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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을 걷다 Mar 18. 2019

제주를 걷다 - 7

제주 올레길 9코스

2018년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16개 코스 220km 정도를 걸었는데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내가 걷고 싶은 올레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음에 더 행복함을 느낀다. 어느 때고 난 이 길을 걷기 위해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여행기를 정리하다 보니 최근 읽는 책과 집에서 보는 영화도 여행이나 걷기가 주제인 것이 많다. 어제 본 영화는 나의 여행기를 열심히 구독해 주고 응원해 주는 친구가 추천을 해 주었는데, 2015년에 개봉했던 '와일드'란 제목의 영화다.


주인공 셰릴 스트레이드(리즈 위더스푼)는 지난날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PCT(Pacific Crest Trail) 트레킹을 떠난다. PCT는 멕시코 국경에서 시작하여 캐나다의 매닝파크까지 4,265km 거리의 트레일로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 주와 캐나다 BC주를 걷는다. 셰릴은 "포기하고 싶은 때가 없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왜 없었겠냐고, 그래도 요즘은 많이 나아져서 2분에 한 번씩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9코스를 걸을 당시 포기할 생각은 없었지만 10분에 한 번씩은 '아이고 죽겠다'라고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영화는 여행을 마치는 셰릴의 독백으로 끝난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내 인생도 모두의 인생처럼 신비롭고 돌이킬 수 없고 고귀한 존재다. 진정 현재에 머물며, 진정으로 내 것인 인생. 그렇게 흘러가게 둔 내 인생은 얼마나 야성적이었던가"


9코스 : 대평포구 - 화순금모래해수욕장, 7.5km (3-4시간 소요)


제주 올레길은 '아카자봉과 함께 걷기'란 프로그램이 있다. 아카자봉은 '아카데미 자원봉사자'라는 의미로 제주올레 아카데미를 수료한 자원봉사자와 함께 걸으며, 올레길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www.jejuolle.org 참고) 무료이고, 이메일로 신청한다. 이 프로그램은 혼자 올레길을 걸을 때 유용하다. 참고로 1일에는 1코스, 2일에는 2코스 이렇게 해당 날짜에 해당 코스를 걷는다.


대평 포구 전경


9코스를 걷던 날, 한참 혼자서 열심히 걷다가 '아카자봉' 일행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 길이 맞나 하고 헷갈려할 때 일행들을 만나니 반가웠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여기에 참여해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걸어 보고 싶다.



9코스는 박수기정, 월라봉을 오르는 경사가 큰 산길이 있고, 길이는 짧지만 난이도가  '상'인 코스다. 전날 혼술로 살짝 과음도 해서 배낭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올레길을 걸으면서 처음으로 사진도 거의 안 찍고 오직 종착지만을 향해서 걸었던 코스다.


사진이 없어 아쉽지만, 간단하게 코스에서 만나는 지명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박수기정 : 대평포구 옆 절벽으로 바위에서 샘물이 솟아 나와 바가지로 마신다는 '박수'와 벼랑이란 뜻을 가진 '기정'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몰질 : 말이 다니는 길이란 뜻이다.

볼레낭길 : 볼레낭은 제주도 말로 보리수를 뜻한다.

월라봉 : 다래 오름, 도래 오름이라고도 부르고, 달이 떠오르는 오름 또는 달이 높은 오름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진지동굴 : 1945년 일본은 제주를 방어 진지로 삼고 포대 및 토치카를 설치하였는데, 진지동굴은 당시 사용했던 동굴로 9코스에서는 몇 개의 동굴을 볼 수 있다.

올랭이소 : 올랭이는 바다오리를 일컫는 말로 바다오리들이 겨울을 나는 소(물)라는 뜻이라고 한다.

폭낭 : 폭낭은 팽나무의 제주말이다.


볼레낭길을 지나 월라봉으로 가는 길. 중간중간 바다를 보며 걷는 산길이 있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반갑게 만나는 간세 안내 표지. 머리를 향하고 있는 쪽이 정방향이다.


월라봉을 내려오다 보면 10코스 가는 길에 있는 산방산이 보인다.


힘들었던 월라봉에서 내려오면 화순 금모레해변이 있고 올레 안내센터가 보인다. 점심도 거르고 완전 녹초가 되었지만 식사를 위해 10코스 길에 있는 송악산을 향해 조금 더 걷기로 했다.


9코스 7.5km를 걷고, 계속 걷다 보니 10코스 9km를 더 걷고 나서야 송악산 전망대 근처에 도착했다. 점심식사는 해물파전과 해산물 한 접시. 그리고 막걸리. 식사는 9코스 중간에서 만난 동행 분과 함께 했다. 월라봉을 오를 때 열심히 그 분을 따라가지 않았으면 아마도 두 배의 시간이 더 걸렸을 듯하다.


너무 힘들었던 탓에 안주는 별로 못 먹고, 막걸리만 연신 마셨다.


동행했던 분과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 걷기로 하고 헤어졌다. 인터넷으로 근처 펜션을 예약하고 지난번 올레길을 함께 걸었던 전 직장 동료이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모슬포항으로 갔다.


송악산 근처에 있는 부다페스트 펜션. 여행에서 만난 외국인과 결혼한 사장님이 운영하신다.


펜션 사장님이 추천해 주신 모슬포항 식당에서 친구와 거하게 저녁식사와 술을 한잔 했다.


식사 후 펜션에 들어와서 사장님이 해주신 계란말이 안주에 다시 막걸리 한 잔.


다음 날 펜션 아침식사인 김치볶음밥. 걷기 위해 제주를 간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갔냐고 물어도 할 말은 없다.


9코스 마무리는 나만의 올레길 교훈.

누군가 제주 올레길을 걷는다고 하면 의심하라. 걷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고 사실은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한 목적이 더 클 수도 있다.

많이 먹었다고 더 걸으면, 더 걸었다고 다시 또 많이 먹게 된다. 많이 걷는데도 살이 찌는 악순환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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