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대하는 무적의 공식
용돈을 30만 원 받는 대학생 A가 있다. 매달 1일에 이 용돈을 받는다고 하자. 첫째 주와 둘째 주는 여유롭다. 친구와 술도 한잔 할 때도 있고, 가끔은 책도 사고, 영화도 보고, 비싼 옷은 아니더라도 옷도 한 번씩 산다.
그리고 미리 저번주(마지막주)에 땡겨썼던 신용카드 지출액을 상환한다.
근데 셋째 주부터는 조금씩 불안해진다. 모은 돈이 아예 없는 상황이라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친구와의 약속은 대부분 거절해야 한다. 학교를 갔다 오면 바로 집에 가서 냉장고를 파먹는다. 계좌에 남아있는 잔액을 일원단위도 탈탈모아 한 통장에 보관한다. 앱테크라 해서 만보기를 하던가, 복권을 긁어 혹은 광고를 시청해서 포인트를 받던가, 남은 네이버포인트는 어떻게 활용할지 깊이 고심한다. 혹여나 내가 받을 돈이 없는지, 내가 까먹고 있던 돈은 없었는지 과거의 기억을 찾아 헤맨다.
마지막주는 어떨까. 분식집에 파는 천 원짜리 어묵하나에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수업이 있는 날을 제외하면 아예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 왜? 집을 나서면 어떻게든 뭘 하든 돈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지처럼 살다가 다시 다음 달 1일이 되길 고대한다.
용돈에만 올인하는 A 말고도 같은 용돈을 받지만 비상금이 100만 원 있는 B가 있다고 하자. 이 학생은 A와 비교했을 때 삶이 다를까? 똑같다. 다만 긴급한 순간이나 본인이 돈이 필요한 순간에 융통할 수 있는 백만 원이라는 자금이 있다는 것? 그거뿐이다. 근데 B는 늘 세 자리였던 비상금이 두 자릿수, 그러니까 90만 원대로 떨어지기만 하면 불안하다. 수입은 용돈 받는 것 말고는 없는데 도대체 어디서 또 이 비상금을 세 자릿수로 만들어야 할지 고심이다. 학업으로 멈췄던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잡코리아 사이트를 들락거리기 시작한다.
직업을 직장인으로 바꾼 들, 경제적으로 아주 풍족한 일부를 제외하고 나를 비롯한 내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다 비슷하게 산다. 아껴가면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건 최소한으로 하고. 사고 싶은 건 많은데 돈은 없다고 맹목적으로 믿기엔 너무 현실이 슬프니까 조금은 더 간편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만 집중하자는 마인드. 왜? 개개인마다 돈이 부족하다 판단되면 이렇게 심리적으로 취약함을 드러내거든. 돈이 없어 불안하니까 마지막주에는 혹여나 돈을 쓸까 봐 집에만 있게 되는 것이고, 돈이 없어 불안하니까 친구의 약속을 어떻게 거절할지 고심하는 것이고, 돈이 없어 불안하니까 쇼핑사이트나, 남아있는 포인트를 긁어모아 한 통장에 얼마가 남았는지 시시때때로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웃픈 현실을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는 방법을 연구해 본다. 답은 ‘애초에 돈 나갈 구멍자체를 줄이는 것’. 그냥 단순하게 모든 걸 최소화하는 거다. 관계도, 소유도, 욕구도, 라이프스타일도 모두.
미니멀리즘은 그렇게 시작된다. 삶 자체를 고비용의 삶에서 저비용의 삶으로 바꾸는 것. 처음에 다 그렇게 시작한다. 많은 걸 가져봤자 산만하고, 어디에 놔뒀는지 기억도 잘 못하며, 쓸 일은 많이 없고 방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공간만 차지하고. 그렇게만 믿었던 것이 그게 실제였고 이 삶이 ‘원래부터’ 정답이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다르게 말하면 분수에서 분모를 줄이는 거다. 분자가 수입이라 했을 때 분모는 욕구와 욕망이다. 분모를 줄이면 줄일수록, 즉 욕구를 줄일수록 내 수입은 그대로여도 총자산은 늘어난다. 그런 분모가 적은 시간을 쌓으면 점차 대학생 A, B, 직장인 앞서 예시를 든 모두의 삶은 조금씩 바뀌어간다. 당장은 절대 바뀌지 않을지라도, 다음날에도 똑같은 용돈과 월급으로 연명할지라도 아주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간다.
그 시간이 뭐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투자할 수 있는 내 자산이 ‘잘’ 놀도록 할 수 있는 시간. 바로 미국 종합주가지수다. 나스닥 100이든, S&P500이든, IVV든 인덱스투자면 뭐든 상관없다. 기술주냐/산업전체냐/지수상승분이냐 변동성차이만 조금 존재할 뿐이다. 과거에 주식이라는 것이 어떤 투기의 요소로 받아들여지고, 누군가에게 순간의 자산증식을 꾀하는 도박성의 개념이 있었다 하면, 현재 주식시장은 생존의 영역이 더 크게 자리한다. 안정성을 추구하는 누군가에게 예적금은 최고의 상품이겠지만, 결국 은행 돈 벌어다 주는 꼴이고 문제는 물가상승분은 100% 헷지 하지 못한다. 일반인이 진정으로 장기적인 시간을 투자해 투자대비 확실한 무언가를 보장하는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현대사회에서는 가히 종합주가지수에 투자하는 것이 가성비 최고다. 조금씩 그리고 꾸준하게.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거기다 미니멀한 삶까지 합쳐진다면? 그 삶은 그야말로 자본주의에서 가장 쉽고 완벽한 인생이 된다.
종합지수투자는 연평균 8~10% 수익률을 잡고 있지만 폭락할 때를 대비해 굉장히 보수적으로 5%만 잡아보겠다. ‘장기, 분산, 적립’ 개념으로 접근하면 폭락도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보자.
1. 매달 30만 원을 30년간 적립투자: 2억 5천만 원
(원금 1억 8백만)
2. 매달 50만 원을 30년간 적립투자: 4억 1600만 원
(원금 1억 8천만)
3. 매달 100만 원을 30년간 적립투자: 8억 3천만 원
(원금 3억 6천만)
자산형성은 결국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적은 돈으로 살아가며, 더 많은 돈을 꾸준히 인덱스투자에 넣는 것.
그리고 나머지의 불필요한 선택들을 애초에 제거해 그 시간에 내 자기 계발을 한다. 매일 주식창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된다. 전전긍긍하며 본인인생과 아무 상관없는 기업분석에 매진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같이 전쟁이 나 주가가 폭락해 우울해하거나, 호황이라 혼자만 돈을 못 벌어 포모현상에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
그 시간에 아무런 타격 없이 평소처럼 글을 쓰거나, 영상을 만들거나, 공부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 왜? 어차피 그만한 수익률을 보장해 줄 거거든. 이만한 가성비가 없다. 가장 간단하고 쉬운 유일한 방법 한 가지다. 특히 미니멀리즘과 지수투자가 병행되면,
나는 결국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를 알게 된다. 가치관적립은 덤이다. 분에 넘치는 욕심, 허황된 꿈을 잠시 내려놓고 어떤 것에 가치를 두면서 살아야 할지가 보인다. 그렇게 살면 결국 어떻게 되냐고? 이 두 가지가 결합됐을 때 인생의 가능성은 무한대로 확장된다.
자. 생각해 보자.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정년보장은 옛날얘기. 아니,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이나 정년이 보장된 회사를 다니고 있다 치자. 그게 곧 발전 없는 안 주고, 사람을 더 궁지로 내모는 격이다. 퇴직 이후의 삶은 안 봐도 뻔하다. 그 어떤 완벽한 안정으로부터 우리는 100% 자유롭지 못하다. 근데 그 시간에 내가 싫어하는 일 말고 내 시간을 하루라도 빨리 갖는다면?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겠지.
다시 한번, 미니멀리즘 X지수투자는 최강의 유일한 라이프스타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