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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산업혁명 시대의 UX

by 유훈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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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1차 산업혁명의 기계화부터 현재의 5차 산업혁명에 이르는 기술 패러다임의 격변 속에서,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탄생하고, 확장하며, 궁극적으로 기술의 방향성을 정의하는 핵심 사명으로 진화했는지를 역사적, 분석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UX의 역사는 단순히 디자인 도구나 인터페이스의 변천사를 넘어 기계 중심의 효율성에서 인간 중심의 가치로 무게 중심을 옮겨온 '인간-기계 관계'에 대한 250년간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각 산업혁명을 주도한 핵심 기술이 당대의 '인간'을 어떻게 규정했는지, 그리고 UX는 어떻게 등장하고 발전해왔는지 살펴보자.


1차 산업혁명:
기계의 등장과 '사용자'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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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 증기기관의 발명은 인류의 생산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바꾸었다. 수공업 시대는 막을 내리고, 대량의 동력을 기반으로 하는 기계제 공장 시스템이 탄생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수많은 인간이 복잡한 기계와 일상적으로 상호작용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인간-기계' 관계는 철저히 일방적이고 기계 중심적(Machine-Centric)이었다. 이 시대의 공장 시스템에서 인간은 오늘날 우리가 정의하는 '사용자(User)'가 아니었다. 기계의 작동 주기에 맞춰 정해진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Laborer)'였으며, 기계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투입되기에 급급했. 당시 시스템의 유일한 가치 척도는 '생산 효율'이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경험, 편의성, 안전, 그리고 만족감은 생산성이라는 대의 아래 완벽하게 무시되었다.


그 결과로 산업발전 외에 "노동착취와 아동노동 문제, 열악한 거주 환경과 환경오염"이라는 사회적 문제들이 동반되었다. 1차 산업혁명은 기술이 인간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보여주었다. 이 시대는 인간중심이 아닌 산업 중심의 철학을 가졌던 시대 상을 보여주며, 훗날 등장할 '인간공학(Ergonomics)'과 'UX'의 필요성을 일으킨 문제들이 발생했던 시대로 볼 수 있다.


2차 산업혁명:
효율의 정점, 인간을 '관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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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전기의 발명과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의 도입은 '대량 생산(Mass Production)' 시대를 열었다. 헨리 포드의 포디즘(Fordism)은 컨베이어 벨트의 빠른 속도에 맞춰 노동자들이 고도로 반복적인 작업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생산성을 극대화했다. 이 대량 생산 패러다임의 보이지 않는 운영체제는 프레더릭 테일러(Frederick Taylor)의 '과학적 관리론(Scientific Management)', 즉 테일러리즘(Taylorism)이었다. 테일러리즘은 노동자의 워크플로우를 과학적으로 분석(analysis)하고 합성(synthesis)하여 경제적 효율성, 특히 노동 생산성을 극대화하려는 인류 최초의 체계적 시도였다. 이는 인간의 동작을 초 단위로 분석하고 표준화하여 "낭비적인 활동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안타까운 점은 UX가 인간을 중심에 둔다면, 테일러리즘은 시스템을 중심에 두고 인간을 '최적화해야 할 변수'로 두었다.


이러한 접근법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무시했다. 전문가들은 테일러리즘과 포디즘이 "좋은 인간공학을 위한 불충분한 잠재력"을 가졌다고 평가한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극단적인 효율 추구는 '인간 요소(Human Factors)' 연구의 필요성을 대두시켰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중 복잡한 무기와 기계를 다루는 과정에서, 기계 설계에 "인간의 한계"와 "인지(cognition)" 능력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2차 산업혁명은 UX의 '방법론적 선조'라 할 수 있는 '인간 요소 분석'을 탄생시켰지만, 그 철학은 UX와 정면으로 대치되었다. UX는 이 '관리 대상으로서의 인간'을 '존중받는 주체로서의 사용자'로 전환시키려는 반작용으로서 발전했다.


3차 산업혁명:
PC의 대중화, 'UX'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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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 반도체와 컴퓨터 기술의 발전은 공장의 기계를 '개인의 책상' 위로 가져오는 '정보화 혁명(디지털 혁명)'을 일으켰다. 기계가 물리적 노동을 대체(1, 2차)했다면, 컴퓨터는 정신적 노동을 보조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비전문가도 컴퓨터를 쉽게 쓸 수 있을까?'라는 중대한 질문이 제기되었다. 초기 컴퓨터는 전문가들만 사용하는 커맨드 라인 인터페이스(CLI)에 의존했다. 이 장벽을 낮추기 위해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 HCI)'이라는 학문 분야가 정립되었다. HCI 연구자들은 사용자와 컴퓨터 간의 '개방형 대화' 를 연구하며 기술을 인간의 인지 구조에 맞추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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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CI 연구의 가장 위대한 성과는 단연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 혁명이다. 1970년대 제록스 PARC(Xerox PARC)의 알토(Alto) 컴퓨터는 마우스 기반 GUI, 아이콘, 비트맵 이미지, WYSIWYG(What You See Is What You Get) 편집기 등 현대적 인터페이스의 원형을 확립했다. 이 개념들은 1984년 애플(Apple)의 매킨토시(Macintosh)에 의해 성공적으로 대중화되었고, 컴퓨터를 '명령'하는 대상에서 '직관적으로 조작'하는 대상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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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혁명의 중심에 있던 1990년대 초 애플에서, 인지심리학자 돈 노먼(Don Norman)은 역사적인 용어를 고안해냈다. 그는 자신의 직함을 '사용자 경험 설계자(User Experience Architect)'로 명명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인식의 전환이었다. 노먼은 1988년 저서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 를 통해 이미 사용자 중심 디자인의 원칙을 설파한 바 있으며, 1993년 애플에서 '사용자 경험'이라는 용어를 공식화했다.


노먼은 "Human Interface와 Usability는 너무 좁다"고 선언했다. 그가 원한 것은 단순히 사용하기 쉬운 인터페이스가 아니었다. 그는 "산업 디자인, 그래픽, 인터페이스, 물리적 상호작용, 매뉴얼"을 포함한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는 사람의 경험의 모든 측면"을 아우르는 총체적(holistic) 개념을 원했다. 더 나아가, 노먼이 애플에서 한 일은 단순한 디자인 개선이 아니었다. 그는 "User Experience Architect's Office"를 설립하고, "UX가 엔지니어링 및 마케팅과 동등한 지위"를 갖도록 제품 개발 프로세스 자체를 변경했다. 이는 UX가 단순한 '사용성(Usability)' 문제를 넘어, 제품의 성공과 긍정적인 브랜드 평판 을 좌우하는 핵심 '경영 전략'으로 격상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시기에 HCI라는 학문적 기반 위에, UX라는 '총체적 경험 전략'을 탄생시켰다.


4차 산업혁명:
초연결 사회, 'UX'의 전면적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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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은 3차 산업혁명의 '디지털화'를 인공지능(AI), 사물 인터넷(IoT), 빅데이터(Big Data) 기술을 통해 '지능화' 및 '연결화'로 심화시켰다. 이 기술들은 UX의 범위와 역할을 전례 없이 확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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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UX는 '제품'에서 '서비스'로 확장되었다. IoT는 스마트폰, 가전, 자동차 등 모든 사물이 연결됨을 의미한다. 사용자는 더 이상 하나의 스크린이나 제품과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목표(예: 퇴근 후 휴식)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기기와 접점(touchpoints)을 거치는 복잡한 여정을 경험한다. UX 디자이너는 이제 개별 제품의 UI가 아니라, 이 모든 접점 간의 끊김 없는(seamless) 경험을 설계하는 '서비스 디자인(Service Design)' 영역까지 책임지게 되었다.


둘째, UX는 '대중'에서 '초개인'으로 확장되었다. 빅데이터 기술은 2차 산업혁명의 '대량 생산' 시대를 종식시키고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 시대를 열었다. 기업들은 더 이상 과거의 '시장 세분화(Segmentation)' 방식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신 "개개인의 행동 데이터에 기초한 초개인화"를 통해 , "N잡러와 부캐의 시대" 를 사는 다면적 자아를 가진 사용자의 복잡한 니즈에 실시간으로 맞춤형 경험과 추천을 제공해야 한다.


셋째, UX는 '반응형'에서 '예측형'으로 확장되었다. 스마트폰의 센서 기술과 AI의 결합은 '상황 인식(Context-aware) UX'를 가능하게 했다. 시스템은 이제 사용자의 "현재 상황—위치, 시간, 기기 사용 목적, 감정 상태 등"을 실시간으로 고려한다. 그리고 사용자가 요청하기 전에 필요한 정보와 기능을 '맥락'에 맞게 예측하여 제공한다. 예를 들어, 매장 근처를 지날 때 자동으로 쿠폰을 발급하는 위치 기반 상호작용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확장은 UX 디자이너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3차 산업혁명의 GUI 디자이너가 사용자가 따를 '고정된 경로'를 설계하는 '건축가'였다면, 4차 산업혁명의 UX 디자이너는 AI 알고리즘이 사용자 데이터에 기반해 실시간으로 '생성'하는 경험을 조율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Orchestrator)'가 되었다. 디자이너는 완성된 경험이 아닌, 바람직한 경험이 생성될 수 있는 '규칙과 맥락'을 설계한다.


5차 산업혁명:
공존과 책임, 'UX'의 새로운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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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산업혁명(인더스트리 5.0)은 4차 산업혁명의 순수한 '기술 중심' 접근법에 대한 반성이자 보완으로 등장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5차 산업혁명이 기술과 인간의 '협업'을 강조하며 , 4차 산업혁명의 가치(자율성, 상호운용성)에 더해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과 '인간 중심(Human-centric)' 접근을 핵심 가치로 제시한다고 밝혔다.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Capability)'에 집중했다면, 5차 산업혁명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Responsibility)'를 묻는다. 이 패러다임의 전환은 UX에 네 가지 핵심적인 새 사명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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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지속가능성 디자인(Sustainability Design)'이다. UX는 이제 사용자의 만족을 넘어 '지구'의 건강을 고려해야 한다. 5차 산업혁명은 "2050년까지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회", "탄소 중립 산업", "재활용 중심의 새로운 시장 창출"을 목표로 한다. 이는 UX 디자이너가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를 고려한 제품 생애주기를 설계하고, 사용자가 더 지속 가능한 선택(예: 저탄소 배송 옵션)을 하도록 유도하며, 에너지 효율적인 인터페이스(예: 다크 모드)를 설계하는 구체적인 책임을 맡게 됨을 의미한다.


둘째, '디지털 웰빙 설계(Digital Wellbeing Design)'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비즈니스를 견인했던 '참여(Engagement)' 극대화 지표는 사용자들에게 디지털 중독, 번아웃, 스트레스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5차 산업혁명의 UX는 사용자의 '디지털 웰빙'을 적극적으로 보호한다. 이는 "인지적 평온함"을 위해 인터페이스를 단순화하고, 알림 제어 등을 통해 "사용자 주도권"을 돌려주며, "집중력 존중"을 위해 알림을 신중하게 설계하는 것을 포함한다. 나아가 "적극적인 휴식 권장" 이나 '집중 모드', '눈 건강 관리(블루라이트 필터)', '마인드풀니스(명상 가이드)' 처럼, 사용자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보호하는 기능을 설계한다. 이는 기존의 UX 목표와 상충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셋째, 'AI 윤리 확립(AI Ethics)'이다. 생성형 AI 시대에 UX 디자이너는 기술의 '윤리적 조율자' 역할을 맡는다. AI는 '공감 능력'이 없으며 , 편향된 정보를 생성할 수 있다. "인간 디자이너"만이 이를 검증하고 "사용자를 위한 최적의 전략"을 도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디자이너는 AI가 야기하는 '필터버블(Filter Bubble)' 문제를 인지하고, 알고리즘의 편향성을 중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무작위 추천' 기능을 추가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UX 디자이너는 AI의 '대체 대상'이 아니라, 윤리적 방향을 설정하는 '필수 협업자'다.


넷째, '포용적 디자인(Inclusive Design)'이다. 기술이 사회의 필수 인프라가 되면서, 기술에서의 소외는 곧 사회적 고립을 의미한다. 5차 산업혁명의 UX는 '포용성'을 단순한 '윤리적 책임'을 넘어, 더 많은 사람을 배려함으로써 "기업의 이익(경제적 책임)" 또한 확보할 수 있는 핵심 전략으로 간주한다. '배제의 최소화' 를 지향하는 포용적 디자인은 UX가 경제성과 윤리성의 균형점을 찾는 핵심 방법론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5차 산업혁명에서 UX는 기술의 '조력자'에서 '인간본질의 수호자'로 발전해야한다. 디자이너는 비즈니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용자를 설득하는 상업적 기능을 넘어, AI와 비즈니스 논리가 인간성과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중재하는 '윤리적 게이트키퍼(Ethical Gatekeeper)'이자 '인간성의 최후 보루'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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