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온 지 정확히 어느덧 5년이 넘었다. 18년도 3월에 왔으니 딱 햇수로 따지자면 6년 정도 됐겠다. 그중 누나와 같이 살던 기간을 빼면 90% 이상을 원룸에서 보냈다.
누나와 같이 살던 투룸은 부족함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 모두가 묻는다. 누나랑 살면 불편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각자 방도 있고 퇴근 후 서로의 일상을 위로해 주고, 가끔 밥도 해주는 누나와 함께 한 삶은 첫 팍팍한 서울생활을 적응하는 데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직장을 옮기고 나는 혼자 원룸살이를 하게 된다. 첫 원룸은 아주 잠깐이지만 성신여대의 원룸이었고 1000/50이었다. 지나치게 좁았지만 주변에 시장도 있고 혼자 사는 데에는 큰 불편함이 없었다. 금방 두 번째 원룸으로 옮기게 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허름한 빨간 벽돌 빌라의 5층이었다. 전세는 1억 5천에 관리비가 15만 원이었다. 이 5평 남짓되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골방이 이 정도 가격이라니. 역시 서울은 서울이다.
5층이 말이 5층이지 하루에 몇 번씩 계단을 오르락 내리면 저절로 운동이 될 만큼 힘이 든다. 한번 올라오기 전에 모든 것을 해결하고 올라와야 한다. 가령 물이 없는데 물을 사는 것을 까먹었다거나, 집에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거나 하면 다시 내려갔다 와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쿠팡이나 컬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5층원룸에 살 때는 컬리로 물을 시킬 때 아저씨가 맨날 다 들리게 욕을 하고 내려가셨다. 심지어 3만 원 이상 물건을 시키면 배송비가 공짜라 부담 없이 시킨 것이었는데,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사실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계단을 무거운 물과 함께 새벽마다 배송해 주시는 아저씨의 노고를 알만하다. 내가 일부러 들으라고 새벽 6시에 욕을 하고 가시는 아저씨를 보며 다짐했다. 아 더 이상 엘리베이터 없는 고층은 살지 말아야겠다고. 새벽 5시 50분쯤 늘 무거운 배송을 들고 5층을 향해 무거운 계단을 옮기는 아저씨를 보며 항상 잠에 깨곤 했다. 그것이 나에게 있어 알람이었다. 그 빌라는 심지어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관리비가 무려 15만 원이나 했다. 1년이나 산 나 자신이 용하다.
내려갔다오기 귀찮다는 이유로 5층 골방에 주말에 하루종일 있어보니 사람이 미칠 것만 같았다. 사람들이 왜 우울증에 걸리는지 알 것만 같다. 그때부터 나는 밖에 나가서 서성이기 시작했다. 답답하고 괴로워 늘 약속이 없는 주말에도 나는 일어나자마자 밖에 나갔다. 커피 한잔을 시키고 하루에 몇 시간 카페에 가 시간을 때우거나 공원을 산책하거나 항상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와 잠만 자곤 했다.퇴근 후에는 스터디카페에 가서 평소에 관심 있었던 자격증 공부를 하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도 문젠게 방음이 전혀 되지 않아 상대방의 전화통화 목소리며, 화장실소리며 고시원이나 다를 거 없이 너무 생생하게 들렸다. 나는 그곳에 산지 불과 3개월 만에 옆집 남자의 여자친구 이름과, 취미, 사는 곳, 직업 모든 TMI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일여 년간의 원룸 생활 끝에, 관리비 문제로 대판 싸워 다음 원룸으로 옮기게 된다.
다음 원룸은 지금 살고 있는 곳이다. 전세 1억 5천에 관리비 6만 원. 대치동 치고는 굉장히 합리적이다. 심지어 1층인 것이 너무 마음이 편하다.
우리집(하이테크 사용)
빌라 대문 관리가 잘 안 되어 잘 때 사람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거리는 것을 제외하면 썩 불편하지 않다. 다만 내가 누워있는 10m 이내 공부하는 책상과 잠을 자는 침대, 요리를 하는 부엌, 옷을 입는 옷장, 세탁을 하는 세탁기가 모두 같이 있어 정신적으로 갇혀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분리될 때 비로소 질적인 성과를 낳는다. 공부를 하는 곳이 분리되어 있어야 공부가 더 잘된다. 수험생들이 집에서 공부를 하지 않고 스터디카페나, 독서실을 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잠을 자는 곳도 침실이 있어야 수면의 질이 올라가고, 요리를 해 먹는 곳도 역시 분리되어야 식사시간이 행복하다. 내 방이 따로 있어야 그 방에서 나만의 프라이버시를 존중받고 정체성을 키워갈 수 있다.
확실히 원룸에 살면 아무리 잘 꾸며놔도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물리적으로 공간 자체가 협소하기 때문에 심적으로 갑갑하고 잠만 자는 곳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내가 최소한의 물건으로 미니멀한 삶을 실현하며 최대한 집을 넓게 활용하려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집에 돌아오면 편안하고 아늑하게 쉴 수 있어야 하는 공간이더 어지럽고 불편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는 글쓰기였다. 몸은 이곳에 갇혀있지만 어쩌면 글을 씀으로써 내 정신은 더 맑아지고 끊임없는 사유를 통해 일상의 변화가 조금씩 찾아왔다.예전에 없던 활력이 생긴 것이다.공간을 탓할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 정신마저 원룸처럼 좁아진 내 스스로를 탓해야 함을 왜 몰랐을까?원룸은 이처럼 본인만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탈출구를 찾지 못한다면 삶의 질이 현저히 감소한다.
원룸도 이런데 지하나, 반지하, 고시원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십분 이해가 된다. 현재 정부는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사람의 삶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의 주, 주거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해 달동네를 철거하고 반지하와 같은 열악한 주거공간의 전수조사를 시행 중이다. 단기간 해결될 문제가 아니거니와 무엇보다 주거안정을 위한 이 선택이 오히려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더 길거리로 내모는 탁상공론의 정책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제 나는 곧 새로운 동네의 아파트로 가게 된다. 아파트는 이보다 더 넓어 앞서 말한 내 모든 생활공간이 철저히 분리된다는 장점은 있겠다. 삶의 질이 올라갈 것이며, 더 쾌적한 환경에서 글을 쓰고, 공간을 바꾸면서 더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나올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서울에 올라온 처음부터 방 세 개의 넓은 아파트에 살았더라면, 간절함이 결여되어 글을 쓴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원룸살이는 어쩌면 내 인생을 내가 스스로 고민하고 새로운 답을 찾아가는 연습을 하게 해 주었고 이 험한 인생을 개척할 용기를 내게 주었다. 늘 내가 처한 환경에서의 최선을 생각하고, 결과나 성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원룸에서 처절히 지냈던 내 젊은 날의 이 마음은 그대로 간직한 채 또 간절하게 새로운 삶을 그려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오늘도 아침 7시 반부터 원룸 빌라의 대문은 공부하는 학생, 출근하는 직장인, 자영업자, 각자의 삶들로 분주하다.
수많은 사연 속에 각자의 인생을 담고 또 힘차게 하루를 시작한다. '당장 이 원룸촌을 벗어나야지'가 아닌,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지겠지 라는 소소한 희망을 품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