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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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 이어서 친할머니의 장례를 치른 경험을 글로 그것도 시리즈로 쓰는 것은, 고인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이날의 감정과 생각을 잊지 않기 위한 자기 위로임으로, 불편하신 분들은 조용히 뒤로 가기를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장례 둘째 날은 그렇게 오전에 입관을 시작으로 하루를 열게 되었다. 비구니 스님들이 가시고 나서 우리는 조금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어제 먹은걸 또 먹는 것도 별로고 나와 동생은 컵라면으로 해결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점심시간부터 조문객들이 찾아오셨는데 뜻밖에 가족들과 재회를 하였다. 바로 친할머니의 친동생들인데 이때 처음 알았지만 친할머니는 8남매 중 차녀로서 굉장히 시골에서 자랐다고 했다. 친할머니의 어릴 적 얘기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왜 동생들과 등 돌리고 평생 외롭고 굳세고 자존심 있고 고집 있게 사셨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친할머니의 영정사진 앞에서 보자마자 오열을 하시는 이모할머니들의 모습은 옆에서 보는데도 그 한스러움과 안타까움이 절로 느껴져서 나도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자매 중에는 가장 먼저 돌아가신 친할머니 그래서인지 한걸음에 4분이나 오셔서 그동안의 서러움과 안타까움등의 모든 슬픈 감정을 다 쏟아냈다. 다들 눈물바다였다. 지금은 벌써 먼 옛날 같기도 하고 하도 슬퍼서 내 뇌가 알아서 망각해주는 건지, 역시 시간이 약인가 보다
그렇게 둘째 날은 하루 종일 할머니의 영정사진 앞에서 자리를 지키며 누구보다 오래 그 공간에 있었다. 마스크와 향 때문에 숨 쉬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지만 그런 걸 느낄 겨를도 없이 가족 한 명씩 돌아가며 영정사진 앞에서 멈춰 설 때마다 울컥울컥 하는 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사실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사망보단 남은 가족들의 슬픔이 더욱 가슴 아팠다.
나는 귀신같은 건 잘 믿지는 않지만 확실히 영정사진을 계속 보고 있으면 마치 할머니가 여러 가지 표정을 짓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가족들도 그렇게 느꼈는데 이게 내 마음의 투영인지 진짜 영혼이 있는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만약 그 표정들이 진짜 영혼이 있어서 그런 것이었다면 이생에 미련 없이 온전히 승천하셔서 극락왕생하신 거라 확신한다. 둘째 날은 확실히 가장 많은 조문객이 오셨는데 그래도 밤 9시가 넘어가니 슬슬 발길이 끊어졌었다 월요일이기도 하고 그나마 임시공휴일이었어서 예상보단 많이 오신 거 같다. 우리는 첫째 날과 마찬가지로 집으로 갈까 했는데 나와 동생은 그냥 하루만 참으면 되니 거기에 남기로 했다. 그러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에 같이 동업했던 친구가 찾아왔다. 너무나 늦은 시간이고 당황했지만 그래도 고마웠었다. 막내 아빠나 우리 가족들은 이미 다 아는 사이라서 더 내 체면도 살고 그래도 장손 지인이 한 명이라도 와서 친할머니도 뿌듯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그 친구도 사실 작년에 친할머니를 보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에 같은 장손끼리의 입장도 잘 헤아려줬으리라 생각도 든다.
그렇게 둘째 날을 마무리하고 잠을 들었다. 자고 일어나니 동생이 새벽에 모든 얘기를 다 들었다면서 들었던 얘기들을 다시 나에게 들려줬다. 참으로 아픈 흑역사고 가족사였고 아버지의 모난 성격도 이해가 되었다. 엄마를 잃은 아들의 슬픔은 나이가 먹고 자식이 있어도 참으로 고통스러우리라... 그 슬픔을 누군가를 향한 원망으로 변하는 것이 안타까웠고 그것을 막는 건 내 역할이겠다.
사실 친할머니와의 정은 그리 크지 않았다. 워낙 해외도 들락날락했고 서울에서 자취도 몇 년 하면서 명절 아니면 볼일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도 친할머니는 그렇게 정이 넘치는 분은 아니었다. 외할머니는 정말 가까이 지내고 자주 얼굴 보는 사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상대적으로 친가 쪽은 그렇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큰 슬픔이 찾아오는 건 역시 가족이어서겠다. 가족을 잃은 슬픔 특히 바로 직계 가족 우리 식구가 한 명이라도 이제 다시 볼 수 없게 된다 한다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힘들 거 같다.
그렇게 3일장의 마지막 날이 밝았고 발인하는 날이 되었다. 장손으로써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들고 가장 앞에서 마지막 보내드리는 길을 가는데 할머니 옥체를 모신 영구를 운구하여 장지로 떠나는 그때부터 가슴속 꾹꾹 참고 있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