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30대에 <서른 즈음에>를 듣습니다
관계 : 누군가에게 잊혀 간다는 것
멕시코, 미국 삶을 끝내고 한국에 막상 돌아왔을 땐 참 공허하고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출국 날 공항에서 날 바래다주던 여자친구는 온 데 간데없고, 친구들은 치열하게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멀리 있다는 이유로 연락을 잘하지 못하다 보니 서로 소원해져 한국에 왔다고 인사하기도 참 머쓱했다. 이렇게 관계가 정리된 것이 오히려 고맙기도 하다.
과거에는 초등학교 때 늘 반장을 도맡아 하고, 많은 친구들에게 늘 둘러싸인 인싸의 삶을 살았는데, 막상 혼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많은 것을 잃은 느낌이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며 어느새 30대가 됐다. 주변을 돌아보면 그 사이 많은 것이 바뀌어 있음을 느낀다. 직장도 다니고, 해야 할 일을 하고 나면 정작 하루 중에 남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 때는 쉬거나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한다. 인간관계도 곧 돈과 시간을 쓰는 노력이다. 쉬어야 하는 내 시간을 써야 하는 것이다. 특히 돈도 참 많이 든다. 경조사는 또 왜 그렇게 많은가? 최소 한 달에 2번 이상이다. 오랜만에 친구한테 연락을 하려 카톡을 해도 그 대화를 자꾸 이어가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현대인은 관계에 있어 선택과 집중이 필수기에 어쩌면 나이가 들며 관계가 좁아진다는 것은 슬프지만 당연한 것이다.
음악을 참 좋아했다. 늘 MP3나 CD플레이어를 들고 다녔고, 어릴 적엔 이어폰을 늘 꽂고 있어 귀에 중이염까지 여러 번 생겼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는 2012년 유투버 장삐쭈의 <신병>과 정말 동일한 배경이었다.(아직 안 봤으면 꼭 보길 추천한다) 지금의 선진 병영은 그저 꿈같은 얘기였다. 요즘은 오히려 선임들이 후임 눈치를 본다. 그때도 내게 가장 간절했던 것은 음악을 듣는 것이었다. 훈련소에 한 달 동안 갇혀 마침내 수료식날 부모님을 볼 때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음악을 듣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음악은 내게 삶의 활력소였고, 내면의 평화를 얻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듣는다. 오래된 노래라 굳이 검색해서 듣지는 않지만 우연히 이 노래를 들으면 참 반갑다. 끝까지 귀 기울여 듣게 된다. 멜로디보다 가사가 참 좋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엔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가사 하나하나에 청춘이 점점 사라져 가는 공허한 마음을 담았다. 가장 공감하는 것은 <점점 더 잊혀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이 부분이다.
거자필반, 회자정리처럼 만남에는 늘 떠남이 있고 떠남에는 또 다른 만남이 있다. 관계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는 말처럼, 날 떠나가는 사람을 굳이 붙잡으려 애쓰지 말고 곁에 있는 사람한테나 잘해야 내 인생이 편하다는 생각을 한다.
32살이 된 지금 느끼는 인간관계는 그때랑 또 다르다. 훨씬 냉혹했다. 제일 친한 친구 사이라도 하루아침에 남이 된다. 내 지인은 가장 친한 친구에게 축의금을 50만 원이나 냈는데 하루아침에 절교를 하고 결혼식에도 불참해 그 축의금을 돌려받지도 못했다.
나도 20년 지기와 하루아침에 틀어진 경험이 있다. 돈을 빌려줬는데 약속 시간이 되었는데도 친구가 돈을 갚지 않아 크게 싸웠고, 결국 틀어졌다. 돈도, 친구도 나는 둘 다 잃은 것이다.
친척들 가운데 돈 때문에 사이가 틀어져 몇십 년째 보지 않는 친척도 있다. 핏줄이 섞인 가족 사이도 이런데 관계에 있어 예외가 있겠는가?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말 친했던 동기도 한순간에 출세를 하면 동료들은 축하해 주는 척하면서도 뒤에서 질투를 한다. 경쟁 앞에서는 모두가 웃을 수 없다. 소꿉친구와 사회에서 만난 친구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도 여기에 있다.
나는 걸어 다니는 <결혼해 듀오>로 불릴 만큼 친구들에게 많은 소개팅을 시켜주었다. 인연을 만들어 주는 것은 정말 축복과 같은 일이다. 그만큼 남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요즘은 돈을 버는 것보다 내 인연 만나기가 훨씬 더 힘들다. 매주 주말마다 소개팅을 하는 사람들, 커뮤니티에 셀프소개팅이 그렇게나 많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물론 소개를 시켜주면서 두 커플이나 결혼에 성사시키며 잘 된 케이스도 분명 있지만, 괜히 소개해줘서 내가 그 친구와 싸워 사이가 불편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소개를 시켜줄 때에는 너무 가까운 친구를 소개해주는 것은 심사숙고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1: 사촌동생들끼리는 서로 실제로 종교적 이유, 가치관, 삶의 방식 차이로 서로의 삶에 참견하고, 명절 때마다 티격태격하더니 지금은 거의 보지 않는다. 중간에서 참 난처하다.
#2: 돈자랑을 하면 파리가 꼬이고, 돈이 있어도 늘 입 밖에 내지 말고 검소하게 살아가야 한다. 로또 1등에 당첨되었다고 가정하자. 나는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오히려 관계를 잃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3: 늘 사람을 만날 때에는 내가 잘 된 것을 이야기하지 말고, 경청하는 습관을 들이자. 무거운 얘기보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힘든 점들만 이야기해서도 안된다. 상대방은 당연히 위로를 해주겠지만 속으로는 나를 얕잡아볼 수 있고 내 약점을 꼬투리 삼아 그것을 악용할 수도 있다. 늘 나 자신만 믿으며 살아가야 한다.
#4: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람들은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본인 인생을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족은 이래서 참 소중하다. 내가 어떤 것을 겪어도 언제나 내 편이기 때문이다. 누나랑 함께 살 때 누나랑 크게 싸우고 (무슨 일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을 박차고 나온 적이 있었다. 누나는 나를 따라 나오면서 했던 말이 아직도 생각난다. 남자친구였다면 그냥 가게 내버려두었을 거라며. 친동생이니까 이렇게 나와서까지 말리고,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늘 내 곁에 있는 가족, 나를 둘도 없이 응원해 주는 친구들, 결혼하게 될 여자친구 한테만 잘해도 인생은 반 이상 성공한 것이다.
#5: 작년 7월, 멕시코 출장을 갔다. 멕시코에 있을 때 동고동락을 하며 지냈던 소중한 친구들을 5년 만에 만났는데 단 하나의 어색함도 없었다. 만나자마자 서로 부둥켜안으며 너무 보고 싶었다고 우리 무리 친구들을 전부 불러 모아 재밌게 놀았다. 오랜만에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관계. 이런 관계가 진짜 건강한 관계 아닐까?
#6: 20대 때 SNS에 한창 미쳐있을 때가 있었다. 페이스북에는 친구가 900명이 넘었고, 인스타그램도 하루가 다르게 사진을 올리며 좋아요를 받기 위해 애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긴 것이 페이스북에 들어가 보면 내 친구 900명 중 이름과 얼굴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얄팍한 인간관계라는 것이다. 절대 관계에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없다. 김광석처럼 '예전에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지금 돌아보니 아니더라, 많은 것이 바뀌어 있더라, 내가 생각하는 30대가 아니더라' 까지만 해석하면 그만이다. 지금 현재를 탓할 필요도 없고 애석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좋은 점이 훨씬 더 많다.
#7 거제도를 함께 놀러 간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얼마 전 10년 동안 하던 인스타를 탈퇴했는데, 500장 넘는 사진과 1000명이 넘는 팔로워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는데도 하나도 아깝지가 않더란다. 오히려 무언가를 잃었다는 느낌보다 후련한 느낌이 더 크단다. 맨날 같이 놀러 가면 사진으로 남기고 실시간 인스타 라이브를 하던 친구였기에 더 충격이었다. 그 친구는 "지우고 나서 보니 SNS는 내 인생에서 단 1%도 차지하지 않더라"라고 했다.
20대 때 생각했던 내가 꿈꾸며 바랬던 30대의 관계는 또 다르다. 마흔이 돼서 관계는 더 좁아지고 달라져 있을 것이다. 우리의 수많은 약속들, 만남들, 다 기억이나 할까? 또 누군가에게는 잊힐 테고 새로운 것을 대하듯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김광석이 한 말처럼 관계는 늘 이별을 동반하며, 나이가 들어가면 점점 더 아집이 생겨 내가 좋아하고 잘 맞는 친구에게만 시간투자를 하게 된다. 매일 이별하며 산다는 것이 결코 슬픈 얘기만은 아니다. 그저 당연한 것이다. 느끼는 감정의 폭이 너무 넓은 것도 삶에 독이 된다. 인간관계에서만큼은 더 무뎌져야 한다.
오히려 나한테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관계는 회복성이 뛰어나 다시 돌아온다. 내가 잘 되면 사람들은 알아서 날 찾는다. 지금 선택한 길을 스스로 맞다고 확신하며 사는 것이 정답이다.
나는 무언가를 계속 쓰며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그것이 위로를 주는 글이든 영상이든 뭐든. 실패하면 어떤가. 아님 말고. 계속 무언가 쓰지 않으면 잊혀진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미래의 내게 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20대의 볼품없고 돈도 없고 시간만 가득했던 삶에서 서른이 되면 많은 게 바뀔 줄만 알았다. 내 기대와 100% 똑같은 삶을 산다고 볼 수 없지만 지금 내 모습은 충분히 괜찮다. 내 행동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고, 앞으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그려갈 수 있고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정말 대단한 것이다.
10년 전, 22살의 전역 날 행복했던 순간들이 생생히 기억나듯, 42살이 되었을 때 32살인 지금 이 순간순간이 기억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