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은 시간이 지나 저절로 이뤄지기도 한다. 나의 토익 점수가 그랬다. 대학 졸업 뒤 음악을 한답시고 제대로 된 벌이도 없이 2~3년을 보낸 뒤, 늦게나마 적당한 곳에 취업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취업지원센터에 청년 구직 프로그램에 등록하던 무렵의 일이다. 이런저런 자격증과 어학 성적 등을 알아보는 가운데, 대학 졸업을 위해 따뒀던 토익 성적도 만료되어 새로 토익 응시를 하기로 했다. 산타토익 같은 어플도 없던 시절, 굳이 교재를 사는 데에 돈도 들이고 싶지 않았던 나는 시험 전날 서울시교육청에서 운영하는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토익 모의고사 문제만 몇 번 풀어봤을 따름이었다. 대학 졸업을 위해 땄던 토익 점수가 850쯤 됐으니, 이번 시험 점수도 그 정도만 나와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확인한 결과는 905점. 예상치도 못한 점수라 놀라우면서도 900점대에서 딱 한 문제를 더 맞혀서 얻은 5라는 첫째자릿수의 점수가 괜히 우습게 느껴졌다. 토익이 많이 쉬워졌나 싶은 생각도 들었고.
이후 언젠가 그런 내용의 글―인지 영상을 봤다. 토익/토플에서 얻고 싶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시험 접수부터 하라는 내용의 조언이 담긴 글―인지 영상인지, 그도 아니면 영상을 캡처한 글인지를 말이다. 원하는 점수를 얻을 만큼의 실력을 쌓으려다가는 오히려 그 결과를 얻는 데 더 늦어질 수 있다며, 일단 시험 일이라는 마감일을 설정하고, 그에 맞춰 공부 계획을 세우고 실천을 하라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이는 토익이나 그 밖에 자격증 등의 시험에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다. 휴가, 이사, 결혼식 같은 일상적인 일에서부터 신제품 R&D나 M&A 합병 같은 비즈니스의 영역에까지. 데드라인을 정해두고 그에 맞춰 계획을 실행하는 경우는 상당하다. 지난 12월 3일에 벌어진 일도 그렇다. 날짜와 시간 등 숫자에 집착해 계획을 실행하는 건 나라 단위의 정치 영역에서도 유효한 셈이다.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겠다는 새해 계획을 세운지 8개월. 일단 오픈마이크 무대라도 찾아보고 신청해봐야 하나. 준비랍시고 한 일은 쥐뿔도 없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얼마 전에도 스탠드업 코미디로 꽤 알려 진(듯이 보이는) 곳에서 오픈마이크 참가자를 모집하는 공고글을 보기도 했으니까.
그래. 올해가 가기 전에는 일단 질러 봐야겠지. 원하는 시험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시험 접수부터 해야 되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