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승자와 행복한 패자

영화 <왕과 사는 남자> 리뷰

by 홍그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끊임없이 회자된다. 뉴스 1면에 실리고 매 경기에 출전할 때마다 금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닌다. 은메달, 동메달, 4위, 5위는 어떤가. 어느 순간 잊히고 선수들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끊임없이 보여주고 증명해야만 이 바닥에서 살아남는다.

시험준비를 하는 누군가에게 근황을 물었을 때 결국 주변인들이 궁금해하는 건 하나다. 합격했나/못했나. 합격하지 못했다면 그 과정이 아무리 착실하고 성실했든 본인만 인정하고 모두가 간과하고 무시한다. 혹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반대로 과정은 불성실하고 게으르게 보일지라도 결과가 합격이라면 그 과정마저 성실했던 것이 된다. 이처럼 모든 것은 결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것이 1등이든, 합격이든 극적인 결과가 됐을 때만이 나의 주변인 그리고 대다수는 그 전체 일련의 과정을 인정하고 치켜세운다. 결국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하고, 잘해야 하고, 원하는 걸 이뤄야 한다.

세조는 경국대전 편찬에 기여하고, 중앙집권을 통한 왕권강화, 군사 및 행정체제를 정비한 조선의 기틀을 마련한 왕이다. 묘호가 '조'인 이유다. 하지만 세조는 어린 단종의 왕권을 탐내 명나라에 직접 파견 가 본인이 정권을 잡고, 어린 단종을 유배 보낸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왕권을 가졌지만 후대에서는 정의보다는 실의를 택한다. 왜? 계유정난이 성공했거든. 성공해서 백성을 배 불리고, 조선이라는 나라에 안정을 찾게 해 줬거든. 왕위를 찬탈하든 말든 일단 잘했으니까 묘호를 세조라고 떠받든다. 그렇게 권력과 정치, 역사해석에서 결국 이긴 자는 아주 당연히 현대인에게 긍정적으로 기억되는 한편, 장항준 감독은 약자의 편을 든다. 단종이 유배당한 영월의 청령포 역사적 사실과 기록에 근거한 약자의 편에서 상상력을 자연스레 가미한다. 남녀노소 불문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 '정과 온기'라는 무기를 들고 온다.

이는 마치, 어떤 맛일지 예상이 가는 음식점이 있는데 그 음식점을 자주 찾는 손님의 의도를 감독은 이미 파악한 꼴이다. 중학교 3학년의 나이인 단종이 영월에서 엄흥도를 만나 인간의 온기를 느끼고 마음을 여는 과정을 그린 이 두 시간의 러닝타임은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 과정이 값질 수 있음을 대중들에게 넌지시 알린다. 좋지 않은 결과에 좋은 과정이 나올 수 있다는 건 비일비재하나, 어쩌면 사회가 그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기억해 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을지 모른다. 대놓고 이런 깨달음을 주는 영화는 여태껏 없었지 않나.

반역과 배신이 난무하는 한양의 정치판을 등지고 영월에서의 유배 생활은 오히려 노산군에게 더 행복해 보인다. 기록에는 한 통인이 있었다고 하지만 엄흥도를 유해진만이 할 수 있는 익살스러운 캐릭터로 만들어낸 감독의 의도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자.

나약하고 병약하기만 한 단종이 주변의 도움으로 주체적으로 바뀌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지 않았을까. 실제로 박지훈 배우는 이 연기를 톡톡히 해낸다. 처음의 분노, 억울함, 자존심, 공포를 후반부에 안정감과 편안함으로 잘 그려냈다는 건 배우의 연기력과 감독의 캐스팅이 균형감 있게 성공했다고 본다.

사실 감독이 약자의 편을 들었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 계유정난을 성공한 수양대군이 약자에서 강자가 된 것이고,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등됐다고 해서 강자에서 약자가 됐다는 건 틀 안에서의 쉰내 나는 사고방식일 뿐이다. 결국 뺏고 빼앗기는 권력경쟁은 결국 후대에 기록 및 평가받는 것. 단종이 만약 계유정난을 막고, 계속 왕권을 가져갔다 해도 국정운영을 지금의 세조처럼 잘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건 사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단순히 모두가 주목하지 않은 사각지대를 감독은 인간의 원초적인 정이라는 감정을 가미해 대중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시도를 한 것뿐. 그게 원래 예술 아닌가.


시점만 바꾼다면 대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건 어렵지 않다고 본다.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를 제삼자가 바라보는 폭력적인 구도가 아닌 본인의 시점에서 모든 리스크와 부담을 짊어지고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일대기를 영화를 만들어도 똑같겠지.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과장하거나, 혹은 박정희의 군사정변이 아닌 본인 개인의 삶을 바라보는 시점이라면 또 얘기는 달라질 수밖에. 어느 포인트에서 대중들은 감정적 치유를 받는지 역사적 사실, 단종의 시점, 감독의 상상력 이 모든 요소가 어우러진 영화다.

마치, 현대인에게도 접목할 수 있는 것이 꼭 1등이 아니더라도, 원했던 결과에 고배를 마셨더라도, 끝까지 본인을 지켜주는 주변의 도움과 사랑으로 본인만의 속도대로 쓸모를 찾아가라는 위로를 건네는 듯하다. 내 아무리 밑바닥에 있든, 가장 낮은 자리에 있든 어떻게든 한 톨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증언하려는 옛 조상들의 지혜는 어느 위치에서든 다 보고 있으니, 제 자리에서 묵묵히 본인의 쓸모를 연구해 보라는 말로 들린다. 그러면 영화에서는 단종은 실제 복위를 하지 못했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 한 번은 주어지지 않겠냐고. 걱정 말고 지금의 길을 묵묵히 가라고 영화는 희망의 메시지를 남긴다.

영화는 말해준다. 이 영화의 주인공만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실제로 단종이 정이 많았든 엄흥도가 어쨌든 간에, 결국 서사는 내가 만들기 나름이라고. 유배조차 만약 가지 않고 단종이 바로 사약을 먹고 죽었다면 이런 상상력은 아예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유배라는 힘겨움이 있었기에 새로운 이야기가 써졌듯, 지금 일이 좀 풀리지 않고 힘든 누군가에게,

이 정도 서사는 있어야 스토리가 재밌지


라고 생각할 수 있는 대중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한 명이 아닌 다수라면 이 영화는 성공한 거고 그 대중도 성공한 거다.


한편, 역사에서 주목하지 않는 사건을 다뤘지만 단종 복위운동이 깊이 없이 인물중심으로 빠르게 전개됐다는 점은 아쉽다. 그럼 어떤가.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고, 무엇보다 재미있고, 신선하고, 두 시간의 러닝타임에 제 역할을 해낸 충분히 값진 웰메이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