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이 지역의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진행한 단편영화 제작 워크숍 수업을 들은 일이 있었다. 군대에서 전역하고 대학에 복학하던 무렵이었다. 그때까지도 글 한 편 제대로 쓰지 못하던 나는 이 워크숍을 통해 엉성하게나마 영상물을 하나 만들어볼 작정이었다.
수업은 6주 동안 진행되었다. 첫 3주 동안은 시나리오부터 기본적인 영상 문법(180도 법칙, 30도 법칙, 시점샷 등) 등의 이론을 배우고 나머지 3주 동안은 실습을 했다. 이 실습 동안 나는 처음에 계획했던 한 편의 영상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과였다. 그 전까지 써내지 못했던 글을 워크숍 기간에 뚝딱 써낼 수는 없었으니까. 나만 그런 건 아니었는지 이 워크숍에서 결과물을 만든 수강생은 딱 한 명 뿐이었다.
그 워크숍을 마치면서 하게 된 생각 가운데 하나는 영화의 시나리오는 영상으로 구현할 것까지 생각하며 써야한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장소에서 어떤 배우 및 스태프와 작업을 할지, 화면 구성과 소품 배치는 어떻게 할지 등 제작 여건과 관련된 사항을 시나리오 단계에서 고려한다면 더 효율적인 작업과 더 나은 결과물이 가능하리란 생각에서였다. 내가 결과물을 내지 못한 까닭도 이 점에 있었다. 어떻게 촬영을 할지, 이 촬영 여건에 적합한 이야기는 무엇이 있을지를 찾아내기에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많이 부족했으니까. 물론 지금이라고 훨씬 나은 것도 아니지만.
워크숍을 마친 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7년 정도 지냈다. 그 기간동안 나는 몇 곡의 개인 음악작업을 했고, 책을 읽었고, 소설을 써서 상도 받았다. 그러다 서울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다시 이 지역으로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이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이곳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찾아보았다. 지역의 영상미디어센터는 여전했고, 시립중앙도서관은 새로 지은 건물로 자리를 옮겨 더 많은 장서량을 갖추고 있었다. 별다른 변화가 없는 듯하면서도 조금씩 달라진 이곳을 보면서 나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내가 생각한 것만큼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이곳 영상미디어센터에서는 여전히 단편영화 관련 워크숍 수업을 진행했다. 이와 함께 이 지역 내 작업자를 위한 제작지원 사업도 진행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도 이곳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곳에서 영화 작업을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을까.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올라오는 소식에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진행하는 단편영화 관련 수업 홍보문자를 받았다. 그 문자에 나는 한 번 더 내가 만약 지금 이 수업을 듣는다면, 그래서 이곳에서 영화를 찍는다면 어떤 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 생각했다. 공시생 신분인 데다 따로 제작비를 마련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내가 사는 동네 주변에서 간단하게 찍을 수 있는 이야기여야했다. 줄거리 또한 단순해야했다. 그러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주인공을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사건이 필요했다.
자전거를 잃어버린 아이가 자전거를 찾는다.
앞선 조건들에서 내가 떠올린 이야기는 이것이었다. 이 이야기가 나에게는 흥미롭게 여겨졌다. 나 또한 자전거를 잃어버렸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이 로그라인에는 나오지 않은 결말이 나름의 반전으로 관객에게 여운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영상으로 그려내기 위해서는 배우와 배우가 탈 자전거가 필요했다. 몇몇 장소도 섭외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제작비를 들여야 했다. 공시생이라 제작비는커녕 시간을 따로 내기도 어려운 상황, 나는 언젠가 이 이야기를 영상으로 제대로 담아낼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으로 휴대전화 메모앱에 아이디어만 남겨두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불성실한 공시생 생활을 하던 어느날 나는 영상미디어센터의 SNS에서 한 게시물을 보았다. 1년전 메모앱에 남겨둔 아이디어를 다시 꺼내보게 하는 게시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