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바타:불과 재> 리뷰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어떤 유토피아가 있다한들 인간이 개입한 곳은 탐욕에 의해 쉽게 무너진다. 건물을 올려 경제가 발전한들, 양극화로 누군가는 피해를 보고 환경이 파괴돼 누군가는 설자리를 잃는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결과물엔 적적한 삶의 또 다른 뒤편이 자리한다. 철저히 본인만 생각하는 이기심이 또 다른 이의 분노를 키우고, 그건 결국 번지고 번져 사회문제가 된다.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한 것도 단순히 미국과 의견이 대립한다는 정치적, 사회적 모든 이해관계를 막론하고 원초적으로 접근해 보면 이유는 꽤나 단순하다. 실은 이 지구에 있는 이백여 개의 국가가 개인의 이익이 애초에 발현이 돼 본인의 것을 지키려는 방어기제, 더 가지려는 탐욕이 만든 산물이거든. 사실 까놓고 보면 지구나 국가나 그 누구의 것도 아닌데 인간의 탐욕에 의해 영토란 영토는 모두 갈라놓는 거다. 그 배경을 철저히 이해하고 나서 <아바타 3: 불과 재>를 바라보면 새롭다. 등장인물로 하여금 느끼는 인간의 반성이 꽤나 색다르게 다가온다.
그렇게 무언가를 가진 기득권자는 본인의 철옹성을 더단단히 높이고, 타인은 들어오지 못하게 본인만의 세상을 만들고, 포모, 양극화를 점점 더 벌려간다. 피해받는 상대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다.
영화 <아바타 3: 불과 재>는 멧케이나족 마을에 자리 잡은 설리가족 앞에 재의부족 '바랑'이라는 망콴족의 우두머리가 등장하며 지구에서 본적 없는 피 튀기는 생존싸움을 벌이면서 웅장하게 시작한다. 이 판도라는가히 웅장하다. 거기다 지구라는 터전을 떠나 새로운 행성에서의 생존방식을 연구하는 인간의 '탐욕'까지 더해지니 러닝타임 세 시간이 한없이 짧게 느껴진다. 여기서 등장인물 스파이더의 양면적 역할이 다시 화자된다. 설리네 가족 키리가 에이와의 믿음으로 마스크를 벗고도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 된 스파이더. 그릉 살려두기엔 미래에 인간이 이 판도라를 지구처럼 집어삼킬 거라는 불안, 죽이자니 배신이라는 죄책감. 결국 그를 살려주며 설리네는 여태껏 싸움을 피했던 고래부족 ‘툴쿤’과 합심하여 인간과의 싸움을 준비한다.
망콴족과 인간 VS 물의 부족과 툴쿤과의 대결에서 보이는 시각적 충격은 왜 아바타 시리즈는 무조건 영화관에서 그것도 4DX로 봐야만 하는지, 어떻게 이런 스크린을 인간이 구현해 낼 수 있는지 그 웅장함에 감탄하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영화산업의 불황기에
‘극장의 존재이유’에 대해 비로소 생각할 수 있다.
이 진부한 영웅서사 뒤에 우리가 이 영화에서 생각할 수 있는 인사이트는 웅장한 판도라의 스퀀스를 빼고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우린 누구와 미래에 연대할 수 있을 것인가‘다. 솔직히 설리가족에게 최종적으로 선택받은 ‘가족’이라고 불릴 수 있는 생존자들은 단편적으로 영웅서사의 해피엔딩이나, 빌런을 물리치고 파괴하고 어떻게든 살아남은 사람들일 뿐이다. 분열과파괴, 그리고 연대의 중간에서 마치 이 영화는 그 모순을 줄다리기하며 독자들에게 열린 의문을 제기한다.
누군가는 기존의 관습이나 사람이나 전부 다 파괴해야만 성장이 있다고 단정 짓는다. 그리고 익숙했던 것들을 전부 버려버리고, 아예 새로운 것들로 주위를 채운다. 그게 곧 성장이다. 이 범주는 내 집안의 물건일 수도, 인간관계일수도, 회사의 정치라인일 수도, 돈과 돈이 엮이는 거래처를 선택하는 문제일 수도 삶의 모든 부분이 해당된다. 그렇게 새로 바뀐 것들은 헌 것에 비해 높은 대우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혁신’과 ‘연대‘라는 가면을 쓰고 또 다른 삶을 밝게 채워간다. 뒤편의 헌 것들은 피를 보면서 여전히 소외받고 앞서 말한 양극화는 벌어져가는데. 사실 이게 어떻게 모두를 품는 연대라고 할 수 있을까.
심지어 전 세계를 헤집으며 패권행세를 해온 최대 자본주의 미국에서 미국인들로 하여금 이 판도라가 만들어졌다는 게 연대를 말할 수 있는 영화인지 더 의구심이 든다.
이 영화는 오히려 연대라는 관점보다는 어떤 부족을 선택하고, 나는 어떤 편에 서고, 어떤 결과물을 받아들일 것인가의 선택에 대한 대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아닐까. 영웅서사의 진부한 해피엔딩은 어떤 선택을 하든 좋은데 ‘되도록이면 도덕적이고, 선하고, 서사가 긍정적이며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편에 서라고 넌지시 암시를 하는 듯하다. 그리고 성인이니 그 선택의 결과가 어떻든 선택에 대한 책임만 명확히 지라고. 연대는 그다음 문제라고. 흠. 근데 삶은 영화같지 않다. 마음먹은대로 되는 일이 없다. ‘영화같은 삶’은 현실과의 괴리감이 굉장한 환상 속 단어에 가깝다.
그럼 우리는 매순간 맞이하는 이 선택의 갈림길에 어떤 중심을 잡고, 어떤 대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나.
원초적인 사랑을 기반으로 한 가족이라는 고유명사에다양한 시도를 한 점, 그 안에서 등장인물간의 용서, 연민, 사랑이 보인 점. 가족을 안거나 등지고 그 세상을 너머 부족을 책임지는 것에 대한 고뇌. 진부했지만 화려했고 숭고했다.
그나저나 환경보호는 해야 이런 웅장한 상상이만든 판도라의 시대가 현실이 되지 않겠지. 영화는 언제까지나 영화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