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굿뉴스> 리뷰
일상 속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확률. 오락실에 가서 내가 이 게임에 상대방을 이길 수 있는 확률은 얼말까?이번시험에 통과할 수 있는 확률은 몇 퍼센트 정도 될까? 지금 이대로의 생활습관을 유지한다면 이번 달까지 내가 살을 3킬로 이상 뺄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취업시장에서 이 회사에 서류를 통과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나는 그녀를 좋아하는데 그녀가 날 좋아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매 순간 우리는 확률을 마주하고 만약 그 사건이나 행위자체가 본인이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라면 그 확률을조금이나마 더 높이려 갈망한다. 근데 이 확률 중에서 10%, 20%. 거의 30%의 미만인 것들은 사실상 성공하기가 쉽지만은 않고 누군가에게 어떤 위로 섞인 말을 한다거나, 스스로 자기 위안 삼는 것에 가깝다. 객관적으로 확률이 이 정도 낮다는 건, 아무리 내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 힘쓴들 안 되는 건 그냥 안 되는거다.
즉, 내 능력 밖의 문제일 확률이 높다. 그럴 때에는 그 결과에 너무 집착하거나 좌절하기보다는 조금 더 멀리관조하면서 환경을 바꾸거나, 능력을 키우거나. 다음 기회를 노려본다는 마음가짐으로 좀 더 편하게 바라보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반대로 확률이 70% 이상인 경우는 그 자체로 거만해진다거나 들뜬다거나 하지 않고무게중심을 유지한 채 지금 있는 그대로의 텐션으로 쭉 가면 된다. 과도한 긴장이나 기쁨으로 들뜨는 건 눈앞에 있는 일을 등한시하기 쉽고, 일을 그르쳐 실수를 부르기 때문에 이 또한 경계를 해야 한다. 단, 확률이 높은데 그게 앞서 말한 것처럼 내가 간절히 바랐거나 오랫동안 목표 삼아온 일이라면 물론 그 자체로 축하할 일일테니 만족과 충만함은 좋다. 단순히 지금 일이 성공했고 목표를 이뤘고를 다 떠나서 지금 하고 있는 방법이 맞다는 증명일 테니.
자, 그럼 문제는 뭐냐. 확률이 딱 50% 일 때다. 반반. 어떻게 될지 짐작도 안되고 불안하기만 하다. 이 50% 확률이라는 건 나의 문제도 아니고 상대방의 문제도 아니고,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냥 진인사대천명 같은 개념. 기다리는 수밖에. 그리고 그 결과를 받아들일 때 온전히 수용하면 된다. 1번을 내가 바랬는데 2번이 됐다고 해서 마냥 안 좋은 것도 아니거든. 당연히 당장 맞닥뜨렸을 때엔 너무 힘들어 좌절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전화위복으로안 좋다 생각한 것이 상황이 바뀌어 인생에 좋은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반대의 개념도 마찬가지.
어떤 결과 및 파급효과를 떠나 50%의 확률이라는 건 직전에 결정되기 전까지가 가장 사람을 피 말리게 한다. 그 긴장감은 겪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꽤 좋지않은 감정이고, 결과가 나왔을 때 온 긴장이 풀리면서 심신에 피로를 가져다준다.
일상생활 속에서 예를 들어보겠다. 취업준비생이 있는데 간절히 본인이 바랬던 회사의 최종면접까지 갔다. 근데 총 면접자는 2명. 뽑는 사람은 한 명. 경쟁률 2:1. 즉, 50%. 당연히 붙겠다고 생각한다. 왜? 이 한 명만 제치면 되거든. 근데 중요한 건 상대방도 똑같이 생각한다. 가장 피 말리는 게임이다. 단, 치킨게임보다는 조금 낫다정도. 치킨게임은 누가 이기냐/지냐의 문제가 아니라 둘 다 망할 수 있는 구조기 때문에 더 무섭다. 내가 피하면 ‘패배’가 되는 것이고, 피하지 않으면 둘 다 죽는 공멸 같은 거거든. 부부싸움도 내가 한 발짝 물러나면 자존심싸움에서 진 것이 되고, 계속 밀어붙이면 사이가 틀어지고. 직장상사와 팀원 간의 말싸움, 친구 간의 연락 끊김 문제, 이직문제 이 모든 게 사실 치킨게임이랑 똑같다고 보면 된다. 중간에 멈추면 진 느낌인데 그렇다고 계속 가면 둘 다 죽는 그런 상황.
이와 같이 확률에 관해 현대인은 예민하다. 어떻게 하면 내게 유리한 쪽으로 내가 원하는 쪽으로 확률을 끌어당길 수 있을까에 대한 고심을 하던 와중에 영화 <굿뉴스>는 내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 영화는 조금 특이한 것이 관객이 영화 스크린에 비판적인 사고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영화 러닝타임 중에 관객에게 설명을 돕는다. 이 영화에 나오는 비밀공작원 ‘아무개’의 아버지는 6/25 전쟁당시 북한 포로로 잡혀 그의 아들 아무개가 신분말소되는 조건으로 중앙정보부 부장의 부하가 됐다. 그렇게 비밀공작원이 되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다룬다. 영화의 설계자로 기능한다. 머리가 비상해 설계자로서 사건을 담당하지만 끝나면 내팽개쳐버리는 토사구팽의 인물로 자리한다.
1970년 일본 요도호 납치사건을 배경으로 하는데, 일본항공 351편 보잉항공기가 적군파 무장대원들에게 납치되면서 시작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답게 리얼리티함과 극적전개가 러닝타임 내내 지루하지 않게 한다. 이 적군파 무장대원들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혁명의 성지 북한 평양으로 가는 것이 이 하이재킹의 목적이었다.
이 비행기 납치사건에 일본, 한국, 북한 그리고 러시아 등 각국은 눈치게임을 하며 복잡한 이해관계에 둘러싸인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자국민이 탄 비행기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 비행기가 평양으로 가지 못하게 막아야 했고, (사실은 기업이 입을 피해에 대한 우려가 더크겠지만), 한국은 일본을 도와 어떻게든 도와줬다는 명분 하나는 잡아야 했다. 또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성을 홍보도 해야 한다. 북한은 적군파의 일원들을 환영한다 하면서도 러시아의 환심을 사기 위한 눈치만 본다. 그 어떤 국가에도 진짜 이 비행기에 탄 국민들을 보호하거나 할 생각 자체가 없다. 그들에게는 그저 국제사회에 대의와 명분만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내 밥그릇 안 뺏기고, 조금 더 상대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이번 사건을 서로 어떻게든 머리를 굴리는 방법만 보여줄 뿐이다.
한국은 지금 비행기가 한국을 거쳐 평양으로 향하고 있는 와중에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딱 하나 뿐이다. 바로 김포국제공항을 평양으로 속이는 것. 그들을 평양으로 가는 경로를 모르니 관제사를 통해 물어볼 것이고, 우리가 북한보다 먼저 주파수를 뺏어 ‘여기가 평양인 척’을 해야 한다는 거다. 단, 먼저 연락은 못하고 올때 낚아채야한다. 방법이기발하고 말고를 떠나 사실 그 방법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엘리트 관제사 고명은 이 중책을 맡는다. 확률은 50%. 납치된 일본 비행기 측에서 무전이왔을 때 그냥 북한보다 버튼을 빨리 누르면 끝나는 게임이다. 적군파가 비행기를 하이재킹 했다면 한국은 주파수 하이재킹을 하는 거다.
다행히 결과는 성공. 간발의 차로 북한보다 먼저 주파수를 뺏는데 성공해 비행기를 김포국제공항에 착륙시킨다. 문제는 그다음부턴데, 그들은 이곳이 평양이라고 믿지 않고 의심을 한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 차관과 납치된 승객들을 교환해서 풀어주는 조건으로 그들은 평양으로 향하고, 납치된 승객은 모두 풀려난다. 그 이후로 일본 차관, 그리고 비행사 모두 일본으로 무탈하게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적군파는 실제로 북한으로 망명된다.
이 영화는 이념 경쟁체제의 구조적 폭력과 잘못된 이념에 매몰된 한 사람과 그 집단이 만들어내는 위험성에 대해 강하게 말한다. 자본주의의 선전 그리고 공산주의의 잘못된 이념체계를 꼬집기보다는 극명한 정치적 대립으로 잃어가는 세계적 질서와 혼돈을 다룬다.그리고 전쟁이라는 명목적 공포를 관객에게 알림으로써 어떻게 보면 한 집단이 계획한 이 일이 국제사회에 끼치는 파급력에 대한 위험성마저 알린다. 이 영화에서 문득 든 생각은, ‘아 전쟁이라는 게 참 무섭구나‘, ’잘못된 이념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 국가에 영향을 끼치는지‘ 보다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이나잘못된 정치체계의 모순이다. 가령 미국은 국제법을 어기지 않고 평화를 위한다고 떠들지만 중요한 상황에봉착했을 때 한국의 군인을 희생시킨다. 그리고 무조건 하이재킹을 성공하라고 강요한다.
또 다른 생각은 바로 확률에 대한 이야기. 앞서 말한 것처럼 이 50%의 확률 속에 만약 서고명이 버튼을 북한보다 조금 더 늦게 눌렀다면 지금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그들은 평양으로 직행하고, 미국과 일본은 국제사회에 놀림거리가 되고, 러시아와 북한은 기세등등해본인의 잘못된 정치이념을 정당화하고. 그 일본비행기에 탑승한 승객들은 어떻게 됐을까. 아마 다 죽었을지도. 그저 ’ 운‘이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이 확률 50%에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고, 그건 우리에게 역사가 됐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내게 그리고 현대인에게 두 이념체계의 모순 말고도 심오한 물음을 남긴다.
어떤 질문? 인생은 결국 확률게임이며, 나는 내게 유리한 확률을 더 끌어들이려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조금 더 버튼을 빨리 누르려고 수많은 의미부여 그리고 긴장도 물론 중요했겠지 저 하이재킹 순간엔.
근데 영화는 영화일 뿐.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와는 조금 다른 쪽으로 생각이 드는 것이, 확률을 내게 좀 더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시도를 일단 많이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 시도가 만약 잦다면실패와 좌절은 어떻게든 필연적인데 거기에 매몰되다 보면 내가 원하는 것들의 확률을 높이는 데 더 어려워지고, 확률 자체를 매기는 데도 주저하게 된다. 영화에서처럼 조금 더 바르고 이상적인 해피엔딩을 원한다면가볍게 생각하고 한걸음 물러서 편하게 시도해 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 그게 결국은 각자 본인 인생의 ‘굿뉴스’를 불러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