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슈퍼맨> 리뷰
기존의 마블 세계관을 보완한 확장세계관 DCU(DC extended Universe)의 첫 시작, 제임스건 감독이 시험해 보는 야심작이다. 많은 등장인물 가운데서도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서사와 과하지 않은 빌런과의 적정한 대결구도, 삐걱대는 연애 그리고 직장에서의 서툰 모습까지 인간미를 살린 영웅적 면모는 이 영화에서 대중들에게 신선함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하다. DCEU의 첫 스타트를 안정적으로 끊었다 생각하는 영화다.
영화는 첫 시작부터 기존의 '슈퍼맨'이 가져온 영웅적 타이틀이 아닌,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시작한다. 슈퍼맨이 패배를 인식하고 서서히 바닥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그림으로써 인간과 다른 영웅적 자질이나 능력을 무력화할 만큼 현실과의 괴리감을 좁힌다. 여기서 대중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마치 우리 현실에서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부를 일구고, 가정을 만들고, '먹고사는 힘겨운 삶'의 첫 시작이 영웅이라고 해서 일반 서민과 다를 바 없다는 것에 대중이 생각할 수 있는 꿈과 목표가 담긴 현실적인 영웅적 면모를 보인다.
영화에서 빌런은 슈퍼맨을 악당으로 믿는 그릇된 가치관을 지니고 있고 막대한 권력을 쥔 대항마다. 슈퍼맨을 오랫동안 연구한 빌런 렉스 루터는 슈퍼맨이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닌 지구에 와 결국 사람들을 헤친다는 악성 여론몰이로 대중들을 교란에 빠트린다. 그리고 막대한 자금을 퍼부어 슈퍼맨을 무력화할 메타휴먼을 만들어 그를 위기로 내몬다. 이 시퀀스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과하지 않은 현실풍자를 부담 없이 흘러가듯 묘사했다는 점이다. 몽키봇의 댓글조작이나 인터넷을 통한 악성 여론몰이는 진실된 정보에 기대기 힘든 현대인의 고뇌를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또 '정의'라는 이름아래 전 세계를 보호하려는 슈퍼맨의 행보는 미국 패권주의, 세계의 경찰아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미국의 일방향적인 역사가 보이기도 한다. 시원하면서도 맹점은 존재하는 풍자. 이것도 슈퍼맨의 인간미라 생각하면 영화의 매력도를 높인다. 영화는 클라이맥스에 접어들 때 아무리 슈퍼맨이 초월적인 힘을 지녔다 한들, 그 힘이 정당화돼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조력자로부터 음모에서 벗어나 위기를 면하는 사람 간의 신뢰와 믿음이 이 삶을 헤쳐나갈 수 있는 진정한 원동력이 된다는 교훈을 남긴다.
이 영화는 단순히 '슈퍼맨'이라는 영웅적 서사가 아니라, 우리가 슈퍼맨이라고 믿는 무조건적인 존경과 신뢰도 어쩌면 우리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허구적 이미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슈퍼맨은 렉스루터에게,
그러니까 네가 틀렸다는 거야! 나야말로 가장 인간적이야, 나도 매일 아침 일어나서 뭘 해야 할지 혼란스럽지만 일단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해. 그리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 나의 가장 강력한 파워는 바로 거기서 나와! 너의 힘도 바로 거기서 비롯된다는 걸 깨닫길 바래!
라는 대사를 한다. 여기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절실히 드러난다. 인간이 아닌 초인 설정에서도 그는 실수를 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인간과 똑같이 늘 노력하면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 하늘에 기도하고, 매주 종교에 기대어 기도를 하고 절을 올리는 초월적 대상처럼 슈퍼맨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삶 아주 가까이에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에서는 기자로써, 한 여자의 남자친구로서 연애에서 서툰 모습을 보이는 슈퍼맨은 사실상 렉스루터가 슈퍼맨의 여론몰이를 하듯, 우리가 의도적으로 꾸며낸 대중들의 바람이었던 것.
그렇다면 왜? 대체 왜 이런 초인적인 슈퍼맨의 이미지를 우린 만드는 걸까. 어릴 적부터 왜 자연스럽게 슈퍼맨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걸까. 단지 일상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아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불안이 내재돼 있다. 더 많이 가져도, 누군가 본인 곁에 있어도 인간은 늘 불안하고 외로운 불완전한 존재다. 그 안에서 슈퍼맨이라는 어떤 영웅적 리더는 본인을 잠시나마 불안을 잊도록 해줄 수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유독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상황을 떠올려보면 대개 인간관계에서 온다. 가족이나 직장, 친구, 연인 간 관계에서 가스라이팅을 당하거나, 상처를 받아 트라우마가 생겨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준다. 그 안에서 우리는 양극단의 극단주의, 흑백논리, 편 가르기를 심심찮게 경험한다. 이 모든 것도 인간이 불안이라는 감정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소속된 집단안에서 정해진 틀 안에서 그 불안을 안정감으로 가리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매일같이 어울리던 학창 시절 무리가 변하지 않는 것도, 회사를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것도 다 그런 것이다. 그 소속된 집단의 정체성과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해 다른 집단을 공격하고, 헐뜯으면서 사회문제로 번지는 이 현상에 우리는 이미 익숙하다. 거기서 기에 짓눌렸거나, 실제로 힘을 잃게 되면 루저가 되는 것이고, 이긴 집단은 권력을 잡으며 여론몰이를 하고 렉스루터처럼 권력에 맛에 놀아난다. 그리고 더 거만해지고, 초심을 잃게 된다.
하지만 슈퍼맨이 이 영화에서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 바로'정의'를 내세운 선한 인성이다. 무조건적인 선함. 그가 행하는 선택과 행동에 인간과 지구의 평화를 지키려는 선한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고 진심을 알아주면서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선함은 양 극단을 초월하는 진심 어린 가치관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기에 충분하다.가장 힘이 센 영웅적 면모를 지닌 존재가 내 편이라는 것. 거기서 불안이 사라지고 마음에 심적 안정이 찾아온다.
누구나 예상한 슈퍼맨 시리즈의 클리셰적인 권선징악적 결말이나, 그 대결구도에는 우리 삶이 묻어나 있다.
양극단에 치우친 누군가가 어떤 선입견과 편견으로 상대를 공격한들 내가 옳은 선택과 행동으로 그들에게 증명하면 사실 그만이다. 영화는 이렇게 각자 대중들이 본인의 삶을 돌아보고, 더 나은 과정으로 갈 수 있는교훈을 준다. 슈퍼맨처럼 상징적인 어떤 하나의 영웅적 존재로부터 나 자신을 위안 삼는다라는 생각을 좀 더 미시적으로 바라보자면 우리 각자의 일상 속에는 어쩌면 각자만의 각기 다른 슈퍼맨이 존재한다는 말과일맥상통한다. 아무리 이 현실이 힘들고 팍팍해도, 직장에서 살아남고, 가족의 가장으로서 버텨내고, 법과 규율을 준수하며 선하게 아니, 최소한 악하게는 안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의 원동력은 마음속 내재된 슈퍼맨처럼 버텨낼 수 있는 위안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간다는 말 아닐까. 누구나 열광하는 슈퍼맨조차 이렇게 불완전한데, 스스로를 불완전하다고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는 이유 하나쯤은 가슴속에 품고 그렇게 인생을 누구나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두운 시간은 길고, 밝은 시간은 잠깐이다. 길고 어두운 밤이 지나야만 새로운 해가 떠오른다. 어둡고 긴 오렌지빛 터널을 지나면서 느끼는 불편한 순간들에서 영웅 한 명 있다고 그 긴 순간들을 이겨낼 수 있나? 한 영웅과 한 사람이 과연 인간을 구원할 수 있나? 절대 불가능하다 본다. 이젠 각자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가 버텨낼 수 있는 명백한 이유와 나만의 서사를 들여다볼 때다. 이 세상 모든 잘 나가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넘치는 시대. 나의 밑바닥과 타인의 하이라이트가 너무나 손쉽게 버튼 하나로 비교되는 사회. 나만의 이야기가 없다면 이 험한 곳에서 작은 비교도 한없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나만의 위로와 대안으로 나만의 슈퍼맨을 이제 견고하게 만들어갈 때가 아닌가. 제임스건감독은 이 슈퍼맨을 만들면서 그렇게 넌지시 말하고있는 듯하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고, 내가 당당히 말하고 행동하면 아주 높은 확률로 타인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 안의 작은 위로, 그 슈퍼맨이 나의 행동과 말에서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전달될 때 더 나은 세상이 온다.
영웅에 집착하는 건 동경의 대상이 있길 바라는 인간의 간사한 본성일 뿐이다. 누구나 위기 속에서 영화의 슈퍼맨처럼 초인이 나타나 이 위기를 헤쳐나가길 그리고 나를 구해주길 바란다. 영웅적인 리더가 나타나 본인을 좋은 길로 인도해 주길 바란다. 그래야 안정감이 든다. 그리고는 절대 본인이 영웅이 되어 희생하고자 하지 않는다. 현대인은 더 그렇다. 괜히 나서서 피해보고 욕먹기 싫거든. 조용히 묻어가고 싶거든. 달리기의 종착점, 그 최종목표가 정해져 있길 바라는 것 누군가 정해주길 바라는 건 인간의 나약한 본성이 내재된 결과물일 뿐이다. 그 나약함이 모여 연대와 책임으로 승화된다. 그래서 우리는 최소한의 가족부터, 조직과 집단, 국가를 만들어 안전한 울타리 속에 살아간다. 나약함은 모여야만 강해지니까. 영화에서도 드러나듯, 여론몰이와 음모로부터 이겨낸 슈퍼맨은 힘이 아닌 연대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완벽한 리더를 찾기 전에 우리는 그 연대 안에서 내 안의 내재된 슈퍼맨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해야 할 때다. 그게 한 영웅적 리더가 사회를 바꾸고, 한 개인의 삶을 낫게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빠르게 내 삶에 이익을 가져다준다.
대체 나에겐 어떤 초월적이고 무조건적으로 믿음직한 존재가 내재되어 있는지, 슈퍼맨처럼 세상을 구원하는거대한 목표는 아닐지라도, 그걸 믿고 향하는 굳건한 의지가 무엇인지 자문할 때다. 그걸 알아야만이 우리는 한 명의 대중으로서 <슈퍼맨> 차기작도 기대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