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 보이는 많은 것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말은 늘 조금 부정확하다. 좋아하는 것은 이동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동이 나에게 요구하는 상태다. 떠남은 언제나 나를 설명 불가능한 위치에 세워놓는다. 익숙했던 역할도, 오래 써오던 태도도 잠시 내려놓게 만드는 그 어정쩡한 지점. 여행은 나를 자유롭게 해 준다기보다는 오히려 나를 더 또렷하게 만든다. 그 또렷함은 대개 반갑지 않게 찾아온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는 굳이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던 질문들이 낯선 공간에서는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는가, 그리고 그 중요함이라고 믿어온 것들이 정말로 나의 것이었는가. 여행은 그런 질문들을 미루거나 도망치는 일을 허락하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는 나 자신으로 서 있어야 하는 시간은 불편하기도 하고 때로는 초라하다. 하지만 바로 그 상태에서 나는 나를 가장 솔직하게 바라보게 된다.
지금껏 지내오면서 나는 대부분 경우에 머무는 곳에서 자신을 정의하고, 그 환경이 나라고 쉽게 오해를 한다. 직장, 관계, 책임, 반복되는 하루 같은 그런 것들은 나를 보호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둬놓는다. 나는 그 틀 안에서 꽤 오래 괜찮은 사람으로 살려고 애써왔다. 남을 배려하고, 상황을 이해하고, 불편함을 삼키는 일이 어느새 몸에 배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 자신은 항상 뒷순위가 된다. 그게 미덕처럼 느껴지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방식이 나를 점점 비워낸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 비워짐은 서서히 진행된다. 당장 큰 고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명확한 불행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어떤 순간에도 선뜻 기뻐지지 않고 이유 없이 피로해진다. 나는 그 감정을 원래 사는 게 그런 거지라는 말로 덮어두곤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그리고 비로소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그 피로의 상당 부분은 환경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계속 미뤄온 내 선택의 누적이었다는 사실을.
여행은 그 균형을 강제로 흔든다. 낯선 장소에서는 누구도 나에게 익숙한 역할을 기대하지 않는다. 설명해야 할 과거도, 유지해야 할 이미지도 없다. 그곳에서 나는 그저 한 사람의 개인으로 존재한다. 그 단순한 상태가 처음에는 불편하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그 불편함이 오히려 숨통을 틔워준다. 나를 규정하던 조건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갈수록, 나는 비로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지치는 사람인지 다시 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나는 종종 당황한다. 내가 좋아한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사실은 타인의 기대에 가까웠다는 사실,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던 상황들이 실제로는 나를 빠르게 소진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여행은 그런 깨달음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그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상하게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적어도 더 이상 나를 속이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이동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속해 있던 질서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행위다. 익숙하다고 믿었던 삶의 반경을 벗어나는 순간 나는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을 새삼스럽게 바라보게 된다. 집을 떠나야 집이 보이고, 일상을 벗어나야 일상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여행은 그래서 늘 돌아올 자리를 동시에 만들어낸다.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나는 내가 돌아가게 될 풍경을 더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된다. 그곳에서의 나의 표정, 말투, 태도까지도. 여행은 단절이 아니라 대비를 만든다. 떠난 자리와 돌아갈 자리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게 만든다. 그 대비 속에서 나는 어떤 삶을 유지하고 싶은지, 무엇은 더 이상 붙잡고 싶지 않은지를 천천히 정리해 간다.
나는 여행을 준비할 때 특별한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무엇을 보고, 어디를 가고 같은 거 말고, 무엇을 성취하겠다는 계획에는 큰 관심이 없다. 대신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짐하는 것이 있다. 이번만큼은 나 자신을 희생시키지 말 것.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무시하지 말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나라는 사람으로 그 자리에 제대로 서 있을 것. 이 다짐은 언제나 쉽지 않지만, 여행이라는 환경은 그 다짐을 실천하게 만든다. 이 다짐이 어려운 이유는, 용기 내는 것만큼 두려운 게 남들 눈이고, 나는 여전히 타인의 시선에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맞추고, 갈등을 피하고, 설명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살아온 시간이 길다. 여행지에서도 그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낯선 환경은 나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계속 예전의 방식으로 움직일 것인지, 아니면 불편하더라도 다른 선택을 해볼 것인지. 그 선택 앞에서 나는 자주 멈춰 서게 되고, 그 멈춤 속에서 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는 작은 선택 하나하나가 온전히 나의 몫이 된다. 어디로 갈지, 언제 멈출지, 누구와 말을 섞을지. 그 모든 결정 앞에서 나는 핑계를 댈 수 없다. 그 선택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것은 타인의 요구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의 판단 때문이다. 그 책임감은 피곤하지만 동시에 정직하다. 나는 그 정직함을 여행에서 가장 좋아한다. 그 정직함은 때로 나를 실망시키기도 한다. 내가 생각보다 소극적이거나, 생각보다 쉽게 타협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인정은 새로운 기준을 만든다. 더 이상 막연한 이상이 아니라, 실제의 나를 기준으로 한 선택. 여행은 그런 기준을 세우는 연습장이 된다.
탄자니아의 내가 사는 시골에서의 삶 역시 나에게는 긴 여행과 다르지 않다. 익숙한 언어도, 문화도, 속도도 아닌 곳에서 살아가며 나는 매일 스스로를 조정해야 한다. 여기서는 내가 한국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기준들이 거의 통하지 않는다. 그 차이 앞에서 나는 종종 작아지고 때로는 쉽게 지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환경 속에서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을 더 정확히 인식하게 되었다. 무엇을 견딜 수 있고, 무엇을 더 이상 견디지 않아야 하는지. 어디까지가 배려이고, 어디서부터가 자기 방기인지. 이곳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지속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이 자리에 있는가, 무엇을 위해 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는가. 그 질문에 매번 명확한 답을 내놓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질문을 피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긴 여행은 충분한 의미를 가진다고 느낀다.
사실 여행은 나에게 쉼이 아니라 점검에 가깝다. 잘 살아왔는지 묻는 시간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여행이 끝난 뒤의 나는 종종 더 피로해져 있다. 하지만 그 피로 속에는 묘한 정돈감이 있다. 불필요하게 쥐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고, 꼭 붙들어야 할 것만 남겨둔 느낌. 그 감각이 나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그 정돈감 덕분에 나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만 살 수 없게 된다. 적어도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지는 알게 되기 때문이다. 여행은 나를 더 현명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덜 무감각하게 만든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사람들은 종종 여행을 다녀오면 사람이 변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늘 반만 동의한다. 여행은 사람을 바꾸기보다는 원래 있던 모습을 과장해서 보여준다. 숨겨두었던 욕망이나 애써 외면했던 피로감, 그리고 끝내 놓치고 싶지 않았던 가치들까지. 그것들이 낯선 환경 속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여행이 끝난 뒤 달라 보이는 것은 사실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된 나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여행을 떠나리라 다짐한다. 멀리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내가 서야 할 자리를 확인하기 위해서, 타인을 배려하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는 방법을 잊지 않기 위해서. 여행은 나에게 도피가 아니라 연습이다. 나로 살아가기 위한 연습, 그리고 집으로 향하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연습.
길을 떠나온 자만이 집으로 향하는 그 아득한 길을 보게 된다, 그리고 길을 떠나본 사람만이 돌아갈 방향을 고민한다.
나는 그 고민을 계속하고 싶어서 오늘도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며, 다음 여행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