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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무엇이 중요한가

영화 <F1, 더 무비> 리뷰

by 홍그리

어떤 분야든 열정 가득한 매서운 눈으로 달려드는 이들이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언더독의 반란이라 하기엔 그다지 돈을 중요시 여기는 것 같지도 않다. 지금의 삶이 매우 만족스럽지만, 전혀 돈을 못 버는 특정분야에 들어가는 이들도 있고, 오히려 연봉을 깎아서라도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본인 관심분야에 달려드는 이들이 있다. 자본주의에 찌든 대다수가 볼 땐 의아하면서도 이 소수를 바라보는 눈엔 최소한의 경외심이자리한다. 왜? 본인은 절대 그렇게 못할 거니까. 이유는 갖다 붙이면 그만이다. 가정이 있어서, 잃을 게 많아서 아니, 잃을 게 없어도 그냥 무서워서. 전통적인 클리셰대로라면 이들은 모두 성공해야만 한다. 근데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이 열정 가득한 이들은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의 주변인들은 그들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고, 축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되길 바라는마음이 내재되어 있다. 정작 그들을 응원하는 건 극소수일 뿐. 그들은 외롭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하면서 고독하게 성공할 때까지 끝나지 않을 사투를 벌인다. 돈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끝내 지키면서.

이 영화는 단순 스포츠영화가 아니라 클래식한 서사 안에서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대중을 직설적으로 상기시킨다. 무언가 새로운 시도 앞에 스스로에게 진정 어린 질문을 해보라는 거다. 나는 돈보다 어떤 것을 위해 이 고난의 선택을 하고 있나. 이 질문이 나오는 영화의 매 슬롯마다 주인공 소니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중이 영화로 하여금 각자의 인생에 이 질문을 투영시켜 최소한의 영화값에 상응하는 대답을 얻어가라는 조센 코신스키 감독의 선한 의도일지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예상했듯, 오래된 시리즈의 전통적인 클리셰에 걸맞게 소니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다. 우리가 맛있는 유명맛집의 음식이 맛있는 걸 알면서 또 가듯이 예측가능한 환희와 희열 가운데서도 늘 결론이 맛있기에 대중들에게 실패하지 않는 영화라는 인상을 준다는 점은 꽤나 고무적이다. 그 안에서 영화의 매끄러운 시퀀스와 서사는 이 <F1 더무비> 시리즈를 단 한 번도 접하지 않거나, F1에 생소한 관객들에게도 쉬운 공감을 이끈다는 점이 대중의 입소문과 흥행을 이끄는원동력이다. 폭발적인 사운드와 브레드피트라는 사기캐 베테랑 배우 및 실제 F1선수들의 카메오 출연은 또 하나의 몰입요소. 어쨌거나 우리가 주말마다 엽기떡볶이와 치킨을 시켜 먹고, 선선한 가을에 한강을 찾듯, 누군가는 식상할지 모르지만 하지 않으면 뭔가 빠트린 것 같은 허전함이 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결국 이 영화는 삶에서 식상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필연적인 유희 같은 것.


전성기 시절 이름을 알렸으나, 단 한 번도 팀 우승 트로피를 올리지 못한 소니. 그리고 팀 내 젊은 피 조슈아와의 내부 경쟁. 노익장의 지혜는 여기서 명징히 드러나는 것이, 팀의 우승을 이끌기 위해 실력파지만 시건방진 조슈아의 모난 부분을 본인이 깎아주며 그에게 기회를 준다. 마치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을 소니가 뒤에서 세공해 주듯이. 개인보다는 팀, 본인과 연관된 수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 노익장의 지혜와 젊은 조슈아의 패기가 만든 값진 빅토리. 잃을 것 하나 없는 중년 소니의 쿨한 욕망이 끝내 우승트로피로 이어지는 정석적인 서사를 가진 영화다.


줄거리 내내 지루할 틈 없는 F1레이스 중엔 수도 없이 넘어지고 실패하는 소니와 조슈아의 모습이 담긴다. 특수 제작한 레이싱카가 불에 타고, 둘은 치고받고 싸우고, 팀에게 쫓겨나는 위기까지. 하지만 소니는 끝내 다시 돌아오고, 열정과 패기는 나이와 무관하다는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서사는 한탕 날렸던 본인도 팀에 쫓겨나듯, 우리도 언제 어느 순간 잠시 미끄러지거나 넘어질 수 있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삶의 위로를 준다. F1 레이싱처럼 속도를 잃을 수 있고, 방향이 틀려 사고가 날 수도 있다. 레이싱 중에 방향을 갑자기 튼 사람도 있을 것이고, 미리 계획했던 여정을 외부적 요소로 인해 출발 전에 바꿔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 모든 여정에서 조력자는 존재하고, 실패하더라도 경기는 내일도, 다음 주도, 다음 달에도 또 있다는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이치에 대해 영화는 말하고 있다.


누구는 말한다. 그 잘난 브래드피트도 나이를 먹었네, 예전 같지 않네. 하지만 나에겐 등장인물과 배우의 교집합이 그려질정도의 노련함과 연륜이 주는 총체적 여유가 느껴져 그의 젊은 시절보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의 잘생긴 얼굴과 F1레이싱이 주는 쾌감, 자본주의의 끝판왕 돈이 몰리는 스포츠 이 삼박자는 흥미를 가지지 않을래야 가질 수밖에 없는 흥행 연결고리 다. 극 중 소니의 우승은 단순히 영웅적 묘사에 치우친 서사라기보다 그 안에서 개인의 성공이 팀의 헌신과 노고를 모두 대변한다는 스포츠정신이 담겨있기도 하다. 영화의 재미는 물론이고 현대사회에서 자리를 잃어가는 스포츠정신의 낭만에 인공호흡을 불어넣는 듯하다. 왜? 요즘 모든 스포츠산업은 케이블 방송사에서 OTT로 넘어가는 추세거든. 국가대표 축구경기를 해도다 핸드폰으로 보는 시대다. 중간광고를 넣고, 스폰서를 투자하고, 정기유입층을 안정적으로 가져오고 일단돈이 되는 시장이니, 당연히 중계권이나 이 모든 것에서부터 OTT가 눈독을 들일 수밖에. 돈에 가려져 낭만 자체가 사라지는 거다.


우리에게 놓인 모든 도전 앞에 나이는 절대 중요하지 않으며, 결국 본인에게 돈 말고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를 지속적으로 매 시퀀스마다 영화는 물어본다. 아니, 현대인에겐 이 질문이 아니라, 돈 말고 도대체 중요한 게 있는지, 없는지 '존재'의 유무로 따지는 게 맞을 듯하다.

돈만 모으다 즐기지 못한 자는 가족, 친구와의 연대, 삶의 유희, 건강, 시간 모든 걸 잃을지 모른다. 반면 돈은 안 모으고 흥청망정 즐긴 자에겐 암담한 미래, 여유롭지 못한 노후, 후회, 공허가 자리하겠지. 새로운 정부 출범아래 새 주식&부동산 정책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여기에만 온 사활을 걸고 단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낭비하기엔 영화는 묻는다. 그 사이 여백에 대해 생각하라고. 그 여백이란, 극 중 소니의 잃어버린 낭만이나 혹은 업에 대한 미친 열정, 우승이라는 단어가 주는 희열일 수 있겠다. 그 여백이 설령 소니처럼 '높은 역치의 인내, 그리고 환희'라 한다면 뭐가 됐든 그 삶 자체는 돈보다 값진 것이다. 설령 우승을 못했다 할지라도.

왜? 돈으로 할 수 없는 걸 본인은 이뤄냈거든.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대개 시시하다. 콘크리트 무채색 아파트, 자동차, 명품은 행복의 역치가 매우 낮으며, 일시적 가짜 엔도르핀이다. 그래서 진짜 엔도르핀은 뭐냐. 감독은 마지막에 힌트를 준다. 멕시코인근지역 '크루사도'에서 드라이버를 자처한 소니는 페이를 많이 못준다는 주인 말에 웃으며 또 얘기한다.

IT'S NOT ABOUT THE MONEY.

돈이 만약 중요했다면 그의 직업과 관련된 드라이버라는 새 직업 도전자체를 못했을 거다. 어차피 그는 우승을 했기에 만질 수 없는 돈을 만진 사람일 테니. 내가 하루를 맞이하고 살아 숨 쉬는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그게 어떤 목표여야 하는지 그걸 알아가는 인생의 여정을 레이싱으로 간접 비유한 영화라서 더 값지다.


레이싱 경기는 언젠가 끝난다. 심지어 짧다. 우리의 인생도 그럴 것이니, 이 영화를 통해 올여름 여백을 가지고 내 여정에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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