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해야 하는 이유

7화: 맞벌이

by 홍그리

최근에 이런 질문과 얘기를 많이 듣는다.


결혼하면 맞벌이를 꼭 해야 하나요?


정답을 말하기 전에 조건을 먼저 말해보겠다.


<조건>: 자산이 많지 않고, 금수저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또 상대방도 평범한 집안이다. 단, 남자도 육아, 집안일을 같이 한다는 조건하.


만약 질문자 혹은 이런 고민을 안고 있는 모두가 저 조건에 해당한다면 맞벌이는 필수에 가깝다고 본다. (단, 100%는 이 세상에 없다) 이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결혼 후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자산이나 부를 축적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이건 확실하다. 아니 사실 못한다고 보면 된다. 돈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제한된 자원 안에서 어떻게든 행복을 찾겠다면 크게 상관없는 일일 테지만.



지인에게 소개팅을 해줄 때 주로 가장 먼저 듣는 말이 있는데


"뭐 하시는 분이야?"


임신을 했거나, 추후 2세를 계획 중인 누군가는 앞으로의 계획에 이렇게 말한다.


"아기 낳으면 퇴사하고 육아에 집중하려고"


누군가를 소개해준들, 그래서 결혼을 한들 2세를 가진 들, 변하지 않는 진리 하나는 결국 둘 중 하나가 된다는 거다. 맞벌이 혹은 외벌이. 삶의 목적과 행복을 느끼는 가치관은 사람마다 다르고, 생계를 유지하는 일에 어떤 의미부여를 하냐에 따라 삶의 궤적은 큰 변화가 있겠다. 하지만 이 둘을 놓고 보자면 균형을 따지기에는 밸런스 자체가 안 맞는 느낌이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우려면 어쨌거나 어떻게든 맞벌이를 해야 한다.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자. 맞벌이를 애초에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결혼을 하기 전에 맞벌이를 이미 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결혼적령기 나이 때에는 본인 직업을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한 거고. 외벌이로 시작해 나중에 경제적으로 벅찬 순간이 올 때,


'아, 우리도 이제 맞벌이를 해야지'


해서 할 수 있는 확률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얘기다. 나이도 그만큼 먹을 것이고, 밑에 어린애들은 계속 치고 올라올 것이고, 본인 공백기도 충분히 설명가능해야 할 것이며,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할 것이고.

반대의 경우도 물론 있다. 육아라는 것이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힘든 영역이기에 오히려 아내 쪽에서 육아를 하다 지쳐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경우의 수도 있다. 근데 이것도 육아를 끝내고 복귀를 할 수 있는 직장에 다니는 경우에만 가능한 얘기고, 애초에 직장이 없었고 육아를 하다가 육아에 지쳐 ‘에이, 일자리나 한번 구해볼까?’ 해서 재취업을 할 수 있는 확률은 극히 낮다는 거다.


외벌이로 경제적 부를 달성한다고? 경제적 부는커녕,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살기 바쁘다. 성과급이 넉넉히 나오는 대기업에 입사한들 자녀가 둘 이상 있는 가정이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보면 된다. 이 말보다 더 적합한 단어를 사실 찾기 힘들다. 한쪽의 외벌이로는 생활비나 집 대출금, 각종 보험이나 할부금 이 모든 것이 감당이 안 되기에 대출받은 걸 성과급을 받으면 한 번에 갚는 식. 무한반복. 자 잠시만. 이건 물론 대기업의 얘기다. 대기업에 다니지 않고 중소기업에 다니는 외벌이 가장이라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에 다니는 재직자 비율은 15% 정도다. 이들은 저축은 포기한다고 보면 된다. 누군가는 이것이 극단적인 예시가 아니냐고 반박할 수 있다. 중소기업 외벌이와 대기업맞벌이부부처럼 이 극단적인 예시를 하지 않고서도, 월급 액수를 떠나 한 명이 버는 것과 두 명이 버는 것은 삶의 구조나 여유, 잉여자금, 저축의 속도, 정신적 안정 이 모든 것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그냥 금액적으로 봤을 때 돈을 모으는 액수 자릿수가 달라진다.

이처럼 30대 중반부터 외벌이와 맞벌이는 자산의 증식속도가 2배, 아니 4배, 5배 불어나기 시작하는데 어쨌거나 처음부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 외벌이를 하는 것이 아니고서야 맞벌이로 시작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자녀가 태어나는 순간도 육아휴직을 쓰고 다시 복직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지는 것이 어떻게 보면 경제적인 부와 저축으로 인한 자본주의에서의 생활 최소 안정성을 확보하는 길이다.


왜냐. 만약 외벌이를 하는 가정에서 남자가 갑자기 자영업이 위태롭다고 해보자. 잘 되던 사업이 한번 휘청인다고 해보자. 그러면 집에 돈 들어올 구멍이 단 하나도 없다. 돈이 없으면 생활하는데 직접적인 문제가 발생할 테고 서로 불안할 테고, 부부싸움이 나고, 악순환이 반복된다. 직장에서 잘리거나, 권고사직을 받거나 뭐 예시는 수도 없이 많다. 밥벌이를 하는 생계라는 것이 늘 안정적일 수만은 없다. 철밥통 공무원이라도 타지로 발령받거나, 승진누락이라던가, 업무과중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 무궁무진한 변수가 자리하는데 한 명의 직업이 불투명해지는 위기가 올 때 생활을 받쳐줄 수 있는 건 맞벌이뿐이다.

이는 실제로 아기를 가지고 부모의 손이 더 많이 닿아야 하며, 가정교육에 집중을 한다거나, 집안일이나 가정에 올인하겠다는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격이다. 심지어 이는 육아휴직이라는 제도를 충분히 활용해 보완할 수 있지만 내가 다시 돈을 벌 수 있는 일터로 복귀가 가능한지, 아니면 애초에 그런 곳이 없는지의 문제는 한 집안의 경제적 상황을 결정짓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자본소득이 근로소득을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근로소득이 그나마 의미 있는 자산으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최소한 존재하는 전제조건이 맞벌이라는 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가 지갑에 최소한 여유자금이 있어 동생 술 한잔 사줄 수 있고, 기분 내서 하루정도는 맛있는 배달음식 시켜 먹을 수 있고, 일 년에 그래도 한두 번 정도는 해외여행을 갔다 올 수 있는 그런 쾌락적 이슈랑은 완전 별개라는 것. 맞벌이는 생존의 영역이다.


또 하나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다. 단순히 자산을 형성하는 것과 별개로 맞벌이를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존재의 이유’ 측면에서다. 사람은 늘 존재의 이유를 찾고 싶어 한다. 그래서 매슬로의 욕구 5단계의 가장 위 피라미드에 있는 것이 자아실현의 욕구인 것처럼, 일을 하면서 혹은 본인이 좋아하고 잘하는 어떤 걸 하면서 존재의 이유를 찾고 싶어 한다.


‘나는 왜 사는가? 그냥 태어났으니까 살지?’


가 아니라, 적어도 최소한 내가 존재함으로써 타인 그리고 이 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한다는 본인의 쓸모를 찾고 싶은 것. 건전지를 다 쓰면 버리고, 물을 다 마신 빈 플라스틱병을 휴지통에 버리듯 소모품으로 인식되지 않고 본인이 영속적으로 어떤 것에 도움이 되길 모두가 바란다는 거다. 회사에서, 일터에서, 자영업을 하면서, 혹은 공사현장에서 본인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다는 순간 본인과 타인이 동시에 느끼는 희열이 있고, 거기에 합당한 보상을 돈으로 받는다. 그게 사회생활이다. 자. 근데 문제는 뭐냐.


예를 들어보자. 중소기업에 다니는 30대 여성 A는 결혼을 했다. 그러다 얼마 안돼 임신을 했고, 퇴사하고 '전업주부'가 되겠다고 호기롭게 육아를 시작한다.

본인은 일을 더 하고 싶은데 육아휴직을 하면 본인의 자리가 온전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퇴사를 한 경우도 있겠다. 아니 이게 중소기업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명징한 퇴사이유다. 맞벌이를 하다가 자의 반 타의 반 외벌이로 전환한 케이스다. 남편은 돈을 벌어 늘 평소와 같이 가정에 보탬이 된다. 근데 여기서 아내는 알지 못할 공허와 혼란이 온다. 원래 평소에 돈을 같이 벌다가 벌지 않으니 소속감뿐만 아니라 본인이 어떤 곳에 기여하고 있고, 쓸모가 있다는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거다. 그리고 그 존재의 의미를 둘 곳을 찾는다. 현실적으로 갓난아기가 있기 때문에 재취업에는 어려움이 있다. 돈을 벌 수 있는 곳을 찾기도 마땅치 않다. 이제 그 쓸모를 육아에서 찾는다. 다른 사람과 다른 엄마가 되고 싶다는 존재의미를 육아에서 찾는다. 그리고 과몰입하기 시작한다.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고 홈스쿨링을 하고, 다른 부모와 비교하며 온갖 육아용품을 과소비한다. 본인이 육아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고 믿는다. 말 그대로 ‘극성맘’이 되는 거다. 동탄의 맘카페도 어쩌면 그렇게 생겨난 것이 아닐까. 남편 삼성 다니고 본인은 육아만 할 테니 하루 종일. 그리고 본인만의 아집으로 아기도 그에 맞게 투영시킨다. 벌어오는 돈은 그대로고, 자산을 일구기는커녕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

존재의 의미를 육아에 쏟지 않더라도, 일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일을 하지 않으면 돈을 쓸 때에도 남편에게 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본인의 의결권은 더 약해지고, 무엇을 하든 남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고 스스로 그렇게 계속 작아진다. 왜? 본인은 지금 돈을 벌고 있지 않으니까. 내가 번 돈이 아니거든.


맞벌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무조건 좋다는 식도 아니다.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겠지.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라던가, 아이를 케어해야 하기에 돈도 많이 들 것이다. 다만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건 확실하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건 그만큼 삶의 질이 올라간다는 반증이고, 미래에 예상치 못한 더 많은 걸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음을 뜻한다. 다만 확실한 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맞벌이를 하지 않는 것이 하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은 자의식과잉에 가깝다. 비교하기에 밸런스 자체가 안 맞다. 한 명의 소득이 엄청 높다는 전제를 제외하고는.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