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글 3.

기찻길과 소실점

by 비담토

원근감을 가장 쉽고 직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에서 ‘길’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마저도 한국에서는 지평선까지 곧게 쭉 뻗은 길을 보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이를 충족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기찻길이다. 오로지 기차만을 위해 존재하는 거대한 이들 덕분에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소실점을 가진 원근을 즐길 수 있다.


나의 현재에 놓인 것들이 지평선으로 녹아들며 사라지는 지점을 하염없이 바라본 적이 있는가.

끝처럼 보이는 그곳도 시작이 되고, 멀어진 곳에 내 발밑과 같은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저 너머를 상상하는 일은 낭비 같기도, 위로 같기도 하다. 결코 닿을 수도 없는 것을 잡으려 애쓰는 일이며, 동시에 존재들이 하나의 덩어리로 이어져있음을 생각하는 일이다. 끝도 없이 나아가는 선을 보며 역설적으로 세상이 원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수 있다. 어쩌면 시간까지도.


사라지는 기차를 보며 그곳에서도 이어질 존재와 숨결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소실점은 주관적 상상의 개념으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 소실점은 역사의 방향에 대한 철학적 논의에서 미래에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자 순간으로 표상되지만, 그것은 표상에 불과할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목표지점이 있다는 착각하에 일방통행로를 끝없이 걷는 것인지 모른다.”
<발터 벤야민과 도시산책자의 사유, p.31>


분명하게 살아있음에도 여기 이 자리에서 죽음 또는 이상으로 보이는 저 너머의 공간.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무엇을 향해 달리는가.

끝없이 흐르는 물처럼, 또 다른 탄생의 그릇이 되는 고인 물처럼 진정으로 멈추고 끝나버리는 것이란 없을 텐데.


그러나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평행의 사물들이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소실점은 세계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