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예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요즘 전에 없던 버릇이 생겼다. 자꾸 거울을 볼 때 머리를 올려보는 것이다. M자 흔히 말하는 탈모인지, 아닌지를 보는 것이다. 유전도 없거니와 머리숱이 많은 편이라 여태껏 탈모에 대한 걱정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최근 이런 버릇이 생긴 것은 단연 스트레스다. 정확히 말하면 스트레스라기보다 반복되는 무미건조한 일상에 지친 탓이다.
나랑 가장 친한 친구가 현재 탈모병원에서 실장으로 근무 중이다. 친구가 얘기하길 탈모에 가장 영향을 끼치는 것은 1순위가 유전이고, 우리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꾸준한 약복용과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 2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유년시절을 떠올려본다. 나는 어떤 것에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해 했을까? 무언가 나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에 타인보다 두 배, 세배의 기쁨을 느꼈다. 그 아무리 작고 하찮은 목표라도 상관없다. 오히려 거창한 목표는 무겁기 때문에 진도도 안 나가고 동기부여에 걸림돌이 된다. 작은 거라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을 때 주변인들의 칭찬이 나를 가장 행복하게 했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칭찬을 한다는 것은 곧 칭찬을 받는 상대방이 가진 능력이나 성품, 어떤 행위에 감탄하여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칭찬은 실제로 더 많은 것을 가능케 한다.
아주 어렸을 때엔 우리 집을 그리는 데 창의적으로 그려 칭찬을 받았고, 울산대공원에서 한 백일장 글쓰기대회에서 예상치 못한 금상을 받아 칭찬을 받았다. 어떤 무언가 잘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칭찬을 받고 안 받고의 차이는 이후 내가 더 나은 것을 만들어 내냐 못 내냐를 결판 짓는 치명적인 요소로 자리한다. 나는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칭찬받지 못한 날들은 의욕이 없었고 금세 흥미를 잃었다. 잘한다고 생각한 스스로에게 의구심을 품었다. 이처럼 칭찬은 내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동기부여를 준다.
최근에는 집 전세 계약, 결혼준비를 주변의 큰 도움 없이도 스스로 잘 해낸점,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해 시험과 면접을 거쳐 당당히 재취업한 것에 큰 축하와 칭찬을 받았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주변사람의 인정과 칭찬이 없었다면 나 스스로는 이를 '누구나 하는 것', '당연히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겨버리지 않았을까? 칭찬은 실제로 내가 놓치고 있던 나의 장점, 자존감을 꺼내어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사람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나만 왜 운이 없지’ 라며 더 안 좋은 생각이 든다. 과거의 안 좋았던 일들이 자꾸 더 생각이 나고 사람이 주변의 부정적인 것들로 금세 매몰된다. 하지만 순간순간 내가 가고자 했던 길 사이에서 칭찬을 받은 적이 이렇게나 많다. 행복하고 좋았던 기억보다 우울하고 힘들었던 일의 경도가 다르고 충격의 정도가 달라 조금 더 세게 내 뇌에 각인되어 있어 전자를 어쩌면 잊고 살았다.
우리는 경쟁에 매몰된 사회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 칭찬과 격려보단 질책, 질투, 남을 깎아내려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마음뿐이다. 내 사람이 아니고서야 칭찬에 인색할 수밖에 없다. 칭찬대신 현대인들에게는 스트레스가 자리한다. 탈모 걱정이 하나 없던 내가 머리를 올리며 매일 거울을 보는 것도 어쩌면 이 때문이다.
지금껏 회사도, 가족도 아무도 내 삶에 책임을 져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머릿 속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내 삶을 지키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살았다. 돈도 많이 벌고 싶고, 여자친구한테 더 잘하고 싶고, 내 사람들을 다 챙기고 싶고, 일도 잘하고 싶고. 그야말로 내 능력대비 모든 것이 의욕과다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 인생에서 칭찬을 더 받기 위해 노력하면서 스트레스를 없앨 수는 없었던 걸까? 맞다, 없었다. 이 세상에 스트레스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 인생도 스트레스가 없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누군가는 여행을 좋아하는데도 여행가서 예정에 없던 급작스러운 일로 여행 내내 스트레스를 달고 살 수도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토록 원하는 회사에서 승진을 했는데도 더 많은 책임감과 높은 업무강도로 스트레스가 과거보다 늘어났을 수도 있다. 이 모든 스트레스의 원인은 우리 모두 미래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족하지 못했던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이 두 가지가 스트레스로 귀결된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그저 지금 이 시기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인생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때는 빨리 입시가 끝나길 바랐고, 대학생때에는 지방에서의 우물안 개구리 대학생활이 빨리 끝나길 바랐고, 군대에서는 빨리 전역하기만을 바랐고, 멕시코에서는 산전수전 다 겪고 다 그만두고 빨리 한국에 가고 싶었고, 미국에서도 얼른 이 인턴을 끝내고 한국으로 가서 친구들 보면서 취업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처한 환경에 대해 좀 더 돌아보지 않고 불만족을 안고 미완성인 상태로 늘 다음 스텝만을 고대했다. 다음엔 다르겠지. 다음엔 더 특별하겠지. 돌이켜보면 잘하고 못하고의 결과나 평가보다 내가 다음 스텝으로 밟아나가는 그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삶인데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며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가 어찌 됐든 지금까지 계속 나는 스스로의 길을 찾았고, 그 길을 잘 헤쳐왔지 않은가? 100% 내 노력으로 순전히 이룬 결실들이다. 근데 왜 현실에 만족 못하고 늘 불평불만인 걸까?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아니, 누구나 하지 못하는 경험을 하고, 멕시코에도 살고, 미국에서도 살고, 정말 좋은 곳에 취업해서 일도 하고, 책도 출간하고 누가 봐도 너무 대단한데 왜 불안해하냐고. 왜 나는 늘 불안해하며 더 큰 것을 쫒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과정에 만족하고 순응하고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에게 많이 너그러워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 너그러움의 시작은 단연 칭찬이다. 내가 부족했던 것에만 늘 자기 객관화를 하고 날을 세우고 엄격하게 나 스스로를 통제했다. 왜 잘한 점, 대단한 점은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엄격하고 인색하게 굴었단 말인가. 왜 그 어떤 보상도 나 스스로에게 안 주고 있었나.
여자친구가 나를 챙기기 전에, 가족이 나를 보살피기 전에 나 스스로에게 칭찬과 격려, 아낌없는 선물이 필요하다. 이것이 어쩌면 진짜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고, 또 다른 행복한 시작을 할 수 있는 건강한 방법이다.
사필귀정에 필수적인 당근과 채찍. 정작 나에게는 채찍만 늘 때리고 있었다. 그러니 과정도 무시한 채 늘 앞에 보이는 결과만을 쫓을 수밖에. 뒤에서 또 다른 내가 채찍을 들고 쫓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호캉스를 혼자 1박 하는 것도 좋고, 비싸지만 정말 평소에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으러 가도 좋다. 하루종일 아무 걱정 없이 읽고 싶었던 책을 읽으며 누워있는 것도 좋다. 사고 싶었던 옷이나 신발을 사도 좋다. 새로운 도약 앞에서 나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고 칭찬을 아끼지 말자. 칭찬은 탈모도 고치는 최대 보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