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일기 002
25.02.09(일) 하운트 카페
두 번째, 네 번째 주 토요일 저녁 10시에는 미국에 계시는 선생님과 1시간 정도 기독교 변증법 수업을 가진다.
오늘따라 9시 50분 전후로 올라오는 링크가 보이지 않았다. 본가로 향하는 지하철을 타며 시간의 착오가 있는가 해서 선생님께 메시지를 남겼다. 지하철로만 1시간 20분의 여정이다. 환승한 지 얼마 안 지나 링크 알림이 떴다. 화면 속 선생님은 시차 계산에 착오가 있으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늦은 시간 수업을 진행하는 대신 나의 근황을 물어보셨다.
최근 우리 교회와 목사님에 대해 깨닫고 기도하는 바를 나누었다. 짧게 끝날 줄 알았던 나의 나눔은 집 앞까지 이어졌다. 말하기 부끄러운 우리 교회의 상황과 우리 목사님에 대한 전체적인 나의 이해와 생각이 터져 나왔다. 나누고 보니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을 두심으로 하나님은 내게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길 원하셨다는 사실이다. 이 방법이 아니고서야 내가, 그리고 우리 목사님이 깨닫지 못하기에 이를 남겨두신 것이다. 고난은 하나님께 나아가게 만든다.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다. 나는 어제 드디어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깨닫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이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참으로 잘 된 일이라고 격려해 주셨다.
이어서 선생님은 나와 여자친구와의 관계는 어떠한지 물어보았다. 나는 우리의 대화에 벽이 느껴진다고 말씀드렸다. 이에 선생님은 애정 어린 조언을 시작하셨다. 자신의 학창 시절 친한 친구였던 A 씨는 비신자였다. 옆집에 살았던 그는 참으로 멋진 사람이었다고 묘사하셨다. 50년 이후 우연히 다시 만난 그는 독실한 신자와 결혼생활을 이어오고 있었다. A 씨는 여전히 멋진 사람이었고 또한 여전히 비신자였다. 우연의 만남 이후 선생님과 이 부부와의 교류는 이후 계속 지속되었던 것 같다. A 씨의 아내와 서너 달을 주기로 오가는 메일에는 그녀의 하소연이 있다고 한다. 그녀가 삶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녀에게 가장 가치 있는 사람과 누리지 못한다는 것. 독실한 아내가 감당하는 이러한 비극은 드문 일이 아니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나에게 그 역할을 반대로 경험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진심으로 말씀하셨다. 여자친구는 신자다. 하지만 우리 각자의 신앙의 분량이 다르다. 나에게 가장 기본인 것이 그녀에게는 선택사항이다. 그런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좌절을 경험한다. 쉽게 고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와 진지한 미래를 고민하는 이 시점에 기도가 너무 절실하다. 이때, 선생님의 조언은 나의 기도 제목에 구체적인 사항을 더해주었다.
새벽기도를 참석하기 위해 일부러 넘어온 본가. 이 것이 내 믿음이요 순종이다. 나는 변하고 있다.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 건지, 걱정 때문인지, 아님 알 수 없는 기대 때문인지, 잠이 오지 않는다. 선생님과 나눈 내용을 곱씹어본다.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해 본다. 그리고 말씀의 약속들에 대해서 떠올려본다. 서서히 감은 눈 너머의 마음에도 평안이 온다.
수업 시간의 착오가 있었지만 덕분에 깊은 나눔의 시간이 되었다. 나눔 가운데 깨달음이 있었음에 감사했다. 나의 배우자 선택에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는 선배가 있어서 감사했다.
나의 유일한 소망이 되어주심에 감사합니다. 드디어, 조금은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더욱 생생하게 느끼길 원합니다. 그래서 나도 예수님 따라 명령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고 싶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나라는 존재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 더욱 깨닫게 해 주세요. 그리하여 이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예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경험하게 해 주세요. 내가 빚진 자임을 깨달아 너무나 당연하게 남을 사랑하게 해 주세요. 그것이 내게 기쁨이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