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주전쟁> 리뷰
술에 미친 나라, 소주에 미친 나라. 성인 1명이 일 년에 80명 이상의 소주를 소비하는 나라.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만큼 소주는 한국사회에서 서민의 애환과 정서를 담아낸 생명수나 다름없다.
지인이나 친구, 가족, 연인, 어떤 약속을 잡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한국인은 늘 소주와 함께라, 소주를 만드는 회사는 절대 망하지 않을 거라는 심심한 추측과 동시에 결국은 위기를 이겨낸 성공스토리일지 않을까 하는 기대 속에 영화를 본다.
때는 1997년. 대한민국에 전례 없던 IMF라는 위기가 닥친다. 기업의 줄도산과 함께 국보그룹도 예외는 아니다. 대한민국 서민의 삶과 함께한 소주를 만드는 업체인 우리에게 익숙한 진로는 영화에서 국보그룹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다. 진로는 경영진의 방만과 욕심으로 무분별 거미줄 사업확장을 하고, 이에 골드만삭스의 먹잇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세계적인 컨설팅업체골드만삭스는 당시 내부자문을 맡는 틈을 타 국보그룹의 내부기밀을 모두 알게 된다. 그렇게 회사를 살리려 애쓰는 이사 조충률과 그 회사를 삼키려는 투자사 인범의 머리 굴리기 싸움이 시작된다.
골드만삭스는 진로의 채권을 헐값에 꾸준히 사들임으로써, 진로의 재기가 있을 때마다 채권자로서 이를 방해한다. 화의조건으로 진로가 자금을 제 기한에 갚지 못한 점, 그리고 골드만삭스의 방해 없인 재기가 가능했다는 양쪽주장이 팽팽히 갈리는 상황. 이때 다행히 맥주회사 하이트가 진로를 인수하면서 국내 최대 주류업계 하이트진로가 탄생한다. 이때 생각한다. 실제 골드만삭스에 회사 경영권이 넘어갔더라면, 지난 몇십 년간 대한민국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소주는 마시지 못하고 있을 거라고. 한국인의 정서가 전혀 묻어나지 않는 위스키, 데낄라, 일반 맥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술을 먹게 될 거라고 우린 어쩌면 다행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한평생 가족을 등지고 회사에만 목숨을 바쳤던 이사 표종록. 그의 삶에 골드만삭스 투자자 최인범은 한심하게 생각하며 일침을 날린다. 반대로 정직하게 돈을 벌지 않고 금융기술이라 포장된 배신의 배신을 거듭하며 승승장구를 하는 그에게 이사 표종록은 똑같이 말한다. 그렇게 똑똑한 머리로 그런 식으로 돈을 벌면 결국 뭐가 남냐고. 도덕적 해이로 점철되어 돈 하나만 보고 본인의 계략을 숨기며 승승장구하는 삶, 그리고 현재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들여다보지 못하고 오로지 회사에만 바보처럼 충성하다 버려지는 삶. 무엇이 결국 정답일까. 이 영화 끝엔 결국 두 주인공 다 비극적인 삶을 맞이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조우해 새로운 시작으로 희망찬 미래를 그리며 스크린은 막을내린다.
우리가 매일 다니는 회사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매년 영업이익을 올려야만 이 정글 같은 구조에서 살아남는구조다. 매년 신년사에 사장은 회사의 존폐위기, 그리고 위기경영이라는 말과 동시에 임직원들의 경각심을 일깨워 진정 어린 노동을 바라고, 특정 복지나 연봉인상 같은 당근으로 직원들이 아무 말 없이 기뻐하며 복종하길 바란다. 그러나, 그 성과가 드러나지 않을 시 아주 과감하게 그 당근을 없애거나 구조조정 대상으로 결국 사람이 가장 먼저 나가는 조직이 회사다.
노조가 존재하는 이유 자체도, 회사라는 존재 목적상 사람을 숫자와 성과 그 이상으로 대하지 않기 때문에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걸 알아차렸을 때 투자자 인범이 이사에게 던지는 질문은 우리 삶에도 적용가능해 다시금 대중들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하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하세요? 회사가 충분히 보상해 줘요?
정답은 당연히 "아니요". 한 직장의 임원도 회사의 위기 속에 곁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그가 끝내 투신을스스럼없이 할 수 있었던 것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 가치가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리라.
근데 그는 할 말이 없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 연민의 감정과 동시에 대중은 어쩌면 이 자본주의 삶에서 계략으로 본인이 더 중요한 요직의 위치에 설 수 있는 인범이 현명한 태세를 취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심한다. 하지만 그도 결국엔 버려진다. 왜? 돈만 좇았기 때문에. 이렇게 A를 선택하나 B를 선택하나인간이 만들어낸 회사는 언제든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를 버리는 건 동일하다는 걸 대중들에게 어필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 가지 목표에만 전념하는 똑똑한 아이가 있다면, 이 아이는 커서 범죄자가 된다. 잔혹한 소시오패스가 된다. 이와 같이, 돈만이 본인의 신분과 행복을 보장해 줄 거라고 믿는 이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세상은 삭막해진다. 돈을 벌기 위해 본인의 숨이 붙어있는 한 할 수 있는 행동은 뭐든지 취할 것이기에. 영화에서 내부 기밀을 빼돌려 국보의 경영권을 가져오려 했던 인범처럼.
우리가 속한 자본주의에선 지나치게 일상적인 설정이다. 나 또한 이런 사기는 숱하게 아니, 최근에도 두어 번 겪었다. 그래서 대중은 오히려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정직하고 묵직하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인간적인 면모와 책임감으로 돈을 버는 사람과 자본주의의 민낯을일찍 깨달은 물질만능주의의 표본 최인범. 이 둘의 사이에서 영화는 대중에게 그들은 어떤 태도로 회사와 각자의 업을 대할 것인지 묻는다. 당장 내 옆에도 일어날 수 있는 모두가 겪었고, 겪을 가능성이 있는 생활밀착형 물음을 던진다. 그래서 대중들은 그 질문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거부감이 없다. 생각해 보자.
배불뚝이 아저씨가 한 기업의 부장을 하면서 신입사원의 패기는 온 데 간 데 없고 가족의 등살에 떠밀려 매일출근하고 있는 삶에 결국 남는 건 무엇일까. 본인의 커리어를 생각해 회사와 눈치를 보다 마음에 안 들면 이직하고, 또 이직하고, 몸값을 최대한 올린 곳에서 해고당해 한순간에 빈털터리 신세가 된 직원이 인생에 결국 남는 건 무엇일까. 누구나 바라는 관리자 한번 못하고 가늘게 길게 직장생활을 하다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앞에서 주눅 드는 한 가장에게 오늘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는 건 과연 무엇일까.
이 영화는 직장에서,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모두를 가질 수 없으나 절대 잃어선 안 되는 어떤 한 가지는 본인에게 무엇인지 넌지시 질문한다.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가 담긴 희망찬 엔딩 시퀀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을 꽤 웃음 짓게 만든다.
인생은 소주처럼 부드럽고 프레시하게 그렇게 살아가면 그만이야!
가슴속에 딱 하나 빼앗기기 싫은 본인의 가치만을 품고서 그렇게 늘 fresh 하게 하루를 시작하라고 2천만 직장인에게 감독은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던 건아닐까. 이에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가 결국엔 어떤 본연의 가치를 지키며 살아야 하는지 떠올리게 하는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이 뒷받침된 웰메이드영화다. 자본주의의 명과 암은 여실히 드러냈으나 기업 자체의흥망성쇠와 해외자본 유입의 개연성, 영화 내 주인공들의 각자성공의 배경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어 빠른 전개대비 속은 빈 느낌이라 그 점은 조금 아쉽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으로 회사생활을 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