕시코에선 어땠나? 오히려 더 심하다. 수업 중 질문을 넘어 아예 일주일에 한 번은 수업한 것에 대해 내 생각을 말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만큼 내 의견이 중요하고 내가 주인공이 되어 수업이 돌아가기 위해 구성원 모두가 애쓴다. 그렇기에 단연 수업의 질이 더 높고 활기찬 분위기가 형성된다.

내가 수업료를 지불한 것을 넘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의 내 최대 자유를 누린다. 이것이 우리나라 사람들과 외국사람들과의 가장 큰 차이다. 그만큼 우리는 남의 시선을 신경 쓰고, 타인의 생각에 맞추어 나 스스로의 개성을 묵살한 채 살아가는 경향이 짙다. 이런 문화 속 어떻게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쉽겠는가?

미팅을 마치고 든 생각은 책을 낸다는 것을 넘어 진짜 내 얘기를 하면서 누군가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상처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직장인으로 살고 있기에 주변에 직장인밖에 보이지 않는다. 늘 주변 사람의 생각과 잣대, 기준에 맞추어 이 세상을 바라보고 더 넓은 시야를 가질 기회가 간접적으로(책이나 매체) 밖에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삶을 많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하지만 인간관계, 직장, 연인, 결혼, 금전적인 이유 등 수많은 외적요인으로 상처를 받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순간의 사고나 사건으로 방 안에만 틀어박힌 채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TV가 아닌 내 주변에도 있고, 대단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사람들의 질투, 시샘, 오해를 사 직장을 그만두고 재기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 등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참 많았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기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혹여나 이 아픔을 누군가 비웃지는 않을까, 위로를 건네긴커녕 가뜩이나 아픈데 비난의 시선으로 보진 않을까'를 걱정한다. 큰 위로가 되고 싶다.

두 번째, 내 하찮은 이야기도 누군가에게는 큰 공감과 위로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원래 세상살이는 볼품없고 낯 부끄러운 일들의 연속이다. 대개 TV나 매스컴을 통해 우리가 접하는 연예인 운동선수들은 성공한 사람들이지만 일상에서는 전혀 공감가지 않는다. 우리 주변만 봐도 보통사람 소시민들이 대다수이며 그 안에서 비교를 하고 우월감을 느끼고 수치심을 느끼는 의미 없는 감정의 소모를 하고 있다. 우리는 절대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삶을 비교하지 않는다. 내가 훨씬 열등한 것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거니와, 나와 아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가 32년 인생을 살면서 지금이 있기까지 힘들었고 우여곡절이 있었던 삶의 굴곡들이 누군가에게는 평범할 수 있지만 이와 같은 상황 혹은, 비슷한 어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위로와 공감을 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전달을 넘어 '공감을 사고 안 사고'여부에 모든 것이 판가름 난다고 여긴다. 이 사람이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었네, 나도 지금 너무 힘든데 어떻게 이 사람은 이를 극복했을까? 당연 다음 페이지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셋째, 나를 드러냄으로써 나도 용기를 얻는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면 내 인생을 제3의 시선에서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어떤 것이 잘못됐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가 보인다. 뿐만 아니라 십중팔구는 나를 드러냄에 대한 코멘트를 남길 것이다. 타인의 관심과 응원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운동선수들도 응원해 주는 관중이 있어야 더 힘이 나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주변사람들의 응원과 위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힘을 가진다.

'힘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양면적으로 다소 폭력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더 이상 낼 힘조차 없이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이 말을 들었을 때는 하나도 위로처럼 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힘내라는 말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한번 더 일어설 용기를 주는 원동력이 되기에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넷째, 지금의 발상이 틀에 박혀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길로 꾸준히 도전하는 것이다. 잘못된 방법으로 무언가를 도전한다면 이미 남들은 한없이 앞서가는데 시간만 날리고 남는 건 상실감과 자괴감뿐이다. 이런 상황은 나를 숨기면 해결되지 않는다. 나를 드러냄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마음을 열어감으로써 인생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 나 스스로에 갇혀있던 생각들이 타인에 의해 생각이 확장되고 보다 넓은 생각으로 현명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나를 세상에 드러낼 용기가 있다는 것은 내 이익을 넘어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첫 발걸음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는 용기내어 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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