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
'공간'이 주는 행복에 대한 단상
공간이 주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이 주는 사전적 정의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새로 이사 온 집에 하나 둘 가전과 가구가 들어오면서 여태껏 원룸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공간이 주는 행복을 요즘 느끼고 있다.
우선 예전과 비교했을 때 이 공간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물리적으로 넓어졌으며 내 생활을 철저히 분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 사는 구색을 갖추어 나가고 있다. 원효의 해골물처럼 기분 탓일지라도 아침을 상쾌하게 시작하고 저녁에 수면의 질이 몇 배나 더 높아졌다.
새로운 공간의 변화는 나에게 그럼 어떤 것을 가져다줬을까?
1. 스스로의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
새로운 공간에 있다는 것은 앞서 얘기한 공간을 넘어 새로운 기분이나 생각들을 계속 만들어 내어 내 삶의 변화를 모색하게 한다. 익숙했던 원룸 공간을 떠나 이곳에 오면 모든 것이 새롭다. 주말 아침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 부지런히 분리수거를 하고 계시는 경비아저씨, 산속에서 울리는 새의 지저귐 등 새로운 환경은 내 정신을 살아있게 만들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
웹툰작가 기안 84는 왜 창작을 위해 늘 새로운 곳을 다니고 갑자기 운동장을 뛰어다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하는 것일까?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함이다.
기안 84는 그림을 그린다면 나는 이 새로운 곳에서 글을 쓰니 이전보다 글 쓰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어졌다. 마치 한 번도 글을 써보지 않고 이번에 처음 쓰는 그런 생소한 느낌을 준다.
왜 학생들과 취업준비생들은 집에서 공부를 하다 말고 카페로 나가 공부를 하는 것일까? 새로운 공간에서 나 스스로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리프레쉬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낯선 곳을 좋아하고, 그곳에 머무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이사를 한 것도 이렇게 많은 생각이 드는데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은 어떨까? 이래서 매년 여행의 수요는 늘고 여행사들이 번창하는 이유다.
나는 32살을 살며 본의 아니게 28개국을 여행했다. 참 운이 좋았다. 이에 늘 새로운 것을 좇았고, 새로운 것에 뇌가 자극을 받아야만 행복했고 내가 재미있게 잘 살고 있다고 느꼈다. 실제로 외국에 있었던 3년 가까운 시간들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지만 보람차고 나를 성장시켜 준 시간들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익숙한 것이 지속되면 빠르게 질려하는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직도 여러 번 했는지 모른다.
2. 사고하는 패턴이 달라진다
나만의 새로운 공간은 생각하는 것이 통째로 달라진다. 나 스스로를 더 창의적이고 사고를 풍요롭게 만든다. 새로운 것을 보는 그 하나의 사물에서 생각이 확장되어 새로운 생각들이 빗발치듯 떠오른다.
오늘도 그랬다. 바로 밑에 시장이 있다. 시장에 한번 내려가보니 주말이라 사람들이 북적북적 인산인해였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관찰하고, 지나가는 말들도 들으며 '나였으면 이랬을 텐데' '저기는 음식이 되게 싸다' 등 정말 그냥 지나가는 생각 속에서도 평소보다 몇백 가지는 더 생각하게 된다. 또 시장은 간판이 얼마나 많은가. 녹슨 간판을 지나가면 '스치기만 해도 파상풍이 걸릴 것 같다'라는 단출한 생각부터 '100년 전통 순댓국집은 어떤 재료와 어이서 가져어는 순대이기에 사람들에게 오래 사랑 맡나을 집중시키나' 등등의 호기심과 창의성을 들게 만든다. 매일 익숙한 집에만 있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생각들이다. 어쩌면 간접 경험인 책보다도 더 값진 경험들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눈에 보이는 것만 믿기 때문이다.
3. 사람사이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다. 강남에서 철저히 혼자였던 나날들은 삶을 너무 냉혹하고 이기적이고, 욕망 가득한 곳으로만 비쳤다. 늘 무언가 성취해야 하고 앞만 보고 달려 나가야 할 것 같은 삶이었다. 그래서 욕망과 안정사이의 균형을 내가 바랬는지도 모른다. 강남과 같이 인천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송도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너무 삭막하다. 빌딩숲에 쌓여 있는 사람들은 답답해 보이고 모두가 회색으로 보인다. 각자의 개성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 관악구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사람 간의 정을 많이 느낀다. 하나를 사도 하나를 더 주시고, 출장 때문에 집에 며칠 안 들어가면 경비아저씨가 전화가 오신다. 각자 바쁘고 정신없는 삶 속에서도 사람들 간의 최소한의 정은 남아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편안하고 따뜻하다. 이곳을 많이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이런 새로운 공간은 외로움을 덜게 해 주고 심리적으로 큰 안정을 준다. 이처럼 사람들과 부대끼는 삶은 여러 사람을 만나며 삶의 다양성을 느끼게 하고 포용을 배우게 한다.
4. 자연이 둘러싸고 있다
인간은 모두 자연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에덴동산을 봐도 알 수 있고, 박혁거세를 봐도 알 수 있다. 오죽했으면 사람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역사가 있을 정도다. 동물, 사람, 자연은 모두 하나다. 곰이 인간으로 변하는 신화는 다소 인간중심적인 신화일 수 있지만 모든 이 이야기들의 근원은 자연에서 나온 것이다.
마침 아파트 뒤에 산이 있어 배산임수가 따로 없다. 주말마다 등산을 하며 느낀 것은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은 자유로움을 주어 상쾌한 기분을 들게 한다. 인간이 자유를 갈망하는 가장 큰 이유다. 자유가 주는 행복은 인간의 어쩌면 가장 큰 행복이고 사람이 돈을 버는 이유 자체도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함이다. 죄를 지은 사람을 교도소에 감금하는 이유도 인간의 가장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본능 '자유'를 먼저 빼앗기 위함이다.
이런 이유로 새로운 공간이 주는 행복은 실로 엄청나다.
하지만 늘 떠돌이처럼 움직이며 공간을 바꿔갔던 과거 20대와 달리, 지금 나는 나만의 정착된 공간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 공간이 주는 변화라는 의미보다 안정과 편안함이 더 나를 움직이게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하는 일의 생산성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내가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공간이 따로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장담컨대 일의 생산성이 지금보다 두 배이상 증가할 것이다. 주변이 전부 책으로 둘러싸여 있고, 책상 앞에 컴퓨터와 공책, 종이가 있다면 오로지 이곳에 집중할 수 있고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본인만의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 이유다. 나만의 개성을 가진 글을 쓰는 것이 내가 가장 원하는 올해 목푠데, 내 공간에서 내가 꾸밈으로써 독창적인 개성 있는 아이디어가 샘솟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힙합을 보자. 힙합의 본토 미국에 가면 특히 알 수 있는 것이 힙합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모자가 달린 큰 후드티를 입고 모자를 쓴 채 고개를 대체로 숙이고 걷는다. 헤드셋은 필수다. 후드티를 입지 않았다면 모자를 쓰거나 선글라스를 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본인을 가리고, 주변환경과 나를 모자나, 선글라스를 통해 차단하면서 나만의 독창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옷차림에서도 오직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하는 래퍼들의 마음은 나의 독창적인 개성을 잃지 않기 위함이다. 정확히 말하면 옛날에 힙함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빈민층이었다. 지붕이 있는 공간에서 살지 못하니, 후드티를 이용해서라도 나만의 공간을 만들려는 욕망인 것이다. 세상과 다른 나만의 독창성, 후드티와 모자 안 나만의 세계에서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메시지, 풍자, 펀치라인, 명곡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토록 나의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은 나를 한걸음 더 발전시키는 행위다. 하나의 정제된 공간이 내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또 다른 장점은 삶의 피로를 풀어준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공간은 하루종일 밖에 있었던 내 자신을 쉬게 해주는 공간이어야 한다. 떠돌이처럼 돌아다녔던 20대에는 늘 새로운 것이 재미있었고, 새로운 사람들과 카우치에서 함께 밤새 술을 마시며 자기도 했고, 공간의 편안함보다는 낯선 것에 더 집착하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나만의 공간이 있어야 온전히 쉴 수 있고, 그렇기에 당연히 혼자가 편할 때가 많다. 변하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 진짜 내면적인 쉼을 선사한다.
마지막으로 나만의 익숙한 공간은 시간과 돈을 절약시켜 준다. 자본주의는 밖에 나가면 무조건 돈이다. 밖에서 음식을 먹으려 해도, 잠을 잘려해도, 정말 숨 쉬는 것 하나 제외하고 모든 것이 돈이다. 나만의 공간에서 온전히 나만의 휴식을 취한다는 것은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시간 또한 아낄 수 있다. 단적으로 미국에서 호스텔을 전전하며 이동했던 시간들, 숙소를 알아보는 시간들, 이사하는 시간들 나만의 공간이 있다면 그 모든 시간들을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새로운 곳에 갔을 때의 행복, 익숙한 곳에 있을 때의 행복. 익숙한 공간을 쫒든, 늘 새로운 공간을 좇든 사람마다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기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명확한 정의는 행복을 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행복해지기 위해 내 공간을 더 소중히 여기고 더 갈망하고, 더 편안하게 만들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너무 행복하려고 애쓰지는 않아도 된다. 나처럼 행복을 정하는 기준과 취향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어떤 것, 어떤 곳에서 무엇을 할 때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지 스스로 발견하는 일에는 항상 시간투자를 하고 애써야 한다.
나의 취향과 행복을 아는 것이 내가 올바르게 인생 살아갈 수 있는 방법임을 모두가 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