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판 짱구는 못 말려> 리뷰
각자 사회에서 요구하는 개인의 역할이라는 게 있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 문제를 안 일으키는 학생 1, 회사에서는 노조에 가입해 회사를 시끄럽게 만들지 않고 주어진 일을 착실히 하면서 조용히 상사의 말에 순응하는 직장인 1. 적당히 월급을 받으면서 월급 외 재테크에 올인하지 않고 회사만 바라보면서 거기에 집중하는 삶. 가정에서는 와이프 혹은 남편에게 다정하고, 희생적이며 자녀를 위해 그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삶.
자, 한 집안의 가장의 역할이 대개 이렇다면 그 와이프와, 아들과 딸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해도 각자의 역할의 절댓값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역할이라는 것이 생계 즉, 돈과 연결되어 있다면 그 역할의 무게가 타인보다는 무겁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더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장의 어깨가 무겁다는 말이 나오는 것. 그래서 가정에서나, 회사에서나, 지인에게서 본인은 마치 고유명사 같은 하나의 정답처럼 인식되는 선입견에 갇힐 수밖에 없는것이다. A가 있다 치자. 주변에서 A를 이렇게 말한다.
직장상사: “홍대리는 늘 밝은 사람이라 좋아.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밝게 맞아주니 얼마나 좋아. 아마 화가 애초에 별로 없는 사람일 거야”
아내: “내 남편은 내가 집안일을 부탁해도 아무런 불만 없이 매일같이 해줘. 매일 일하고 피곤해 찌들어도 내 말이면 무조건 들어줘”
딸: “아빠는 저에게 화를 안내요. 늘 받아주고, 다정한 아빠죠. 근데 모르죠. 제가 앞으로 용납할 수 없는 큰 실수를 한다면 화를 낼지도”
친구: “한 번도 친구로서 인색한 모습이 없이, 기분 좋게 본인이 사는 날이 많아요. 긍정적이고, 재밌고. 아무래도 본인이 우리보다 잘 버니까요”
주변에서는 A를 늘 다정하고, 배려심이 깊고, 화를 내지 않으며 가정에서나, 지인이나, 회사에서나 완벽에 가깝게 묘사한다. 그렇게 본인은 본인과 크게 상관없는 반대의 프레임이 굳혀져 간다. 설령 본인은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고, 화를 참지 못하는 순간도 있으며, 어떤 면에서 손해 본다는 생각도 하고 사는데 이제는 이 말을 더 할 수 없게 사회가 만든다. 그냥 본인은 애초에 이런 사람이니까 이렇게 계속 살아라고 사회가 강요한다. 얘는 이런 사람이고, 쟤는 저런 사람이고, 나는 현재 사회에서 몇 등이고, 자산으로는 상위권인지, 하위권인지, 상대적 비교 속에 위치를 확인받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고 믿는 게 한국 현대인이니까. 눈치 보면서 진짜 본인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아니, 이제는 본인이 뭘 욕망하고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현대인에게 < 짱구 극장판 초화려! 작열하는 떡잎마을 댄서즈>는 비수를 꽂는다. 사회가 정한 욕망을 어느 정도 쫓는 게 이상적일지라도 ‘나다움’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진짜 본인의 모습을 드러내도 본인이 주변에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본인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동심을 끌어내는 이 극장판의 대사 한 구절 한 구절은 아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성인 대중들에게 예전으로 돌아가라고 일침을 가한다.
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짱구의 극장판에서 이번 시리즈 맹구가 주인공에 나선 건 큰 의미가 있다. 늘 조용하고, 큰 스포트라이트가 없는 이 캐릭터를 하시모토 마사카즈 감독은 진짜 ‘나다움’이 뭔지 드러내기 위한 가장 강력한 도구로 맹구를 활용한다. 하트 돌을 줍는 것처럼 남들보다 느리지만, 사물의 특징이나 더 값진 걸 발견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떡잎마을 어린이 엔터페스티벌에서 우승한 떡잎마을 방범대는 인도 페스티벌 무대에 초청받는다. 그때 짱구는 아무런 정보 없는 잡화점에서 코 모양의 배낭을 사게 되고, 그 배낭에 꽂힌 두 개의 종이 중 하나를 우연히 코에 끼운 맹구는 신비한 힘이 생긴다.
본인의 욕망이 극대화 돼 이익을 취하고 주변을 헤치는 이기적인 빌런으로 변하는 것. 맹구는 초인적인 힘을 얻기 위해 짱구가 가진 나머지 하나의 종이를 찾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짱구네 친구들 그리고 대중들의 관심에만 몰두했던 가수 ‘아리아나’가 본인이 행복했던 나다움을 찾아가는 과정도 함께 담는다. 조연을 조연에 그치지 않고 이야기의 중심부로 끌어와 영화의 메시지를 극대화한다는 게 인상 깊었지만 단순히 시간을 끌기 위한 설정이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나다움’이라는 영화의 주제를 등장인물 아리아나로 확장시킨다는 건 색다른 시도임은 확실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교훈을 만화인물의 대사로 억지로 대중들에게 끌어내려는 점, 발리우드 뮤지컬을 오마주 했다고는 하나, 영화 내용전체의 흐름을 깨는 춤과 노래는 개연성을 따져볼 때 다소 과하지 않았나 싶다. 하나 확실한 건 영화 초반 원작 <짱구는 못 말려> 누구에게나 익숙한 주제곡 노래를 춤과 함께 그려낸 점은 대중들의 공감과 짱구가 가진 지난 오랜 친근감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다만 애니메이션답게 ‘극적인 교훈과 인생의 정답‘에만 치중한 나머지, 잡화점의 역사라던가 각 조연 등장인물이 가진 배경 등 전체적인 영화 시퀀스를 만들어가는 뼈대는 좀 부족하지 않았나 아쉬움이 남는다.
사회에서 정한 어떤 역할은 그 자체로 역할일 뿐이다. 사회에서 바라는 역할. 그래야 내 가정을 잘 지키고, 돈을 안정적으로 벌고, 안정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이 사회는 강한 믿음을 준다. 내가 조금 부족한 아빠일지라도, 회사에서 내가 조금 부족하고 서투른 대리일지라도, 누군가에게 내가 아주 조금은 이기적인 친구일지라도, 어떤 날엔 집안일에 너무 신경을 안 쓰는 무관심한 남편일지라도 뭐 어떤가? 그 소중한 본인의 사람들이 그걸 핑계로 들며 본인을 떠날 리 없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듯,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내 사람들이 다듬어주고 보듬어주면서 사는 게 진짜 행복 아닐까.
다섯 모서리가 뾰족한 별이 사회의 요구에 맞게 깎고 깎아 동그라미가 된다면 그 자체로 개성이 있다 할 수 있을까. 별은 별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값지고 빛나는 거다. 이 정도면 ‘나다움’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지켜내야 할 돈보다 더 중요한 본인의 자산이지 않을까. 영화의 마지막 짱구는 맹구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맹구, 네가 맹수가 되든 맹꽁이가 되든 맹견이 되든 나는 너랑 놀고 싶어. 너랑 같이 즐겁게.
무엇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얻기 위해서 만나는 관계는 유효기간이 있다. 그 기간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애초에 모르는 사이보다 더 못한 사이가 된다. 심지어 그 유효기간 내에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곧장 그 관계는 변절해 버린다. 이 대사에서 느낄 수 있듯 감독이 진짜 이 에니매이션에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뭐냐고? 딱 한 단어로 말해줄게.
그냥 나답게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