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관종

by 기은

얼마 전에 면접을 봤다. 인간이자 문명인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아르바이트 면접을 봤다는 뜻이다. 월세와 생활비는 벌어야 했으니까.


면접 본 곳의 조건은 나쁘지 않았다. 평일 오후 여섯 시간의 근무 시간만 따지면 최저임금보다 여유있게 시급이 책정됐기 때문이다. 마음에 걸리는 점이라면 영화 작업을 위해 지원한 제작지원 사업 등으로 평일에 근무를 빼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근무 일 조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는 점과 업무 인수인계를 받는 사흘 동안은 임금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 인수인계 기간에 임금을 받지 않아도 얼추 최저임금은 나오는 편이라 그냥 조용히 넘어가기로 마음 먹었지만, 그럼에도 마음에 걸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면접은 그런대로 좋은 분위기에서 진행이 되었다. 근무처의 업무와 관련한 전공과 경력을 그런대로 갖춰둔 덕분인 듯했다. 거기에 영화 작업을 한다는 점이 면접관에게 신기하게 보였던 듯하다. 그와 관련해 이런저런 질문과 이야기도 오갔으니 말이다.


그렇게 면접이 마무리될 즈음, 면접관은 깜빡 잊을 뻔했다는 듯 뒤늦게 나에게 물어왔다.


“그런데, MBTI가 어떻게 되세요?”


그 질문을 받자 요즘은 인사 면접 때 MBTI를 물어보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본 기억이 났다. 특정 MBTI는 뽑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내용의 커뮤니티 캡처 글이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면접관에게 나는 평소 누군가 나에게 MBTI를 물어올 때 으레 하던 대답(“IIII요.”)을 머릿속 한 켠으로 치우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INFP요.”


나는 지금까지 정식 MBTI 검사를 두 번을 받아 봤다. 두 번 다 대학에서 받았다. 군대에 가기 앞서 휴학을 하기 전에 한 번,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해서 한 번. 전자의 검사 결과는 INTJ가 나왔고, 후자의 검사 결과는 INFP가 나왔다. 이후 MBTI가 밈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유명해진 인터넷 간이 검사 결과에서도 항상 INFP만 나왔다. 첫 정식 MBTI 검사에서 INTJ가 나오긴 했지만, 당시 T와 J의 수치가 중립적으로 나왔던 점을 생각하면 내 성격 유형은 줄곧 INFP였다고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INFP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내적 관종이라고 한다. 내향인이지만 마음 속에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진짜 관심을 보지 않으면 서운해지는 그런 성향. 안다. 피곤한 성향인 거.


MBTI가 보편화된 지금, 우리는 이를 통해 사람을 쉽고 빠르게 파악하려는 시도를 한다. 과연 MBTI는 이럴 때 꽤 그럴 듯한 기준이 되어준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왜 이런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지, MBTI는 이를 설명하는 그럴 듯한 근거를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그 검사 과정과 결과를 조금만 생각해보면 MBTI를 근거로 한 설명은 결국 “이 사람은 이렇게 생겨 먹은 사람이라서” 라는 식의 순환논리 만을 보여줄 뿐인데도 말이다.


그 논리야 어찌 됐든 내적관종은 내적관종. 나에게는 형식적으로나마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말하자면 무대의 경험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건 아닐까. 영화 상영 뒤 관객과 대화를 하는 GV 같은 무대 말이다. 작년엔 그래도 내 영화를 몇 군데 상영할 기회가 있어서 GV를 하기는 했는데, 올해에는 그런 행사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 어쩌면 지난 해 시도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던 스탠드업 코미디의 오픈 마이크를 올해 다시 도전하는 까닭은 그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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