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이 지난 필름

필름 기록지


위쪽이 현행 필름, 아래쪽이 유통기한이 지난 필름이다.

필름은 빛에 반응하는 감광 재료로 만들어진다. 감광 재료는 자연적으로 미세한 반응을 일으켜 감도(빛에 반응하는 정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일정 기간 안에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필름은 유통기한을 가진다. 컬러 필름은 2-3년, 흑백 필름은 3-5년 정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유예 기간을 갖게 된다. 유통기한이 지난 필름은 사용하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다. 감도가 떨어진 필름에게 많은 양의 빛을 쬐어주면 자국들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기대는 하면 안 된다. 빛에 반응은 할지, 감도는 얼마나 떨어졌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통기한이 지난 필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근마켓에서 간간히 "유통기한 지난 필름 판매합니다."라는 글의 제목이 보이기도 한다. 빛에 반응은 할지, 감도가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 없는 필름을 왜 사용하는가. 이를 몸소 체험하기 위해 구마모토 어느 한 신사의 대춘제를 사진으로 담았다. 사용한 필름은 코닥 컬러플러스, 유통기한은 2008년 12월 1일. 사진을 찍은 날짜가 2024년도이니까, 대략 16년이 지난 필름이었다. 컬러플러스의 원래 감도는 200이지만, 유통기한이 지난 점을 감안해 감도를 100으로 설정한 후 촬영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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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는 16년이라는 시간의 길이를 가늠하지 못한 것 같다. 모든 사진의 노출이 부족한 것으로 보아, 감도를 50 혹은 그보다 낮게 설정했어야 했다. 그리고 사진에 전체적으로 핑크빛이 돌면서 색감이 뒤틀려있다. 사람들의 흰 옷이 붉게 물들어 있다. 노이즈도 심하다. 나무 아래에 그림자 진 공간이 자글자글한 노이즈로 가득하다.


이런 점들은 흔히 말하는 "잘 나온 사진"의 룰을 벗어난다. 하지만 필름을 찍는 나 같은 사람들에겐, 룰을 벗어나는 점들이 단점은 아닐 것이다. 필름쟁이들은 사진을 잘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름의 맛"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필름은 기존 필름에 맛의 레이어 한 층을 더 쌓아준다. "컬러플러스인데, 내가 알던 컬러플러스의 색감과 달라!"


20250509_035730 (6).jpg 2016년 대지진으로 인해 무너진 구마모토 성 일부가 복원 중이었다. 완전 복구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린다고 했다.


솔직히 유통기한이 지난 필름을 추천할 수는 없다. 앞에서 '필름쟁이들은 좋아할 것이다' 말했지만, 사진은 결국의 개인의 취향이 담기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새로운 맛을 선사하는 특식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점을 매기기도 아까운 메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매일 사용하는 필름의 색감이 질리거나, 필름에 흥미가 떨어질 쯤에 사용해보자. 물론 구할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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