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고의 농담

by 기은

내가 보았던 많은 지상파 드라마들의 결말을 기억한다. 권선징악의 성격을 띠던 그 결말들을 말이다. 주인공은 승리하고 악당은 패배한다. 스스로의 패배에 악당은 울고불고 소리 지르고 떼를 쓰지만 그럴수록 악당의 실체만 드러날 뿐이다.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등을 돌려 주인공의 편에 선다. 주인공에게는 행복한 일상이 남고, 악당에게는 최소한의 연민만 남는다.


지난 4월 4일 금요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와 그와 관련한 보도를 보면서 나는 오래전에 보았던 그 드라마들의 결말을 떠올렸다. 그 심판 선고를 받아들이던 특정 집단의 모습이 내가 보았던 드라마 속 결말과 너무도 닮았던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혼자 오랫동안 웃었다. 오랜만에 그렇게 웃음이 났다.


이 웃음에는 헌법재판소의 심판 선고가 늦어진 데에 따른 보상심리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유는 모른채 선고가 늦어지면서 모두가 느꼈을 불안과 불만과 걱정과 우려가 완벽한 논리로 정리가 되면서 웃음으로 해소가 된 것이다. 말하자면, 많은 국민들이 추운 날씨에도 주말마다 광장에 모여 고생한 만큼 그 고생의 결실이 크게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그런 점에서 비극에 시간이 더해지면 희극이 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우스운 일이 된다. 애초에 그런 비극이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삶에 마냥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만큼이나 빠르게 헌법재판소의 선고도 이뤄졌다면 좋았겠단 생각도 계속해서 들기는 하지만 그만한 시간이 걸린 만큼 얻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심판과 그 심판의 전후로 벌어지는 과정을 어떤 농담으로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비극에 시간이 더해진 코미디로서의 농담 말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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