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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황래 Dec 09. 2023

31년 인생 첫 '오마카세'

주는 대로 먹어보라구요? 이 돈 내구요?

나는 '절약'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필요한 곳 외에는 돈을 쓰지 않고, 정말 힘들고 어렵게 돈을 버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다. 직장인이 되고 점점 연봉이 올라가면서는 돈을 쓰는 기준이 좀 완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필요가 아닌 '기호'에 맞는 소비나 한번에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하는 소비는 꽤 망설이는 편이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 대비 (거의) 안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오마카세' 식당 방문이다.


오마카세는 '파인 다이닝', '호캉스', '해외여행', 등 각종 'Flex(플렉스)' 영역의 소비 중 하나인데, 흔히 MZ세대들이 오마카세 등 비싼 식당에 많이 가서 돈을 못 모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나는 먹는 데에는 돈을 아끼려 하지 않는 편이지만 맛집을 골라서 갈 때 오마카세는 선택지가 없는 편이었다. 일단, 오마카세가 일반적인 식당에 비해 '대단히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안먹어 봤지만), 한 끼에 30분~1시간 정도 기다리면서 밥을 먹는게 식사 시간이 빠른 나는 좀 답답해 보였다. 그러면서 비싸기는 또 엄청 비싸다길래 그냥 아예 생각을 안했다. 그런데 회사 연말 회식을 하면서 우연히 오마카세를 먹어볼 수 있었다. 스시 오마카세였는데, 나름 신선한 경험이었다.

세팅도 정갈하고 재료도 신선해보인다. 일단 비주얼과 편안함으로 다른 느낌을 준다


왜 'MZ'는 오마카세에 진심일까


일단, 오마카세는 요리사 분이 직접 요리를 주셔야 하기 때문에 '바' 형태의 테이블에 앉는다. 이 날 우리 회사는 총 9명 정도가 방문했는데 역시나 일렬로 쭉- 앉았다. 옆자리 사람이랑은 종종 이야기했는데 요리사님만 바라보고 있으니 좀 웃겼음 ㅋㅋ 그리고 나서 애피타이저부터 메뉴가 쭉 나오기 시작했다. 한 30분 정도 먹는단다. 일반 스시집 런치세트는 메뉴 나오고 먹는데 15분도 안걸릴거 같은데.. 9명이다보니 하나하나 만들어서 주시는데에도 시간이 좀 걸리기도 하고, 천천히 먹는 게 아예 익숙치 않다보니 어떨까 궁금하면서, 걱정도(?) 됐다.

이 날 먹은 오마카세는 점심이었는데, 1인당 4만원 미만이었던 거 같다. 이 정도면 나름 저렴한 편인 듯


맛이 어쩌고 저쨌다.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당연히 맛있지 비싼 돈주고 먹는데... 맛은 자본과 웬만하면 비례하니까... 이런 리뷰를 할거면 블로그에 맛집 리뷰를 하려 했다. 근데 이 글에서는 오마카세의 맛이 아닌 '왜 젊은 사람들은 오마카세를 좋아할까'라는 주제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이렇게 쓰니까 무슨 늙은이 같네. 고작 만 31살인데...)


오마카세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진 찍어서, 인스타에 올리기 좋게' 플레이팅 되기 때문인 것 같다. 일반 음식점에 가도 많은 사람들이 음식이 나오면 사진부터 찍고 먹게 되서, 나는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을 때 사진을 찍는 시간을 기다려주는 편인데(물론 나도 리뷰하고 싶거나 특별한 날 기록으로 남기고 싶을 때는 사진을 찍는다) 오마카세는 '사진 찍으라고' 대놓고 플레이팅을 해준다. 위에 찍은 사진들만 콜라주해서 모아도 괜찮은 인스타 피드 게시물 하나 나온다. 인스타 피드에 사진을 올리는 이유는 많이 있겠지만, 이런 사진들은 대부분 '나 이런 고급진거 먹는다, 부럽지?'라는 심리가 깔려있는 경우가 많다. 결국, 내가 좋은 거 먹었다는 거 자랑하고 싶은 거다.


특별함이 평범함이 되어 간다


물론, 오마카세 뿐만 아니라 내가 먹은 음식들을 피드나 스토리에 쌓아놓고 추억용, 저장용으로 업로드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언론이나 유튜브에서 오마카세가 '허세', '플렉스' 등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빈도가 많은 것은, 아무래도 소비의 이유가 그런 쪽의 비중이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가 심각해지는 이유는, '특별한 날에 먹는 비싼 음식'이 점점 '평범한 사람도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인식이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우동에 디저트까지 이것저것 많이 나와서 배 부르더라...


우리나라처럼 비교 문화가 많은 나라는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욕구가 크기 때문에, 모방하고 따라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 나만 해도 그렇지. 근데 나는 '물욕'은 없는 편이라 물질적으로는 따라가지 않는 성향이라는게 다행이다. 명품 없어도 즐겁고, 당당치킨 하나에도 행복하고, 호텔 안가고 게스트하우스 가도 잘 자니까. 근데 물질적인 부분에서도 비교와 모방의식이 강한 사람들은 SNS에 나오는 사람들을 따라가려다보니 무리를 하게 된다. 이 부분은 그 사람이 알아서 책임지는 부분이기 때문에 내가 왈가왈부 할 수는 없는 부분이지만, '꼭 저렇게 무리하면서까지 해야할까' 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오마카세 갈 일은 있겠다만, 굳이 내가 찾아서?


이 날 오마카세에 대한 내 리뷰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굳이 또 갈 건 아니다'는 거다. 맛은 좋았지만, 특별하게 다시 갈 이유 자체를 못 찾았다. 물론, 누군가와의 약속이 오마카세 집이라면 갈 수는 있겠지만 내가 먼저 제안할 가능성은 극히 낮을 듯.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가겠다는 걸 말릴 생각은 없다. 자기가 돈 벌어서 거기서 돈 쓰고 맛있는거 먹고 행복하다면 그만이니까. 다만,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지'라는 마인드는, 30대가 되고 난 이후에는 한번 다시 생각해봐도 좋지 않을까...




물욕이 없다는 건, 내 생각엔 축복받은 것 같다. 돈이 행복을 주지는 않지만, 돈이 불행을 막아주는 건 사실이고, 절약하는 소비습관은 인생을 해롭게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꼭 써야할 때를 알고 현명하게 돈을 쓰고 싶다. 돈을 모으는 건 좋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숫자가 커질수록 원하는 숫자도 커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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