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본업
지인은 편의점 점주님. 친구는 브런치 가게 사장님. 그들과 대화할 때 늘 등장하는 말이 있다.
“제발 절대 자영업 하지 마”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거의 대부분은 직장인. 자녀에게 혹은 진심으로 본인이 아끼는 사람이 있을 때 또 똑같이 하는 말이 있다.
“제발 직장인 하지 마, 너 꿈을 가져“
마이크 타이슨이 한 유명한 말.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이 말이 왜 갑자기 나왔냐. 친구는 브런치가게를 오래전부터 열고 싶다고 내게 말했지만 학생 때부터 그게 꿈이 아니었음을 난 똑똑히 기억한다. 그의 꿈은 통역사였다. 시간이 지나고, 브런치를 만드는 것이 재밌고 계속하다 보니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할 줄 아는 것으로 돈을 벌어보자는 생각에 브런치가게를 열었다. 통역사는 현실의 벽 앞에 무너진 것이다. 어찌어찌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손님도 있고 어느 정도 장사가 되니까 계속하고 있고, 오래전부터 본인은 그걸 꿈이었다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지금 본인도 만족하고 나 스스로도 그가 잘돼서 참 좋지만, ‘브런치가게 사장님은 애초에 오래전부터 원했던 꿈이 아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삶에 찌들고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나니 그는 지금 가게 사장님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를 떠나 처음에 가졌던 환상과는 현실이 다를지라도 조금씩 개선하고 바꿔가며 그렇게 만족스럽게 산다. 휴일에는 바이크를 타면서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가끔은 책도 읽기도 한다. 다음 2호점 구상도 덤이다. 이 정도로 가게를 할 줄 안다는 것에 감사해한다. 통역사는 이미 잊은 지 오래. 미련도 없다.
편의점 점주님도 마찬가지. 원래 현장에서 일을 하시다 몸이 다쳐서 몇 년간 쉬셨고, 회사는 그가 계속 쉬는걸 바라지 않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나왔다.퇴직금으로 편의점을 차렸는데 온갖 진상들 다 만나는데다 아르바이트비를 못줘 새벽엔 문도 안 열고, 가맹점 수수료, 위약금, 재료값, 아르바이트비 다 빼면 진짜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한다. 다 오르니까 내가 가져가는 건 계속 작아지는 그런 논리다. 손님이 많을 때도 있고 적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해하며 오늘 새벽에도 힘차게 편의점 문을 여신다.
그럼 직장인은 태어날 때부터 꿈이 직장인이었나. 아니, 절대. 그런 불쌍한 아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세상 모든 걸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야망이 있어야만 어린이라고 할 수 있는 것. 현실적으로 그럼 어떻게 직장에 들어가는가. 대학에 입학하고 원하는 전공에 학점을 따서 정작 사회에 나와보니 드는 생각.
‘아. 내가 뭔가 남들보다 대단한 걸 배우고 깨우친 게 아니었구나. 이 정도는 다 남들도 하는구나’
그때서야 스스로를 자기검열한다. 그리고 취업을 알아본다. 누구 밑에서 일을 하는 것이 제일 속편하다. 창업을 하거나 뭔가 대단한 걸 생각하고 만든다거나 창작에 재능이 있다거나 이런 게 아니거든. 그렇게 일자리를 알아본다. 본인을 아주 운 좋게도 ’과대평가‘한 곳이대기업이라면 대기업에 다니는 거고, 그게 중견기업이라면 중견기업, 아니면 중소기업 가는 거다. 그러다 몇 년 직장생활이 익숙해질 때쯤 매일 반복되는 하루에 똑같은 일을 하면서 자아실현이 될 수 없는 본인의 직무에 현타를 느낀다.
그러다 퇴근 후 우연 뉴스에 ’불황‘이라는 단어가 섞인 뉴스를 여럿 본다. 불황기라 취업난, 자영업 폐업은 역대최고, 대기업의 희망퇴직, 환율급등, 국제정세 불안, 그냥 쉼 청년 60만 명••• 이런 뉴스를 볼 때마다 하루가 아무리 괴롭고 힘들지라도 그때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래, 내가 지금 힘들어도 이렇게 매일 출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어디야’ 감사해야지‘ 하면서.
초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고 그게 뭐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 그리고 나.
자 그런데 생각해 보자. 서민이 왜 서민인가. 소시민이 왜 소시민인가. 몇천만 명의 어마어마한 숫자거든. 수가 어마어마하니 그들 통째로 가리켜 그렇게 말하는 거다. 그들의 삶에는 행복도 존재한다.
퇴근 후 누군가는 글을 쓴다. 누군가는 영상을 편집한다.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거나 태권도를 가거나, 유도를 하거나, 달리기를 하고, 러닝머신을 하고, 영어공부를 하고, 유튜브를 하거나, 자격증 공부를 한다. 근데 본업이 없다면? 평온한 마음으로 내 마음에 있는 얘기를 진정성 있게 글로 풀 수 있을까? 그리고 독자로부터공감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든 돈 되는 글쓰기 하다, AI 집적거리다, 구독료 올리다 독자 다 떨어져 나가고 망하겠지. 당장 돈이 없는데 자기 계발한답시고 영어공부할 수 있을까? 성공한다는 확신으로 유튜브 하는 데 내 모든 걸 쏟을 수 있을까? 아니 절대 못한다. 심적으로 불안하거든. 집도 하나 없는 무주택자가 주식으로 전재산 올인했는데 -10%, -30% 맞으면 견딜 수 있을까? 내 집 하나 없는 상황에? 똑같은 논리다. 안정적인 무언가가 아무것도 없잖아.
본업이 있기에 지금의 내 삶도 있는 것. 회사든, 자영업이든, 뭐든 본업은 생활비+리듬+사회적 신뢰를 내 삶에 가져온다. 그 이외의 모든 것들은 본인을 정체성을 나타내주는 건데 결국 이 정체성은 앞의 사회적 신뢰와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어떤 본업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현금흐름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국 내 모든 삶을 지탱해 준다는 말과 같다. 그 어떤 일에서도 본업을 등한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어쨌거나 결국 시간은 우리 편이고, 버티는 날이 길수록 그만큼 자산이든 마음의 안정 및 여유든 모든 게 자연스레 쌓여가게 되어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소시민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