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오늘을 사는 삶
곧 출산이 다가와 만삭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이 꽤나 잘 나왔다. 자, 그러면 나포함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한다.
아, 이 사진 원본을 꼭 받고 싶은데•••
스튜디오는 이런 소비자의 심리를 알고 있다. 그래서 만삭사진을 유별나게 신경 쓰며 잘 찍어주신다.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주신다. 물론 이 점은 매우 고맙지. 그리고 상담실로 소비자를 유도한다. 거기에 앉아있으면 오늘 찍은 사진들을 스냅으로 비디오까지 만들어주신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 비디오가 끝나면, 세트별 사진촬영 금액 테이블이 자연스레 나온다.
1. 만삭사진+ 돌잔치: 790,000원
2. 아이 성장앨범: 만삭사진, 100일, 돌잔치세트 : 1,390,000원
3 아이 성장앨범: 만삭사진, 50일, 100일, 돌잔치 사진 풀세트(행사 사회포함) : 2,390,000원
...
이 외에도 다른 이벤트들을 모으고 모은 촬영 금액대가 몇 개 더 있다. 그리고 여기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조건이 따라온다.
"만삭사진 원본 30만 원"
만약 이 세트가 비싸서 아무것도 구매를 안 하고 간다고 했을 때에는 스튜디오 입장에서도 공짜로 만삭사진을 찍어준 꼴이 되기 때문에 30만 원의 돈을 받는다. 근데 만삭사진 꼴랑 몇 장 찍었다고 30만 원은 너무 비싸다. 그렇게 돌잔치와 함께 80만 원 혹은 100만 원 결제를 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마음을 소비자에게 갖게 만든다. 단언컨대 이 세트가 비싸다고 만삭사진을 30만 원 주고 사서 가는 부모는 몇 없을 것이다. 왜? 내가 만삭사진 30만 원 주고 사는 건 너무 손해라고 여겨지거든. 차라리 어차피 돌사진도 찍어야 하기 때문에 묶어서 사면 조금 더 싼 가격에 사진을 찍은 꼴이 되니까 결제까지 하고 오는 거다. 그리고 스튜디오는 목돈을 손에 쥔다. 자본주의는 이렇게 굴러간다.
이 영업이 가능한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하다. 이 스튜디오는 소비자들의 '손실회피성향'을 명확하게 파악한 거다.
얼마 전에 겪었던 보험도 똑같다. 먼저 선물을 준다고 경품을 뽑아보라고 한다. 그러면 고객들은 이걸 진짜 공짜로 주는 건지 의심부터 한다. 그러면 영업사원은 무조건 공짜로 드리는 거라고 일단 뽑아보라고 한다. 1등, 2등, 3등에 따라 이미 선물도 준비해 놨다. 무엇을 뽑든 꽝은 없고 선물을 받고 가입 안 해도 되니 상담부터 받아보라 한다. 그렇게 사람을 홀린다. 결국 아무것도 잃지 않는 고객의 '손실회피성향'을 간파한 것.
예를 들어보자.
<1>
A: 100% 확률로 1,000만 원을 받는다.
B: 50% 확률로 2,000만 원을 받고, 50% 확률로 돈을 못 받는다.
<2>
A: 100% 확률로 1,000만 원을 잃는다.
B: 50% 확률로 2,000만 원을 잃고, 50% 확률로 돈을 잃지 않는다.
2번은 확정손실이 너무 두렵고 조금이라도 손실 보기 싫으니 B라는 모험을 택한다. 근데 1번 보기는 어떤가. 90%의 사람들이 A를 고른다. 왜? 일단 천만 원 수익은 확정이니, 이득을 봤기 때문에 굳이 다른 모험을 하지 않겠다는 거다. 이익보다 잃는 걸 훨씬 더 두려워한다.
주식이나 코인도 마찬가지. 실현손익이 내가 천만 원이 있다면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 해도 어떻게든 내 돈으로 만들기 위해 일단 팔고 본다. 그리고 실제로 주식이 더 오르면 그때서야 ‘또 팔지 말걸’ 하면서 후회를 거듭한다. 혹은 내가 팔면 그때서야 주식이 떨어지길 기대한다.
어떻게든 확실한 이익을 가지고 싶고, 어떻게든 손실을 보지 않는 가능성은 두려고 한다. 이처럼 손실회피심리가 본능적으로 일상에서도 반영되어 있다. 똑같이 1억을 주식투자로 번 것보다, 1억을 주식투자로 잃었을 때의 상실감이 땄을 때의 기쁨보다 몇 배는 더 크다는 거다.
조직생활을 한 번이라도 해 본사람은 알 것이다. 나한테 사실상 이득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찌어찌 견딜 수 있다. 근데 타인의 어떤 행동이 나한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가면 난리를 친다. 그리고 그 직원을 온갖 빌미를 잡아 사회적으로 거의 매장시킨다. 돈도 손실회피를 하듯, 어쩌면 돈이 가장 많아야 하는 이유 중 늘 1등으로 꼽히는 것이 남한테 손실을 주기 않기 위해,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기 위해서도 다 같은 이치다. 손실을 회피하면서 현상유지를 바라는 현상유지편향도 이런 맥락 속에서 나온 것이다. 이걸 삶에 한번 적용해 보자.
1. 직장에서 요직이 아니라 승진가능성이 낮은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A가 있다. 근데 그는 그 부서에서 몇 년째 승진이 누락됐지만 부서이동을 신청하지 않고 어떻게든 버틴다. 왜? 이때까지 여기서 일한게 아깝거든. 떠날 때 떠나더라도 보상은 받고 떠나야 되거든.
2. 여자친구와 결혼을 준비 중인 B. 벌써부터 안 맞는 부분이 보인다. 앞으로 개선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부분이 분명 있다. 단점도 명확하다. 그렇다고 장점이 단점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느냐? 그것도 아니다. 이 여자와 결혼을 한다면 실패하지 않는 삶을 사는 건 분명 하나, 이 세상에 더 본인과 잘 맞는 여자는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는 여자친구와 결혼을 결심한다. 왜? 이게 최선 같거든. 그리고 3년 넘게 만났거든. 지금 와서 또 소개를 받고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을 계획하고 어떻게 하냐. 그냥 서로 맞춰가면서 살고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스스로 자위한다.
3. 집 앞에 헬스장이 새로 생겨서 C는 오픈이벤트를 눈여겨본다. 일 년 35만 원. 한 달로 치면 3만 원 정도밖에 안 한다. 지금 꼭 가입해야만 이 금액에 누릴 수 있다고 헬스장은 연일 홍보를 한다. C는 거기에 홀랑 넘어가 일 년 치를 산다. 5개월이 지난 지금 그는 한 달에 헬스장을 두 번, 혹은 세 번밖에 가지 않았다. 직장이 바쁘고, 몸이 안 좋고, 온갖 핑계를 대면서. 근데 그는 절대 취소 못한다. 환불을 하면 더 손해를 볼 뿐만 아니라 남은 7개월은 내가 어떻게든 가본다고 절대 못 이룰 다짐을 또 한다.
이 예시는 모두 내 주변에서 내가 실제로 보고 겪은 일화다. 이처럼 손실 보는 게 두렵다. 본능이다. 어쩔 수 없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손실회피성향이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안정만 추구하게 되고 리스크를 안지니 그만큼 이득도 없다. 싫지만 익숙한 것을 계속 붙잡게 되고, 안주하게 되고, 기회가 와도 그게 기회인지도 모르고 놓쳐버린다. 손실을 피한다는 장점보다 기회와 성장요소를 제거해 버리는 리스크가 어쩌면 더 클 수도 있지 않을까.
근데 방법이 있다. 오늘을 살면 된다. 이때까지 내가 가진 것 모든 게 리셋이 되고 오늘 그냥 모두 새롭게 시작했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거다. 그러면 당연히 그에 맞는 리스크도 지고, 가진 게 없으니 대담하게 도전하게 된다. 그리고 기회를 얻고 본인은 더 발전한다.
여자친구를 3년 만났지만 오늘 처음 사귀는 날 1일이라고 생각해 보고. 어느 정도 안전하게 주식 수익실현을 했지만 오늘 처음 주식을 시작해 본다고 생각해 보고. 지금 최고점이라 해도 난 오늘 주식을 시작했으니 이 회사의 앞으로의 가능성만 봤을 때 살 수 있는가? 52주 최고가라 할지라도 그러면 무조건 사게 된다. 미래를 보는 거니까. 그만큼 리스크를 안고서라도 어떻게든 사게 된다. 잃을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수익이 날 수도 있겠지. 인생 아무도 모른다.
회사에서도 아무런 평판도, 지식도, 능력도 없고 서툰 신입사원이라고 생각해 보는 거다. 그러면 몸이 가벼워지니 부서이동도 지원해 볼 수도 있는 거고. 더 대담해지고 더 과감해진다. 어차피 잃을 게 없거든. 잃을 게 없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이유다.
안정과 과감한 도전 사이에서 모든 걸 적정하게 통제하는 것이 이토록 어렵다.
오늘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