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먹고살기 힘들다

4화: 어떤 위로

by 홍그리

‘가장 밑에서는 올라갈 일 밖에 없다’


‘에너지를 비축해야 멀리 뛴다’


‘용수철을 봐라. 가장 납작해지는 순간 가장 멀리 날아간다’


이 말을 종합해 현대사회와 대조해 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왜? 애초에 가장 밑까지 안 가도 성공할 사람들은 잘만 성공하고 잘 풀리는 사람은 이미 인생 탄탄대로 잘 풀린다. 에너지를 비축하는 동안 이미 남들은 훨씬 더 멀리 가 있거나 잘 나갈 수도 있다. 못 따라갈 정도의 차이를 벌렸을 수도 있다. 그리고 에너지를 비축했는데도 영원히 그 비축한 에너지를 쓸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수도 있으며, 정작 그 순간이 왔는데 긴장해서 멀리 못 뛰고 나락으로 갈지 모른다.

용수철을 누르면 그 반동으로 인해 가장 멀리 튀어 오르는 건 맞지만 그 방향이 조금이라도 옆으로 뒤틀려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이 가능성 50%.


나머지 가능성 50%은 지금 인생이 안 풀리는 누군가에게 혹은 아직 시간이 있는 누군가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사실이자 위로메시지로 다가온다. 나이가 젊고, 그리고 가야 할 길이 아직 많다면 기회는 언제든지 올 수 있다. 초반 달리기가 좋다해서 마라톤에서 이기는 건 아니듯, 조금 더 여유롭게 본인이 하고자 하는 걸 준비한다면 전진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는 무조건 오기 마련. 전혀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지금 돈을 못 모아도, 괜찮은 일자리가 없어도 일단 시간이 있다.


근데 현실에 입각한 이 따스한 위로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인생여정을 바라보는 시각은 온도차가 꽤나 크다. 기성세대의 그 유명한,


나때는 말이야~~


(Latte is horse =라떼는 말이다와 같이 비꼬기도함)


는 상대의 힘듦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본인의 힘듦이 좀 더 밀도가 있었으니, 이걸 보면서 희망을 얻으라는 반쪽자리 위로에 가깝다. 어쨌거나 네가 아무리 지금 힘들다고 투덜대봤자 우리만큼은 아니니 엄살 피우지 말라는 것. 힘듦의 비교우위가 이미 깔려있는 말이다. 그런 다음에 이제 나오는 게 버티다 보면 기회는 오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으니 참아보라는 식이다. 아 맞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냥 노력이 아니다. 노오오오오력이다.


여기서 청년들의 반응을 우리는 객관적으로 해석해봐야 한다. 이걸 기성세대들은 늘 놓친다. 여기서 청년의 목소리는 기성세대 너희들은 당시 경제발전시기라 일자리도 많았고, 그래서 취업도 너무 쉬웠으며(실제로 대기업 취업률이 3:1 정도의 경쟁률), 아파트는 월급쟁이가 돈을 모아도 살 수 있는 상황이었고 등등으로 답변하면 거기다 급발진해서 세대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데, 청년들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 아니야, 지금 우리가 더 힘들어‘ 를 알아달라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맹점이 있다. 바로 그때는 어땠는지 크게 관심 없고, ‘그냥 지금 내가 너무 힘들다’라는 것. 대부분의 부모는 그걸 모르고 자녀를 훈육하니 그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거고, 그런 갈등이 많아지니 사회문제로 번지는 거다. 기성세대의 삶이 그렇게나 힘들었다고 우리가 인정한들, 아니, 그게 100% 사실인들 지금 내 힘듦이 줄어들지 않는다라는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거는 지나갔으니, 지금의 힘듦을 조금이나마 세대 간 힘을 합쳐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첫 번째 아닐까.


단순히 앞서 말한 취업사례를 한번 보자. 요즘 청년들이 취업하고 싶어 하는 한 직장의 자기소개서의 일부다.


1. 다른 사람과 같이 협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개인적인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맡은 역할을 끝까지 마무리하기 위해 ㄴ력했던 경험에 대하여 본인의 행동 및 결과를 포함하여 구체적으로 기술하시오.


자, 답변을 어떻게 할 건지를 고민하기 전에 이 문장 자체를 보자. 비문이 이런 비문이 없다. 문장이 지나치게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있고, 명확히 그래서 어떤 거에 좀 더 힘을 실어 답을 해야 할지 머릿속에 곧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협동을 해야 하는 순간, 가령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그 순간에,


’아, 내가 개인적으로 너무 불편하지만 우리 팀을 위해 이 프로젝트를 성실하게 마무리해 보겠어! 스펙으로 활용해 나중에 써먹으려고!‘


라고 생각하는 지원자는 단언컨대 없다. 그리고 그 본인의 행동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팀에 도움이 됐는지, 어떤 대단한 성과를 이뤘는지 (그것도 본인의 100% 역량으로) 상세히 기억하고 적어두는 사람은 없다.

결국은 뭐냐. 꾸며내라는 거다. 아주 작은 일, 숙제든, 프로젝트는, 팀플이든 어떻게든 본인의 역량과 협업으로 과장하고 장황하고 꾸며내 어디 한번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다‘ 라는걸 보여달라는 거다. 자기소개서라기보다는 작문 시험에 가깝다.


2. 이전과 다른 접근을 통해 기존의 일과 관련한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미리 예방했던 경험에 대하여 그러한 접근을 시도한 이유와 당시 결과를 포함하여 구체적으로 기술하시오.


이 질문도 마찬가지. 미래의 일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미리 파악해야 했고, 접근의 시도가 정당하고 올바르고 비범해야 하고 결과도 꼭 좋았어야만 한다. 이런 질문을 다섯, 여섯 개를 답해야만 비로소 한 회사의 자기소개서가 완성된다. 청년들은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심지어 이런 회사는 경쟁률만 100:1. 그냥 힘들다 내 힘으로 밥 먹으면서 현생을 산다는 것이.


라테는 말이야라고 했던 중년이 그러면 과거만 얘기하겠냐. 당연히 그들도 지금 너무 힘들다. 회사에서 깨지고, 자영업은 죽는소리하고, 집에 들어오면 애보랴, 자녀가 좀 컸으면 뒷바라지하랴, 노후준비는 안 되어있고, 정부는 중년을 외면한 채 청년지원에만 발벗고 나선다. 표심과 본인의 정치생명을 위한거겠지.

힘듦의 정도는 상대적이나 누구나 고통스럽고, 힘든 하루하루를 그냥 버텨가는 중인 거다. 그리고 간헐적으로 오는 행복은 너무 짧기만 하다. 내가 더 잘났니 마니 1초 단위로 올라오는 허세로 가득 찬 SNS를 이길 수 있는 건 진짜 별것 아닌 사소한 것에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문화조성이 아닐까.


가장 밑에서 안 올라가도, 용수철에 높게 안 뛰어도, 에너지를 비축한들 굳이 멀리 안 뛰어도 지금 이렇게 하루를 잘 보낸 것 그 자체가 감사하다고.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