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프롤로그
1년 전 나는 6년 여의 서울 생활을 마무리하고 부모님이 계신 강원도의 지방도시로 돌아왔다. 본격적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음악이니 소설이니 돈 안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겠답시고 서울에 와서는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도 않고, 그러는 동안 경력 없이 나이는 차고 돈은 나가고... 이런 나의 답없는 상황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했다. 공무원 시험 합격은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렇게 1년 동안 바짝 공부해서 곧바로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고 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사람의 습관 만큼이나 삶이 쉽게 바뀔 수는 없는 법이다. 서울에서 지냈을 때처럼 나는 이곳의 도서관에서도 수험 공부를 하는 틈틈이 이런저런 책을 빌려 읽었다. 서울에서 다닌 몇몇 도서관과 비교하면 이곳의 도서관은 그와 비슷하거나 더 나은 수준의 시설과 장서량을 갖췄다. 그러면서도 이용객은 훨씬 적었다. 그 덕에 나는 서울에서 지낼 때보다 더 많은 책을 빌려 읽을 수 있었다.
수험 공부를 위해 매일같이 도서관을 다니다보니 그만큼 빌려 읽는 책도 많아졌다. 수험서에만 매달리기에도 바쁜데 다른 책까지 빌려 읽다니...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수험 생활이 중요해도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모든 것을 미래를 위해 미뤄두고 싶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내가 준비하는 미래가 조금 더디게 오더라도 말이다.
절박함이나 성실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수험 생활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수험생이었다. 때문에 도서관에서 가끔 책을 빌려 읽는 일 말고 내가 다른 곳에 시간을 쓰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양심상 도서관 디지털자료실에서 영화도 보지 않았다. 차라리 극장에서 개봉 영화를 봤으면 봤지.
수험서와 문학책을 오가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때마다 나는 그 아이디어들을 메모장에 적으며 언젠가 쓰게 될 이야기를 준비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지역의 영상미디어센터에서 나는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단편영화 워크숍을 홍보하는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