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기억보다 희미한 기록이 더 낫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평론가가 유튜브 채널에서 말한다. "선명한 기억보다 희미한 기록이 더 낫다." 이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고개가 갸웃거렸다. 사실 나는 여행을 가면 기록하는 것(사진 찍는 것을 포함한)보단 눈에 담는 걸 선호하는 편이고(나이가 들면서 사진을 예전보단 많이 찍지만,,) 그렇게 기억을 떠올리며 회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겪은 건 내가 제일 잘 알아 따위의 태도로 기억이라는 게 언제까지고 내 편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기억은 생각보다 금방 잊혀지기도 하고, 복잡하게 꼬이기도 했다. 중요한 장면에서 갑자기 흐려지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장면에서만 이상하게 또렷해지기도 하면서. 누군가에게 용기 내어했던 한마디는 몇 년이 지나면 내가 그때 뭘 말했더라로 바뀌는데, 그날 상대가 신고 있던 양말 색깔은 이상하게 기억이 남는 식이랄까. 덜 떨어진 사랑 고백은 흐려지고 그가 신고 있던 양말은 선명해지는 세계. 내 머릿속은 도대체 어떤 편집 기준으로 돌아가는지, 가끔은 내 기억을 별도의 외주 편집자에게 맡긴 기분이 든다. 게다가 그 외주 편집자는 종종 감정 과다로 컷을 마음대로 날린다. 너무 쪽팔린 장면은 삭제하고, 너무 행복한 장면은 과장하고, 너무 우울한 장면은 하이라이트로 만들어버린다. 그 결과 나는 내 인생을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인생을 그럴듯하게 재구성하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기록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거창하지 않았다. 어떤 날은 메모장에 한 줄만 적었다. 오늘도 이유 없이 피곤하다 후.. 따위의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 또 어떤 날은 사진 한 장을 남겼다. 풍경이 아니라, 별 의미 없던 부엌 한구석. 그냥 술을 퍼먹다가 문득 어? 이거 나중에 뭔가 그리워질 장면인데, 내가 기억을 못 하면 아쉬울 거 같다!라는 생각으로. 나중에 그 사진을 보니 그때의 내 생활 반경이, 그때의 정신 상태가, 그때의 습관이 그대로 박제돼 있었다. 기억이 놓친 것들이 사진 속에서 태연하게 손을 흔들었다. 나 여기 있었는데?라는 얼굴로.
기록은 어쩐지 삶을 거창하게 만드는 행위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기록은 삶을 덜 사라지게 만드는 행복에 가까웠다. 어느 순간 하루를 힘겹게 살아내고, 꽤 오랜 시간을 버텼는데도 결국엔 통째로 증발해 버리는 느낌이 싫었다. 아침에 무슨 마음으로 일어났는지, 점심에 누구의 말에 웃었는지, 저녁에 왜 갑자기 가슴이 철렁했는지. 이런 것들이 잠깐 기억했다가 사라진다면, 내 삶은 자꾸 빈칸이 된다. 나는 이제 그 빈칸을 꽉 채우기보단, 최소한 빈칸의 모양이라도 남기자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은 그 모양을 남기는 도구였고.
물론 기록을 한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성실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나는 기록을 하면서도 뻔뻔하게 게으르다. 일기는 한 번 쓰기 시작하면 매일 써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는데, 나는 그 압박을 싫어한다. 그래서 나는 기록을 일기처럼 대하지 않기로 했다. 기록은 출석부가 아니라 스냅샷 정도라고 생각해 보기로 한다. 출석을 못 해도 결석 처리가 없는 스냅샷. 대신 그날의 중요한 것만 찍고 넘어가는 방식. 덕분에 나는 기록을 오래 할 수 있었다. 내 인생은 꾸준함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 대충이라도 계속하는 힘으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나는 꽤 늦게 인정했다.
기록은 나를 설명해 준다. 나는 내 성격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기록을 모아놓고 보면 내가 모르는 내가 나온다. 나는 나를 계획 중독자라고 말하곤 했는데, 기록을 보면 계획은 늘 내일부터 시작한다. 이건 뭐 사실 나의 고질병인 작심삼일이랄까.. 아무튼 내일의 나는 엄청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결단력 있는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현실의 나는 늘 오늘에 살고 있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말을 자주 한다. 기록은 이런 내 태도를 조용히 들춰낸다. 아주 얌전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마치 내 삶의 통계를 보여주는 친절한 데이터처럼.
재밌는 건 그 데이터가 나를 혼내기만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기록은 내가 얼마나 자주 흔들리는지 보여주면서도, 내가 결국 다시 균형을 찾는 순간도 같이 보여준다. 우울한 문장이 연달아 나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오늘은 조금 괜찮다던가, 소주 한잔 먹었다고 신난 내 자신이 등장한다. 그 한 줄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기록이 없으면 나는 모른 채 지나갔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라도 괜찮아지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걸 기록이 알려준다. 기록이 없으면 나는 늘 지금만 보고 판단한다. 지금 힘들면 늘 힘들 것 같고, 지금 괜찮으면 늘 괜찮을 것 같다. 기록은 그 '늘’이라는 착각을 깨 준다. 네 삶은 생각보다 변화무쌍하고, 네 감정은 생각보다 계절을 탄다고.
그리고 친구들의 기록을 보면서, 기록은 개인의 일이 아니라는 걸 느낀다. 나는 친구들이 올리는 글을 자주 읽는다. 오늘은 어땠고 뭘 먹었고 같은 문장 들. 그 기록을 읽으면 나는 웃는다. 동시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내 삶에는 아무도 이해 못 할 것 같은 사소한 난리들이 많다. 그런데 친구의 기록을 보면 그 사소한 난리가 갑자기 보편적이 된다. 그게 묘한 위안이다. 나는 내가 이상해서 흔들리는 게 아니라, 인간이라서 흔들리는 거라는 사실.
우리는 각기 다른 일상을 걷는다. 친구들은 친구들의 도시를 걷고, 나는 나의 동네를 걷는다. 서로의 하루는 물리적으로 겹칠 일이 없는데, 기록을 통해 이상하게 겹쳐지는 느낌을 받고 또 거기에서 묘한 위안이 생긴다. 그 겹침은 뭐랄까 나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다 따위의 흔한 말을 뻔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확실히 전달한다. 누군가에게 괜찮아?라고 물어보거나 물음 받는 건 때로는 부담스럽다. 답을 해야 하는 질문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들의 기록을 읽는 건 부담이 없다. 그건 질문이 아니라 창문이다. 나는 창문 너머를 잠깐 바라볼 뿐이고, 친구는 나에게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어떤 기록은 상대의 삶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놓치지 않게 잡아주는 얇고 튼튼한 끈이다.
또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대의 사람으로 산다. 친구의 기록은 내가 하루를 시작할 즈음에 올라오기도 하고, 내 기록은 친구가 하루를 마무리할 즈음에 남기도 하겠지. 신기하게도 그 리듬이 딱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 친구의 문장을 읽고 내가 웃어버린 순간, 친구는 아마 씻고 있을지도 모르고, 차를 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그 겹침이 정말로 시간을 묶어준다는 느낌이 든다.
뭐 물론 기록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기록은 종종 내가 외면하고 싶은 것들을 보여준다. 또 같은 이유로 화가 나고, 또 같은 방식으로 도망친 나를 보고, 이런 기록을 읽을 때면, 나는 잠깐 기록을 삭제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삭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게 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나만 남겨두면, 기록은 나의 소개서가 아니라 나의 광고가 되어버리겠지. 나는 광고보다 기록을 믿고 싶다. 기록은 예쁜 척을 하지 않아도 살아남는 방식일 테니까.
그래서 나는 기록을 예쁘게 하기보다 그저 계속하기로 한다. 멋진 문장으로 남기려다가 실패하는 날도 기록한다. 나는 지금의 나를 심각하게 바라보기도 하지만, 동시에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바라볼 수 있다. 기록은 나에게 거리를 준다. 그 거리 덕분에 나는 내 감정에 압사당하지 않는다. 오늘의 나는 울고 싶지만, 기록 속의 나는 그래도 살아는 있다고 말해준다.
선명한 기억보다 희미한 기록이 더 낫다. 이제는 이 문장에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는다. 선명함은 시간이 지나면 쉽게 변색된다. 과장되기도 하고, 삭제되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한다. 반면 희미한 기록은 완벽한 재현은 못 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힌트가 된다. 기록은 그때 너는 이런 사람이었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그 말은 때때로 나에게 그러니까 지금의 너도 괜찮아라는 위로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기록을 남기고 싶다. 내 기억이 언제든 날 배신할 수 있다는 걸 알아서가 아니라, 기록이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다. 기록은 나를 있는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시간을 얹는다. 그리고 기록을 통해 친구들의 시간과 내 시간이 앞으로도 종종 겹치길 바란다. 서로 다른 책을 읽고 있는 것 같아도, 어떤 장면에서는 비슷한 숨을 고르는 사람들. 그게 우리라면 좋겠다.
기록의 즐거움은 결국, 오늘의 나를 내일의 나에게 건네는 작은 선물이다. 그리고 그 선물이 어느 날엔 어떤 시간들과 겹쳐져서 너도 여기 있었구나라는 위안이 되기를 바라며. 그리고 나는 그 위안이 좋아서 오늘도 대충이라도 적는다. 한 줄이면 충분한 날도 있고, 한 페이지가 필요한 날도 있다. 중요한 건 길이가 아니라 남겼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나는 계속 적는다. 선명했던 기억은 흐려져도, 희미한 기록은 계속 남으니까. 그리고 그 희미함 속에서 어떤 시간들은 계속 겹쳐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