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필름 사진을 찍는가에 대한 고찰_0001
나는 사진을 필름으로 시작했고, 지금도 거의 필름만 찍고 있다.
왜 필름이었고, 필름인가.
앞으로 여러 이유를 하나씩 생각해보려고 한다.
기다림의 결과
36번의 셔터를 누르고, 사진관에 필름을 맡기고, 기다려야 한다. 여행에서 찍은 필름들은 학수고대하기도 하고, 바쁜 일상에 지쳐 필름을 맡겼다는 사실조차 잊을 때도 있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어떤 장면을 담았었는지, 어떤 색깔을 담았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인지 사진을 받아볼 때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이런 사진은 왜 찍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걱정보다 잘 나왔을 때 느끼는 안도감을,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을 때는 실망감을, 반대로 기대도 안 했는데 잘 나왔을 때는 뜻밖의 즐거움을 느낀다. 36번의 시도를 통해 이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될까.
어린아이가 고대하던 산타클로스의 선물처럼, 기념일도 아닌 평범한 날에 연인에게 받은 깜짝 선물처럼. 그렇게, 다양한 감정들을 담은 기다림의 결과들이 내게 다가온다. 이게 내가 필름 찍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