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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주 Dec 04. 2021

[김은주의 라떼뷰]자우림(紫雨林)의 과거 현재, 영원

정규 11집 앨범 ‘영원한 사랑’ 발표한 자우림

신보 발매 단독 콘서트 호평 속 마무리

올해 데뷔 24주년 팀 장수 비결 ‘시선’ ‘예의’ ‘다수결’

늘 마지막 앨범이라는 마음으로 작업해

김윤아 마비 후 85% 회복…매 트랙 온힘 담아


짙고 깊다. 그룹명 그대로 ‘자줏빛 비가 내리는 숲’(紫雨林·자줏빛 비가 내리는 숲)에 한가운데 서 있다면 수심을 가늠할 수 없는 바다와 곧장 맞닿을 것만 같다. 혼성 밴드 자우림(김윤아·이선규·김진만)이 12트랙으로 꽉 채워 최근 발표한 정규 11집 앨범 ‘영원한 사랑’이 그러하다.


멤버들이 한 곡 한 곡 세세하게 직접 소개할 정도로 매 트랙이 강렬하다 못해 수려하다. 상실과 우울이 주를 이뤘던 초기 작업한 곡들로 인해 1년의 담금질을 더 거쳐 올해 연말이 되어서야 앨범을 내놓게 됐다. 지난해 전 세계인이 실의에 빠진 코로나19 팬데믹에 절망적인 분위기의 곡들을 발표하기엔 음악인으로서 걸어야 할 도덕적 행보에 부합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전곡에 담긴 메시지는 심오하고 멜로디는 화려하다. 자우림이기에 내놓을 수 있는 음악들이라는 호평이 이번 앨범에서도 제대로 귀결된다.

자우림(좌측부터 김진만, 김윤아, 이선규). 사진제공=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한 곡 담긴 싱글 혹은 3~5곡이 수록된 EP 형태를 주로 내놓는 변화무쌍한 가요계에 12트랙을 가득 채운 몸집이 큰 정규 앨범은 살짝 의아할 수밖에 없다. 작업하는 데만 몇 년 걸리는 건 예사이거니와 비용 투자 대비 효율성이 다소 떨어지는 게 당연지사다. “후회 없는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라며 “매번 이번이 마지막 앨범”이라는 자우림의 진지한 각오를 들으니 묵직한 트랙들이 단박에 이해가 됐다.


물론 자우림도 이렇게 단단한 마음을 먹기까지 쉽진 않았다. “팬데믹이 시작되던 무렵 오래된 번아웃으로 공기에서 먼지 맛을 느꼈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무 것도 즐겁지 않았고, 아침에 눈을 뜨면 절망감에 압도되곤 했다”라며 지난 2년간 여러 현실 속에서 힘든 시기를 보냈음을 털어놨다. 특히 멤버 김윤아는 지난 2011년 정규 8집 앨범 작업 당시 안면 마비와 청각 신경 마비를 겪은 뒤 은퇴까지 고려했다가 현재 85% 정도 몸이 회복된 온전치 못한 컨디션에도 작업에 매진했다. 다수의 곡을 작사 작곡해 12트랙을 꽉 채워넣는다는 것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그렇게 힘든 시기를 셋이 힘을 합쳐 이겨냈기에 자우림이라는 음악적 숲을 이루는 나무들이 단단하게 뿌리를 내려 어느새 무성한 잎들이 리드미컬하게 엉키며 하늘 위로 쌓아 올라간 느낌이다. 무엇보다 이번 정규 11집 앨범은 자우림이 목표했던 음악적 방향성과 색깔을 이미 도달한 결과물이라고 다부진 자신감을 드러냈다.


자우림의 호언은 1번 트랙을 듣자마자 알게 된다. 몽환적 멜로디로 독특한 혼성 밴드의 세계로 안내하는 1번 트랙 ‘FADE AWAY(페이드 어웨이)’를 들으면 음악을 향한 이들의 묵직한 진심이 가슴을 울린다. 김윤아의 깊고 잔잔한 음색이 첫 트랙을 화려하게 연 뒤 두 번째 트랙 ‘영원한 사랑’이 스타카토처럼 강렬하게 울려퍼지며 묘한 쾌감을 선사한다. 만장일치로 결정됐다는 후일담에서도 알 수 있듯 듣자마자 강렬하게 날아서 귀에 꽂히는 타이틀곡 ‘STAY WITH ME(스테이 위드 미)’ 등 총 12트랙이 수록됐다.

자우림(좌측부터 김진만, 김윤아, 이선규). 사진제공=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1997년 1집 앨범 ‘Purple Heart(퍼플 허트)’ 이후 밴드 결성 24주년에 접어든 관록 있는 그룹인 만큼 보컬리스트 김윤아의 몽환적인 목소리와 기타리스트 이선규 그리고 베이시스트 김진만이 함께 빚어내는 단단한 사운드는 전매특허다.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개최된 발매 기념 단독 콘서트에서도 자우림이 과거부터 자랑하는 독특하면서도 탄탄한 리얼 사운드가 객석 곳곳에 울러퍼졌다. 매번 전 관객을 만족시키기 쉽지 않은데 데뷔 24주년을 맞는 잔뼈 굵은 밴드답게 어려운 것들을 해냄과 동시에 “잊지 못할 생생한 무대”라는 미담까지 연일 받고 있다.


“올 연말은 정규 11집 앨범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는 평범하면서도 소박한 현재 계획을 털어놓으며 활짝 웃던 자우림. 24년간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서로를 배려했기 때문에 여러 부침에도 밴드의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영원한 사랑’의 11번째 트랙 ‘EURYDICE(에우리디케)’에서 소재를 잡은 비통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리스 신화처럼 과거 24년간 응축된 음악으로 현재 단단하게 존재하는 자우림은 뻔한 미래가 아닌 색다른 영원의 세계로 바로 넘어가려하기에 늘 신비롭고 매혹적이다.

자우림(좌측부터 김진만, 김윤아, 이선규). 사진제공=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정규 11집 앨범을 발표했는데요. 발매 소감이 궁금합니다.


-목표했던 것이나 원했던 것을 벌써 성취했다고 해야 할까요. 늘 새 앨범은 전작보다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번 앨범은 앨범의 소재, 주제를 이어가는 방식, 사운드를 메이킹하는 방식, 처음에 그렸던 청사진이 어떻게 그렸는지 등 여러 면에서 작업적 만족도가 높았던 것 같아요. 그걸 세 명 모두 느끼기에 다 충족됐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부분이 이번 앨범을 낸 것에 대한 가장 큰 성취라고 생각해요. 팬 여러분들도 잘 만들어진 앨범이구나 하는 기분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과 기대감이 있어요(웃음).


▶정규 앨범인 데다 12트랙이나 수록됐어요.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아요.


-사실 부담보다는 회의적이었어요. 어떤 점에서는 비용 낭비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작게 해서 조그만 앨범을 내자고 했는데 앨범을 만들고 만들다 보니까 이렇게 꽉 채우는 게 버릇이 된 것 같아요. 특정 시대에 구애받지 않은 팀이기에 즉흥적인 정서나 갈증을 갖고 있는데요. 저희는 늘 앨범을 작업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아 이게 마지막 앨범이 될 수도 있겠구나’ ‘후회없는 앨범을 만들자’ 이거거든요.


▶앨범 트랙이 12개나 되다 보니까 어떤 기준으로 트랙 순서를 정했나요.


-이번 앨범은 정말 일사천리로 정해졌어요. 1번 트랙을 정하고 나서 가속이 붙은 것처럼 후다닥 정해졌어요. 이번 앨범 ‘영원한 사랑’은 자우림 아니면 못하는 그런 장르의 음악을 담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웃음).


▶이 중에서 가장 어렵게 나온 트랙이 있을까요.


-(김윤아) ‘DA CAPO(다 카포)’라는 곡인데요. 김진만 씨가 가사를 계속 안 줬어요. 노래 녹음이 일주일 남았는데 1절만 줘서 개인적으로 어려웠어요. 녹음 직전에 멜로디랑 가이드 라인이 나와서 가장 어렵게 나온 트랙이에요.


자우림의 김윤아. 사진제공=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기타리스트 최희선이 밴드로서 독창적인 자기 색깔을 가지고 활동하는 후배로 자우림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개인적으로 음악적 색깔을 지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지금 현재를 살아야 음악이 되는 것 같아요. ‘나는 맞고 너희가 다 틀렸다’라고 생각하면 그게 음악이 정체되는 첫 걸음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들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을 SNS에서 팔로워하고 있는데 지금 진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우림이 생각하는 밴드의 색깔과 정체성은 무엇이며. 20년 넘게 밴드로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서로 의견을 어떻게 교환하는지 서로를 어떻게 대하나요.


-저희 셋 다 음악을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그때부터 습관적으로 서로 음악적인 터치를 하지 않아서 우리의 색깔을 유지하는 것 같고요. 새로운 멤버를 찾거나 새로운 분과 일하는게 더 어려울 것 같아요(웃음). 서로 맞는 면이 많아서 팀을 시작했고요. 세상을 바라보는 관심이나 시선이 셋 다 비슷해요. 잘 맞아서 여기까지 해올 수 있었어요. 녹음실에서는 아직도 존대를 하거든요. 여전히 예의를 지키고요. 대부분의 의견 결정은 다수결로 정하거나 각자가 정하거나 해요.


▶정규 11집 ‘영원한 사랑’에 어떤 의미와 메시지가 있나요.


-메시지랄까 그런 건 없어요. 다만 ‘괜찮아 오늘을 잘 지내자’ ‘앞으로 가면 좋은 일이 있을거야’ ‘이게 자우림이야’ 하는 것들을 생각하면서 담았어요. ‘영원한 사랑’이라는 제목은 우리가 아름다운 음악을 갈구하지만 변하지 않겠다는 것을 뜻해요. 영원히 따뜻하게 위로해줄 수 있는 어떤 것을 우리는 모두 다 찾아헤매잖아요. 소중한 것들이 옆에 있는데 지나치기도 하고 그런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어요.

자우림의 김진만. 사진제공=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앨범을 작업하면서 가장 중점에 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음악계 판도도 변했고 코로나 사태로 타격도 있었는데요. 그런 과정이나 개인적인 성장에서 기존 정규 앨범과는 다른 부분이 있었는지 차별점이 된 부분이 있을까요.


-코로나로 인해서 발매 시기가 늦어졌어요. 그거 말고는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요. 시기가 많이 늦어지면서 공연을 한다거나 그런 게 힘들어진 건 사실이에요. 그리고 비유를 하자면요. 저희 앨범은 지난1997년부터 2021년까지 같은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한 청년인데 여성인지 남성인지 몇 살이지는 몰라요. 다만 가슴에 폭풍이 있고 갈등과 갈증이 있죠. 그런데 그가 숲 안에만 존재하는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살고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느끼는 것과 똑같이 허무함과 상실감을 겪었고 그게 곡들에 녹아 있어요. 인간으로서 각자 과정을 겪고 세계관을 변하는 걸 지켜보면서 내면의 상처도 있었는데요. 그게 이번 앨범의 음악으로 나온 것 같아요.


▶내년이면 결성 데뷔 25주년을 맞습니다. 25주년을 기념하면서 자우림이 준비하는 일정 이나 계획이 있을까요.


-10주년 때에는 열심히 일했으니까 쉬자 해서 그렇게 했어요. 25주년을 앞두고 생각해보니 우리가 잘해서 된 게 아니라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그렇게 된거라고 생각해요. 내년에는 좋은 기획으로 여러분과 함께할 예정이에요.

자우림의 이선규. 사진제공=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음악 활동을 해오며 자우림에게 큰 음악적 변화가 나타난 시기나 한 단계 도약한 시기가 있었다면 언제인가요.


-(김윤아) 자우림 8집때인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일로 안면 마비가 오고 귀까지 안 좋아지면서 음악을 더하는 건 틀린 것 같다고 (은퇴도) 고민을 했거든요. 그런 과정을 지나서 이제 체감상 85% 정도 회복됐어요. 그래서 9집부터는 쉽고 편하게 가지 않고 매 트랙 들들 볶았어요. 왜냐하면 언제 음악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이번이 끝일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에 12곡을 수록하는건 정말 힘든 길이었지만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마지막 앨범이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거든요.


▶앞선 앨범들을 보니 그리스 신화에서 영감을 많이 받으시는 편인가요. 앞으로 그리스 신화 3부작 완결을 기대해도 될까요.


-신화가 정말 좋은 소재예요(웃음). 인간의 모든 면이 다 들어가 있어서 정말 재밌거든요. 문학적으로도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게 과거랑 현재랑 별반 다를 게 없어서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은 같잖아요. 저희도 그리스 신화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써볼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네요(웃음).


▶예전에 인터뷰 때 묘비명에 자우림의 가사를 적는다는게 인상적이었는데요. 달라진 게 있을까요. 이번에는 무엇을 적고 싶나요.


-(이선규) 예전에 자우림이라는 밴드의 묘비명에 ‘샤이닝’ 가사를 적어달라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이젠 11집 ‘영원한 사랑’ 전곡을 적어달라고 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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