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나를 동시에 끌어안은 어떤 사람의 아주 개인적인 기록.
― 골목길에서의 첫 상처, 그리고 나를 지켜주지 못했던 어른들
11살, 사정 상 갑작스러운 이사로 좁은 골목길로 집을 얻게 됐다.
어렸을 때라 잘 알지도 못하고 그 곳에서 나름대로 작은 행복을 피워 냈다.
골목 언니들과 모여 놀고 (tmi. 지금까지도 내 아이디는 그 골목 언니 이름이 합쳐져 있다)
그 '골목' 에서만 할 수 있는 유일한 놀이도 맘껏 했다.
땅따먹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비오는 날 춤추는 걸 좋아했다. 비가 내리는 날 냄새가 좋았다.
투명한 비가 우산위로 떨어질 때의 느낌이 좋았다.
그 날도 어김 없이 비오는 날 장화와 우산을 들고
동생과 춤을 추고 싶어
먼저 집 밖으로, 그 '골목'으로 향했다.
그게 그냥 평범한 하루의 일부였다.
그날도 그랬다.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멀리서 검은 우산을 든 한 남자가 다가왔다.
검은 반팔티에 반바지, 풍채가 있는 사람이었다.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이내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너 귀엽게 생겼다.”
그렇게 말하며 가까이 다가와,
문이 닫힌 집 계단 앞에서 나를 끌어 안았다.
그리고 강제적으로 날 만지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너무 어려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몸집도 작았고,
그 사람의 행동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건 분명히 아니라고 생각했다.
10분쯤 지나서 그는 내 볼을 만지고 픽 웃으며 떠났다.
나는 멍한 채, 그대로 서 있었다.
그 일이 끝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다.
엄마는 날 사랑했지만, 무서운 사람이었다. 항상 화가 나 있었고,
불안하거나 부정적인 일이 생기면 그 화살은 언제나 나를 향했다.
신경질적인 말투, 쏘아붙이는 소리, 데시벨 높은 꾸짖음.
엄마는 나에게 가장 맞지 않는 퍼즐 같았다.
나는 그게 고통이라는 걸 모르고 그저 묵묵히 전부 받아내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말할 수 없었다.
“네가 뭘 잘못한 거 아니야?”
“왜 그런 곳에 혼자 있었어?”
그런 말을 들을까 봐, 입을 닫았다.
엄마 옆에 누워 억지로 잠을 청했다.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악몽을 꿨다.
그 날 밤, 꿈속에서 그 남자는 괴물로 나왔다.
그날 이후,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친한 언니에게 그 사실을 말했고, 그 언니가 우리 엄마에게 전달해,
결국 아빠까지 알게 되어 우리는 이사와 전학을 결정했다.
그 결정이 그나마 나에게 유일한 안도감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그날을 정확히 기억한다.
하지만 동시에 잊고 싶어서 많이 덮어뒀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몸 어딘가에 박혀 있었다.
문득문득, 알 수 없는 불안으로 울컥할 때마다 그게 그 기억 때문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나는 너무 오래 혼자 감당해 왔다.
그런 시간을 지나 나는 여전히 예민한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아이가 그 골목에서
혼자 견디고 있었다는 걸.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를.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이젠 누가 봐도 상관없다.
아니, 누군가가 봐줬으면 좋겠다. 이게 내가 살아남은 이야기라는 걸.
내가 어떤 마음으로 지금을 버티고 있는지를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건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온전히 나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음 글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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