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글 2.

폐건물과 생동

by 비담토

삭막하게만 보이는 폐건물이나 공사장에서도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게 만드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저 빠르게 흘러가기만 하는 일반의 것들보다는 멈춘 듯 보이거나 오히려 스러져 가는 이들에게 더 눈이 가고 생각이 많아진다. 멈춰있어야만 비로소 그들에게 스쳤던 시간과 공기의 흐름이 보이고 생의 숨결이 느껴진다.


개성은 인간이 부여한 생물이라는 개체만이 가진 특성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세상에 단 하나도 같은 것은 없다. 대량생산의 시대가 지나갔다는 둥의 자본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이 말도 과장이나 호들갑일 뿐, 실제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너무도 낭비적인 대량생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진으로도 볼 수 있듯이 다 똑같은 비율로 설계됐을 벽이나 문구멍, 철창 등도 단 하나 같은 것이 없다. 시간에 의해서든 인간에 의해서든 다 다른 곳에 상처가 나고 모양이 변한다. 길을 가다 보이는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자세히 바라보고 나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장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찍혀 나오는 물건들 또한 마찬가지다. 닿는 공기도 먼지도 시간도 다 다른 사물들을 어떻게 어리석은 인간의 눈으로 똑같다는 단정을 지을 수 있겠는가. (’한낱 인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본인은 무교다.)


시간과 공기가 콘크리트에 균열을 일으키고 철을 멍들게 한다. 이 흔적이 붕괴의 지점과 분명히 이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상처를 가리고 덮기를 반복하다 스스로 망가지기 직전에 우리의 손으로 부숴 버리고 만다. 없었던 것처럼 지워 버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그대로 반질한 새 콘크리트가 차오른다. 금이 간 만큼 지워졌던 존재감이 다시 차올라 시선을 끈다. 현대의 시간으로 흐르기 시작한 공간이 된다. 시간과 시간이 겹겹이 차올라 각각의 존재의 테두리가 옅어진다. 그래서 타자의 숨으로 가득 메워진 공간에서는 공간 자체의 숨결을 느끼기 힘들어진다. 분명한 테두리를 가진 사물들일 텐데, 모든 것이 섞이고 비슷해진다. 균열도 상처도 없는 이 시공간은 분명 영원할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시간을 잡을 수 없다. 시간을 넘어선 도시는 건설될 수 없고, 그렇기에 붕괴는 피할 수 없다.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도시는 모든 것을 획일화하려 한다. 심지어 사람까지도. 우리는 시간이 흐르기 때문에 당연하게 개성을 갖는 작은 사물들을 보며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크롤을 내리며 시간을 던져버리고, 짧고 무의미한 것들이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피어나게 두어서는 안 된다. 영원할 것만 같은 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겨 생물로서의 인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스러져 가고 사라지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라보아야 한다. 죽음을 마주 보아야 한다. 죽음을 마주 보고 현재에 서 있으면 시간과 공기의 흐름을 체감할 수 있다. 이 느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감각을 잊지 않도록 매일 단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