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와 색
세상의 가장 근저에 있는 색이 무슨 색일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대부분 바탕이라고 여기는 색으로 흰색이나 검정색을 떠올린다. 어떠한 색과도 조화롭게 어울리며 도화지 또는 빈 공간으로 인식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무채는 인간의 오만함에 가깝게 닮아있다.
녹음을 드러내고 들어선 녹.
도시는 무채로 우뚝 서있고, 그 속에 스스로 무채로 꺼져가는 인간들이 있다.
황토와 녹지를 덮고서 발린 까만 시멘트는 우리의 걸음걸음마다 탐욕을 각인한다.
시멘트에 억지로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던 나무들은 도시의 속박에 빛을 잃곤 한다.
사진에서도 역시 분명 나무와 콘크리트 건물을 함께 찍었음에도 색이란 것이 거의 없어 보인다. 몇의 낙엽과 녹이 군데군데 바랜 빛을 더할 뿐이다. 우리는 분명 생기를 잃지 않기 위해 자연을 가까이 두려고 하지만 썩지도 않는 무채는 그 작은 생기마저 앗아갈 뿐이다.
인간이 만든 텁텁한 무채의 덩어리들. 시멘트와 콘크리트와 철근들.
그러나 사실 완전한 무채란 없다.
인간의 오만함은 세상의 색을 지우지 못한다. 흑백으로 뺀 사진이 햇빛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결국, 오만함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가 덮어버린 무채에 질식할 것이고 색은 다시 무채를 삼킬 것이다.
정말 세상의 근저에는 어떤 색이 있을까.
노랑?
파랑?
사실은 모든 색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