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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숙자 Jan 29. 2017

임상수식 블랙코미디의 진수 '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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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 (The Housemaid, 2010)

임상수 감독 영화의 특징은 부조리한 사회의 단면을 영화 속에 녹여낸다는 것인데 '하녀'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단면을 '상징적인' 요소들을 이용하여 비판하는 블랙코미디라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하녀를 감상할 때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첫 번째는 전도연의 외적 변화, 두 번째는 소품의 상징성이다. 



  극 중에서 하녀로 나오는 전도연의 외적 변화는 곧, 내적 변화의 흐름과 일치한다. 처음에는 화장기 하나 없는 수수함.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과 천진난만함을 뽐내는 그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짙어지는 화장, 팜므파탈의 패왕색을 휘두른 표정으로 변모해간다. 이는, 상류층의 삶에 '잠식'되어가는 전도연의 심경변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하녀에서 상류층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두드러진 요소는 두 가지인데 바로 '피아노'와 '와인'이다. 피아노와 와인 모두 집주인인 이정재 가문의 허례 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나 와인이라는 요소는 각 인물들마다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는 걸 느낄 수 있는데, 우선, 이정재나 서우에게 와인은 특권층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상징하며, 아들의 검사 임용 합격으로 없던 자에서 있는 자로의 계층이동을 꿈꾸는 윤여정에게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상류층에 대한 이상향 내지, 목표가 된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와인을 마시지 않는 인물이 바로 하녀인 전도연인데 몰래라도 스스로 와인을 계속 따라먹었던 윤여정보다도 더 암울한 계층. 즉, 신분상승에 대한 어떠한 희망도 없는 '아랫것들'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중간층을 대변하는 하녀 윤여정에 대한 얘기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자신 세대의 신분상승은 불가능해 모진 세월을 버티면서도 자식들의 출세에 의탁하여 신분상승의 꿈을 버리지 않은 세대. '더럽고 치사하고 메스꺼워도' 윗사람들에게 무조건 복종하며 신분상승을 준비하는 중간 계층. 특히 이정재 몰래 수시로 와인을 따라먹는 모습에서는 '나도 언젠간 꼭 저렇게 살아야지'라는 의미가 다분히 보인다. 마지막에는 이정재 일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속시원히 하면서 평소 하고 있던 스카프를 벗어 재끼고 비로소 '하녀'라는 직책에서 자유로워진다. 같은 하녀인 전도연의 아픔에 눈물 흘리고, 다독여주는 점에서는 다르지만, 전도연의 죽음 앞에서는 방관하는 걸로 봐서 중간층인 그녀 역시 타인의 고통을 끌어안아주고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걸 보여준다. '왜? 나 살기 바쁘니까.'


  이렇듯 영화 곳곳에 설치해놓은 여러 장치들은 한국사회에서 수많은 '하녀'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어 내고 있으며, 구시대의 잔여물인 하녀를 소재로 한 이유 역시 정체되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비선실세로 가뜩이나 정국이 시끌시끌한 요즘이기에 더욱더 이 영화가 생각났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처럼 사람이 소모품처럼 쓰이고 버려지는 세상, 상류층이 위선과 향략에 도취되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부디 앞으로는 우리 사회 곳곳의 '하녀'들이 좀 더 자유로워지고, 따듯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길 고대한다.

나한테 참 불친절해. 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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