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서 알아보는 꿈이 없어도 되는 이유.
1666년, 23살의 어느 한 사나이에게 재미있는 사건이 생긴다.
그가 당시 다니던 케임브리지 대학교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고전어(라틴어, 그리스어), 수사학, 논리학 등 성직자와 신사계층을 가르치기 위한 수업들을 가르치고 있었고, 그 사나이는 흥미가 빠진 상태였는데 당해에 페스트가 유행하여 그 사나이는 자신의 고향인 울스소프 마을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 앞 마당에 있던 사과나무 앞에 앉아서 쉼을 청했는데, 그때 사과가 그 사나이 머리에 떨어지고 그는 세상이 돌아가는 법칙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견한다.
그 사나이의 이름은, 아이작 뉴턴.
그리고, 20년이 지난 1687년, 43살에 가까운 나이에 프린키피아<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출판하면서 세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그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아이작 뉴턴은 당장 이론을 수립한 것이 아니라 거의 20년 가까이 연금술과 신학에 대한 글을 작성하였다. 아이작 뉴턴에게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표하는데 왜 20년이나 걸렸을까?
1. 도구의 부족과 용기의 부족
뉴턴이 중력 이론을 완성하려면 "구의 모든 질량이 중심에 집중된 것처럼 작용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는데, 이건 꽤 정교한 수학이 필요한 문제였다. 그리고, 알다시피 뉴턴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한 도구인 자신만의 미적분학을 개발해야 했다.
또 하나 뉴턴이 왕립학회에 처음으로 논문을 발표했을 때였다. 로버트 훅이라는 인물은 왕립학회의 실험 담당자로서 이 논문을 검토했는데, 강하게 비판했다. 훅 자신도 광학을 연구하고 있었고, 뉴턴의 이론이 자신의 견해와 달랐으며 위 과정에서 뉴턴은 이 비판에 극도로 상처받았다.
뉴턴과 훅은 몇 차례 반박문을 쓰며 논쟁했지만, 결국 "더 이상 아무것도 발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은둔해버린다.
2. 뉴턴의 "삶"의 우선순위
뉴턴은 1660~1670년 경 우리가 알고있는 중력의 문제를 바로 해결하기보다는 당장 성과가 나오는 광학 연구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백색광이 단일한 빛이 아니라 여러 색의 조합이라는 것을 밝혀냈고, 1668년에는 반사망원경을 직접 제작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안정적인 직장인 교수라는 직장을 구하기도 하였다.
그 당시에는 연금술은 과학이라는 학문과 경계가 애매하였기에 물질에 대한 탐구를 하는 연금술에 빠져있었고, 당시 지식인이라면 빠질 수 없는 신학에도 빠져 프린키피아에 대한 책 분량보다 훨씬 더 많은 분량의 글들을 작성하였다.
3. 자신의 업적을 자기조차 몰랐다.
뉴턴 조차도 자신이 자신의 고향에서 마주하였던 아이디어를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 하고있었는데, "핼리"라는 연구자가 그에게 찾아와 재미있는 질문을 한다.
당시 학계에서는 "중력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면 행성 궤도는 어떤 모양일까?"라는 질문이 과학자들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질문이었는데, 핼리는 "혹시 이 사람이면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뉴턴을 찾아갔다.
그리고, 뉴턴은 이미 고민을 많이 하였기에 "타원이다"라고 답변하며 그 수학적 증명들을 핼리에게 제시하면서 핼리는 자신이 출판비용을 낼테니 "프린키피아"를 저술하라고 제시한다.
핼리가 없었다면 지금의 뉴턴도 없었던 것이다.
뉴턴은 자신도 몰랐던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20년이 지나서야 발표하게 되었고,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러한 중력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뭘까?
나는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와 같았다. 가끔 더 매끄러운 조약돌이나 더 예쁜 조개를 발견하며 즐거워했을 뿐, 진리의 대양은 여전히 발견되지 않은 채 내 앞에 놓여 있었다
- 아이작 뉴턴 -
I was like a boy playing on the sea-shore, and diverting myself now and then finding a smoother pebble or a prettier shell than ordinary, whilst the great ocean of truth lay all undiscovered before me.
위 문장은 뉴턴이 말년에 쓴 글이며, 뉴턴의 인생을 상당히 반영한다.
뉴턴은 단지 자기가 재미있어 하는 연금술과 신학에 에너지를 쏟았을 뿐 자신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러한 노력들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단지, 그는 진리를 추구하였을 뿐이고, 자기도 몰랐던 자기의 업적을 누군가가 알아주면서 자신도 잊고있었던 자기의 역량에 자신감을 갖고 용기를 내어 "프린키피아"라는 책을 출판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작 뉴턴은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였고, 이를 위한 용기가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그는 모두가 형식적인 틀에 대한 공부를 하고있었을 때 갈릴레이 서적을 몰래 보고, 천문학을 독학하였으며 자신의 중력에 대한 아이디어를 수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하여 자신만의 도구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그는 상처를 극복하고 용기를 내어 자기 서랍 장 안에 있었던 노트를 꺼냈다.
어쩌면 당신의 서랍 속에도, 혹은 머릿속 어딘가에도 20년째 잠들어 있는 아이디어가 있지 않을까?
당신은 누군가에게 핼리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누군가가 당신의 핼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사과 씨앗으로 키운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기까지는 10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지금 당장 사랑하는 사람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꿈이 없다고 하더라도 괜찮다.
진리의 대양은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으며, 당신이 즐길 바닷가에 앞에서 노는 아이가 될 용기가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