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니 너무 놀란 일이 벌어졌다. 하루 조회수가 10만이다. 이 숫자는 내가 5개월 동안 브런치에 올린 모든 조회수보다도 많다. 이제 3일동안 20만뷰가 넘어 이젠 30만이 넘어간다.구독자 급등작가에도 이름이 나와있다. 기분이 참 좋으면서도 도저히 이해가 안 가 인터넷에 찾아보았다.
아, 다음 메인이랑 크롬에 떠서 그랬구나. 연락을 한동안 하지 않았던 지인도 갑자기 연락 와서 이게 나인 것 같다며 잘 지내냐고 인사를 한다.
참 고마운 브런치다. 잊힌 누군가와 연락을 하게 해 주고 내 글을 메인에 올려주기까지 하니 말이다. 잘 쓴 글은 아닐지언정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 주고 관심 있어 하는 주제는 쓴 것이 틀림없으니 어찌 됐든 잘 된 일이다.
매일 글 쓴다는 게 사실 쉽지 않다. 어쩌면 나태해질 수 있는 나에게 브런치가 주는 작은 선물이라고 여길 것이다.
초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16강 진출에서도 큰 화제가 됐었던 중꺾마를 기억하는가? '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하지만 이는 초심이랑은 다소 다른 개념이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가치관 자체를 계속 가져가는 것에 반해, 초심은 내가 어떤 것을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마음을 말한다.
축구선수 델레 알리를 기억할 것이다. 델레 알리는 등장과 동시에 최고의 주가를 올렸다. 매 경기 골을 넣으며 어린 나이에 믿을 수 없는 실력을 보여주며 팬들, 팀, 감독에게 신의를 받았다. 하지만 자신의 실력을 너무 믿은 나머지 연습기간에 불참하고, 매 주말마다 클럽에 가 여자들과 술을 마시고 방탕한 나날을 보냈다. 당연 살이 찔 수밖에 없고 연습을 안 하니 실력은 점점 줄어갔다.
지금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이다. time flies, 시간은 너무 쏜살같이 지나간다는 말과 함께 무리뉴는 가슴에 박히는 말을 한다.
'시간이 흘렀을 때 네가 후회할 것 같다'
이 말은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감독이 선수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이다. 성장하도록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우리는 이처럼 본인에게 더 많은 걸 지금 요구하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는 무리뉴의 말을 돌아볼 때 의미하는 바는 말은 무엇일까?
바로 초심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은 늘 새로운 것을 좇고 더 나은 물질적, 정신적인 풍요를 원한다. 그것을 가졌을 시 그거보다 더 큰 것을 늘 원하고 얼마 안 가 거기에 익숙해진다. 내가 가진 것에 더 익숙해질수록 처음 도전할 때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나태해지며, 최소한의 limit에만 시간투자를 한다. 그렇게 점점 성과는 내려간다.
이 일이 있고 1년 뒤 델리 알리는 2부로 추락을 거듭하고 현재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뛰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지금은 부상까지 당해 선수생활을 다시 (올라가기에는) 한계가 있아 보인다.
모든 것이 초심에서 망가졌기 때문이다. 아마 델리 알리는 저 당시 무리뉴가 하는 말을 가슴 깊이 새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만 새겼다 한들, 분명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회사도 그렇다. 제발 뽑아만 달라! 몸을 갈아 넣겠다!라고 맹세한 면접에서 회사생활에 3년, 5년,6년,10년이 지나면 어느새 그 다짐은 온데간데없고 무뎌진다. 하루하루 쳐내는 데 지쳐 퇴근하면 침대로 쓰러지기 바쁘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처음 마음 가졌던 때를 떠올려야 한다. 그것은 당시 옷차림이 될 수도 있고, 장소나 함께했던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연애도 똑같다. 오래 만난 장수커플들의 재밌는 썰이 유튜브에많다. 오늘 뭐 할지를 서로 고민하고,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넷플릭스만 보고, 연애 초기의 설렘은 아예 사라진 지 오래다. 물론 첫 만남의 연애가 주는 설렘은 지금의 편안함으로 대체되겠지만 그때 가졌던 이 사람과의 초심을 떠올리는 것은 둘 사이의 건강한 관계를 회복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초심을 가지고 글을 쓰게 된 걸까. 지난날들을 돌이켜 본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가 있었다. 인생에서 모든 것이 내가 하고자 하는 대로 풀리지 않았고,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 것에서도 여기저기서 잡음이 들렸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 러닝머신으로 아무리 달리기를 하고 운동을 해도 그때뿐이었다. 상쾌한 기분은 들었지만 근본적인 뿌리가 문제가 있었기에 다시 원상태도 되돌아오기 일쑤였다. 육체적인 것이 아닌 내 내면적인 스트레스를 밖으로 끄집어내야 했다.
사실 인간의 삶은 다양한데 그중에 실제로 사람들이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일들은 거기서 거기다. 좀 더 나아지고자 하는 욕망, 안정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은 모두 동일하기에. 나 스스로가 생각이 정리되어야 했고, 스스로를 어느 방향으로 가자고 이끌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글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것도 아니다. 문득 word에 내가 힘든 일, 잘 풀리지 않는 일, 스트레스를 주는 원초적인 원인들을 문장도 아닌 단어로 써 내려갔다. 적고 거기에 대한 내 경험과 생각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러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글을 쓰면서 점점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계속 머릿속에 생각이 났고 어느덧 돌아보니 a4용지 두장이나 쓰여있었다. 내가 오늘 느낀 속상했던 감정들, 스트레스의 원인들을 적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후련해지고 금방 해결될 것만 같은 용기가 생겼다. 그때부터 꾸준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초심은 단순히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이었다. 글을 통해 경제적 자유를 이룬다거나, 이름을 떨친다거나 이런 마음조차 없다. 그냥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시작한 일인 것이다. 어릴 때 글쓰기 학원을 꾸준히 다닌 적은 있지만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 본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냥 연예인처럼 우리에게 동떨어진 이야기 말고, 현실적인 상황 앞에서 현실적인 생각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얘기들을 덤덤히 써내려 간 것뿐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늘 쓰셨던 강원국 아저씨가 이런 말을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잘 쓰고 못 쓰고를 나누는 것은 없다고. 그저 쓴 사람과 안 쓴 사람이 나뉠 뿐이라고. 그렇다. 글을 쓰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생각이 나고 편안하게 써 내려가 누군가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면 그것이 잘 쓴 글이다. 수려한 단어나 어려운 글들을 쓴다 해서 독자들이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본업이 있기에 글을 쓰는 것은 축복과 같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부담 없이 매사에 접근하면 오히려 기대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
글 쓰는 것은 참 재미있다. 매일 아침 출근부터 퇴근까지 일을 하고 사는 이 고된 일상에 만약 글쓰기가 재미없었더라면 굳이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 한 번도 글쓰기를 오늘 끝내지 못한숙제처럼 여긴 적이 없다. 그냥 재밌어서 쓰는 것이다. 쓰다 보면 실제로 실력도 더 는다.
내가 글을 쓰는 초심은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였다면, 이젠 이 초심을 살려 내 글로 누군가에게 행복을 전하고 싶다. 내가 겪었던 힘들었던 경험들이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되고, 다시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그런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인생 매사에 처음 가졌던 초심을 잃지 않고, 아니 잃어도 된다. 다시 가져오면 되는 것이다. 늘 내 처음의 모습을 잃지 않는 삶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매 순간순간을 임하다 보면 오늘 같은 작은 선물이 또 올 것이고 거기에 힘입어 다시 앞으로 나아가겠지.
무리뉴의 말처럼, 시간이 지났을 때 지금을 잘 살았다고, 행복했다고 여기는 순간을 그리며 오늘 하루도 힘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